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 이야기 EP.04-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나답게

불임 4화

by 나은

불임 4화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나답게


멈춰버린 정거장: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나답게


한동안 나는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조차 버리고 살았다.

잠에서 깨면 다시 잠들고 싶었고, 밥을 먹어도 씹는 맛을 느끼지 못했다.

그저 하루가 흘러가는 대로, 내 존재도 무기력하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내가 뭘 할 수 있을까'라는 자조 섞인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어떤 감정도 표현하고 싶지 않았고, 어떤 일도 책임지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 자신으로부터 멀어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누군가의 SNS에서 이런 문장을 보게 되었다.

"슬픔이 지나간 자리에 우리가 남는다면, 그건 살아낸 용기다."

이 말이 나를 조용히 멈춰 세웠다.

나는 그저 무너지기만 했던 게 아니라,

그 무너진 자리에서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는 걸,

비로소 그 짧은 문장을 통해 깨달았다.


살아낸다는 것, 그것은 거창한 변화를 의미하는 게 아니라

오늘 하루도 어떻게든 '버텼다'는 사실 하나면 충분하다는 걸.

그 깨달음은 작은 빛처럼 내 안으로 스며들었다.

그날 이후, 나는 작고 조용한 삶을 다시 시작해 보기로 했다.

하루에 한 잔, 내가 좋아하는 차를 정성껏 우려 마시는 일.

기억 속 어딘가에 묻어두었던 책을 다시 펼쳐 잊었던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일.

지워버렸던 나의 노트를 열고 짧은 문장이나 단어들을 끄적여보는 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그 사소한 행위들이 조금씩 내 안의 무너진 벽돌들을 다시 쌓아 올리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위한, 나만이 할 수 있는 조용한 회복이었다.

남편과의 관계는 여전히 차가웠다.

대화는 필요할 때만 기계적으로 이루어졌고, 감정은 서로의 시야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그 틈을 억지로 메우려 하지 않았다.

예전의 나는 '함께'라는 이유로, 너무 많은 걸 참고, 포기하고, 견뎌냈다.

이제는 그저 내 감정 하나라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지켜주기로 했다.

나는 사랑받아야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상처 입은 나도, 아픈 나도 존재 자체로 가치 있다는 걸 믿기로 했다.

어느 날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해봤다.

예전엔 어색하지 않던 미소가 처음엔 이상하고 낯설었지만, 며칠이 지나자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카메라 앞에서 억지로 지었던 그 웃음이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 웃는 표정이란 걸 나도 조금씩 배워가고 있었다.

내면에 깃든 작은 변화가 서서히 외면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나는 이제 '기약 없는 기다림'이 아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감'을 선택했다.

멀리 있는 희망에 모든 것을 걸기보다는, 지금 이 순간의 나에게 집중하고 나를 돌보려고 한다.

완전히 괜찮지는 않다.

여전히 상처는 남아있고, 때로는 아픔이 문득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하루를 다시 살아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작고 조용하게, 하지만 확실하게.

"다시 살아보기로 했다, 나답게."

이 말이 나를,

그리고 같은 시간을 건너고 있는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위로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 이 글은 충분한 의미가 있다고 믿는다.


나의 이야기가 고통 속에 있는 이들에게 작은 울림이 되기를 바라며,

나 또한 이 길 위에서 꾸준히 나를 찾아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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