불임 2화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멈춰버린 정거장: 나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검사를 마친 지 며칠이 흘렀지만, 내 몸은 여전히 회복을 알리지 않았다.
미세한 통증은 일상 속에 조용히 숨어 있었고, 마음은 더욱 깊은 피로에 잠겨 있었다.
가라앉지 않는 무기력과 슬픔은 마치 계절을 잃은 먹구름처럼, 하루하루를 짙게 덮었다.
나는 그저 누군가의 아내이자, '아이를 갖고 싶은 여자'였을 뿐인데,
어느새 ‘무언가 결함이 있는 여자’라는 낯선 이름표가 내게 붙어 있었다.
이 작은 호칭의 차이는 단어 하나가 아니었다.
그건 삶 전체에 거대한 균열을 내는 문장처럼, 나의 존재 의미와 미래의 희망까지 흔들리게 했다.
집안은 고요했다.
남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평온한 일상을 이어갔다.
같은 검사를 받았던 그는 이미 그 기억에서 벗어난 듯했고,
나는 매일의 작은 순간들 속에서 나의 의미를 다시 묻고 또 헤매야 했다.
말을 꺼내려다 삼키는 일이 잦아졌다.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이제 나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고통스러운 연기가 되어 있었다.
내 안의 고통이 닿을 수 없는 사람과 함께 살아간다는 것.
그 침묵은 나를 점점 더 깊은 내면으로 가라앉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무심하게 말을 꺼냈다.
“다음 주에 여행 갈까? 기분 전환 좀 하게.”
그 말은 어딘지 낯설고, 멀게 느껴졌다.
그의 목소리는 걱정보다는 습관처럼 들렸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잠깐의 휴식이 아니라,
내 고통을 함께 느껴주는 깊은 이해였지만,
그는 그런 감정의 언어를 몰랐다.
그의 눈빛은 언제나 옅은 수면 같아서,
그 아래 잠긴 내 마음의 심연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그저 ‘기분 전환’이라는 표면적인 위로만이, 그의 시야에 있었다.
여행지에서도 나는 자유롭지 못했다.
아름다운 풍경 속에서도 자꾸만 병원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햇살 아래에서도, 내 시선은 여전히
하얀 시트, 조용한 복도, 차가운 기계음 속에 머물러 있었다.
그리고, 나를 ‘환자’로 바라보던 시선들.
“괜찮습니다. 아내분만 조금 더 고생하시면 됩니다.”
그 말엔 인간적인 온기나 공감이 없었다.
아무도 나를 ‘나’로서 보지 않았다.
나는 단지,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몸’이었고,
진단받아야 할 ‘대상’ 일뿐이었다.
자아는 점점 희미해지고,
그저 임신이라는 목적을 위한 도구처럼 느껴지는
잔인한 현실 속에 나를 세워야 했다.
남편은 밝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SNS에 올릴 해시태그를 즐겁게 읊조렸다.
#힐링 #자연 #커플여행
그의 표정은 나의 그림자와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사진 속 나는 웃고 있었지만, 그 웃음은 나조차 낯설었다.
입꼬리는 올라갔지만, 눈빛은 공허했고
그 얼굴 뒤에서는
나는 서서히, 그리고 조용히 무너지고 있었다.
행복해 보이는 사진이 오히려 내 안의 비명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여행에서 돌아온 뒤, 나는 결국 다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한 번 더. 마지막으로.
어쩌면 마지막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처절한 발버둥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몰랐다.
내가 그 진료실에서 ‘이전의 나’를 영원히 두고 나오게 될 줄은.
그 문턱을 넘는 순간, 나는 과거의 나와 완전히 단절되었다.
병원을 나서던 그날, 나는 더 이상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껍데기만 남은 채, 낯선 어둠의 입구를 향해
천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