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임26화. '역시나'의 무게
모든 것이 비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자칫하면 그냥 일상이라 할 수도 있지만, 요즘 남편의 행동은 낯설기만 했다.
꼬박꼬박 집에 들어오고, 주말에도 나가지 않고, 가장 이상한 건 전화를 바로 옆에서 받는다는 거였다.
예전엔 꼭 방으로 들어가던 사람이, 마치 당당하다는 듯 옆에서 통화를 이어간다.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는 말들.
그리고, 흰색 아디다스 폴라 티셔츠며 몽블랑 볼펜 같은 ‘누가 준’ 물건들이 늘었다.
이상했다.
그런데 더 이상한 건, 그가 요즘 나에게 다정하다는 거였다.
꼬인 걸까?
바라지 않는 친절은 불편했고, 원하지 않는 배려는 거북했다.
같은 공간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하는 것조차 마뜩잖았다.
그러다 손목이 아프다며 남편이 한의원을 찾았다.
꽤 오래된 동네 한의원이었는데, 의사는 젊었다.
진료는 남편이 받아야 했지만, 의사는 내 얼굴을 보더니 말했다.
“맥이 너무 약하세요. 식사 제대로 하세요? 요즘 잠 못 주무시죠?”
정곡을 찌르는 질문에 얼굴이 붉어진다.
“그냥… 그럭저럭이요.”
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의 말은 남편을 향했다.
“배우자분 건강이 많이 안 좋으세요.
오래 함께하시려면 한약이라도 지어주세요.
이 정도로 약한 맥은 흔치 않습니다.”
그 말에 남편은 퉁명스럽게 응수했다.
“약을 먹어야 한다면 내가 먹어야죠. 집에서 놀고먹는 사람이 무슨…”
뭐?
내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한의사 앞이 민망해 눈을 내리깔았다.
'그냥… 그냥 그런 말은 안 하면 안 될까? 꼭 이렇게까지 말을 해야 했을까?’
상처는 늘 의도 없이, 너무 손쉽게 날아왔다.
억지로 웃으며 말했다.
“저 보기보다 건강해요, 선생님.ㅎㅎ
한의원을 나오자 남편은 더 크게 말했다.
“약 팔아먹으려고 별 말을 다 하네. 참 나…”
뭐래니.
약은 바라지도 않는다, 제발 입이라도 닫아줘.
며칠 뒤, 남편은 무릎에 박았던 철심을 제거하려다 수술이 잘못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수술이 필요하다는 말에 의외로 조용히 받아들였다.
그 사이 나는 병원 일정을 다시 짰다.
이번엔 의사를 바꿨다.
말 한마디 따뜻함이 없던 여의사 대신, 부드러운 남자 의사로.
“그동안 많이 애쓰셨네요. 용기 잃지 마세요.”
그 말 한마디가 어찌나 따뜻하게 들리던지.
괜히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도 안 되는 사람이 찾아와서 얼마나 부담스러울까?
참, 고양이 쥐 걱정하고 있다.
이번이 딱 10번째다.
도끼로 찍어도 안 쓰러질 숫자.
비웠고, 또 비웠다.
이젠 남길 것도 없다.
아무 생각도 하지 않기로 했다.
남편은 다시 입원했고, 나는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전날 병원을 들렀다.
왠지 다음 날은 병원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혼자 있고 싶었다.
“야, 어차피 안 될 건데 뭐 하러 가?”
남편은 툭 내뱉는다.
이젠 상처도 안 난다.
무표정으로 말했다.
“집에 가고 싶어서.”
그날 밤, 불현듯 큰엄마가 떠올랐다.
쪽 비녀를 꽂고, 평생 자식 없이 남의 자식을 키워내신 분.
가족묘에도 묻히지 못하고 바람처럼 뿌려진 존재.
“큰엄마, 저 이번엔 될까요?”
“평생 자식 없는 그 마음… 저도 이제 조금은 알아요.”
부탁이었다. 진심으로.
그리고...
그날 밤은 달빛이 너무 포근했다.
토닥토닥, 누군가 등을 쓸어주는 듯했다.
혹시 내일, 이 모든 희망이 절단 나더라도, 울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이젠 무너지지 않겠다고, 내 인생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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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느긋하게 병원을 다녀왔다.
그리고 차 한 잔을 내렸다.
그때.
전화벨이 울렸다.
“허걱!”
놀라서 숨이 멎을 뻔했다.
병원인가?
… 남편이다.
“안 오냐?”
“조금 있다가 갈게.”
“왜?”
알면서 묻는다.
병원 전화가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기다리고 있었는지 알면서.
아니, 모를까?
몰라. 모르니까 저러지.
시간은 흘렀다.
병원에서 연락은…
없었다.
단 한 번도 먼저 연락이 온 적 없던 병원.
“축하합니다, 임신입니다.”
언젠가 그런 전화를 받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이번에도 없다.
역. 시. 나.
이번에도 역시나.
축하 전화는커녕, 침묵이 전부였다.
이젠 전화 확인조차 겁이 났다.
확인 사살이 두려웠다.
그래도 해야 했다.
이 악물고,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
딸깍. 간호사.
이름을 말하자, 잠시만요. 담당 의사 바꿔드릴게요.
그 말로, 끝이었다.
간호사의 ‘축하합니다’는 없었다.
말없이 의사에게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것이 말해졌다.
역. 시. 나.
또다시, 역시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