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내자. 파이팅! 우리 아직 안 끝났어.
하루를 버텨낸 엄마의 고백
아이가 학교에서 문제 행동을 했다는 문자를 받았다.
겉으로는 담담히 대응했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눈물이 쏟아졌다.
그 순간, 나는 또다시 죄인이 된 기분이었다.
'당당해라’와 ‘미안하다’ 사이
사람들 앞에서는 늘 고개를 숙인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말한다.
“어디서든 당당하게 행동해. 움츠러들지 마.”
그리고 속삭인다.
“엄마는 항상 네 편이야.”
아이에게 나는 태양 같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밤이 되면 이불을 걷어차며 후회한다.
강함과 두려움, 단호함과 불안이 뒤엉켜 잠 못 이루는 밤이 이어진다.
장애라는 이름 앞에서
“장애라고 무조건 이해받아야 하는 건 아니야.”
이렇게 말하지만, 세상이 날카롭게 내 아이를 향해 소리칠 때
나는 또 쪼그라든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건 한숨뿐이다.
혼자 견뎌내야 하는 이 아픔이 차곡차곡 쌓이다 보면
어느 날은 가루처럼 흩어져 사라지고만 싶다.
앞을 보는 건 희망이 아니라 고문이 되고,
넘치는 감정은 나를 끝없는 자책 속으로 몰아넣는다.
‘내일은 더 나아질까?’ 그 질문조차 이제는 지친다.
함께인 듯, 우리만 다른 자리
교회 가족들은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리고 예배에 온다.
행사 때마다 온 가족이 모여 웃고 다투고,
목장 모임에서 티격태격해도 결국 ‘함께’다.
우리는, 아니다.
교회에도 함께 나가지 않고,
행사에도 참석하지 않으며,
내 신앙을 멋대로 비난하는 사람과 나는 완전히 다른 곳에 서 있다.
가끔 스쳐간 교인들이 보내오는 안부 메시지에도
나는 꾸며내고 둘러댄다.
솔직히 말할 용기조차 없다.
버텨야 한다는 다짐
내가 왜 이렇게까지 와버린 걸까.
감정도, 말도, 믿음도 모두 입을 다문 채
본의 아니게 나를, 우리 가족을 덧씌우는 이 삶이 숨 막힌다.
하루라도 빨리 정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나 그는 말한다.
“절대 네 뜻대로는 안 돼. 몇 년이고 끌고 갈 거야.”
잊고 지냈던 깊은 한숨이 다시 하루하루 나를 좀먹는다.
하지만 정말 이대로 무너질 건가?
정말 남은 인생을 불구덩이 속에 던질 건가?
아니다.
이럴수록 버텨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다시 일어서야 한다.
마치 기계처럼 되뇌는 그 말이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유일한 울림이다.
오늘을 살아낸 이유 하나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하루도 아이와 함께 밥을 먹고, 눈을 맞추며,
서툴지만 살아냈다는 이유 하나로,
나는 오늘에 감사한다.
PS –
가끔은 하루를 버텨낸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힘내자는 말이 무색할 만큼 지칠 때,
그래도 끝까지 나를 붙잡는 **‘한 조각의 희망’**을
당신도, 나도 놓지 않길 바란다.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