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볼만한 영화 짐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럴

크리스마스 캐럴 - 찰스 디킨스

by 레토

‘스크루지’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미지는 구두쇠, 돈밖에 모르는 욕심 많은 할아버지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어김없이 소환되는 인물.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읽고 있으니, 무슨 책을 읽고 있는지 옆에 있던 아이가 궁금해하였고 나는 별다른 설명 없이 “스크루지 할아버지 이야기야”라고 말했다. 그런데 아이는 자기도 잘 알고 있다며 도날드덕에 나오는 할아버지라고 하였다. 디즈니 도날드덕 시리즈에 등장하는 스크루지 맥덕. 늘 돈을 사랑하고, 금고에서 헤엄치며, 세 조카와 티격태격하던 그 할아버지. 나 역시 어릴 적 재미있게 보았던 캐릭터라 웃음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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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다 궁금해졌다. 이렇게 유명한 캐릭터라면 찰스 디킨스의 『크리스마스 캐럴』을 원작으로 한 영화가 있지 않을까? 그러다 짐 캐리의 〈크리스마스 캐럴〉이라는 영화를 찾아보게 되었다.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이브 밤, 세 명의 크리스마스 유령을 만난다. 과거의 유령은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보여주고, 현재의 유령은 그의 주변 세상이 어떻게 흘러가고 있는지를 마주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유령은 아무도 돌보지 않는 쓸쓸한 결말을 내밀었다.


이 하룻밤의 만남을 지나며 스크루지는 우리가 알고 있던 구두쇠에서 삶의 태도를 바꾸는 한 인간으로 변하게 된다. 짐 캐리의 영화는 이 변화를 재미있는 캐릭터와 강렬한 영상으로 확장했다. 익숙하고 흔한 인물과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크리스마스 이브날 밤, 가족이 함께 모여 앉아 포근한 담요를 덮고 맛있는 귤을 먹으며 원작인 책도 읽고 영화도 보면 따뜻한 추억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 (2009)

짐 캐리 주연의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2009)은 찰스 디킨스의 고전 『크리스마스 캐럴』을 원작으로 한 3D 모션 캡처 애니메이션이다. 로버트 저메키스 감독이 연출했으며, 짐 캐리는 스크루지와 세 명의 크리스마스 유령을 1인 다역으로 연기했다. 게리 올드먼, 콜린 퍼스, 밥 호스킨스, 로빈 라이트 펜, 케리 엘위스 등 이름만으로도 신뢰를 주는 배우들이 주요 성우로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화려한 영상미 속에서도 인간의 변화와 선택이라는 원작의 메시지를 충실히 전하는 겨울에 어울리는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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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71

아! 그러나 스크루지는 맷돌 손잡이를 꽉 움켜쥔 손아귀처럼 인색하기 짝이 없는 사람이었다. 쥐어짜고, 누르고, 움켜쥐고 벅벅 긁어모으고, 한번 잡으면 절대 놓지 않는 탐욕스러운 늙은 죄인! 게다가 부시에 쳐서 불꽃 한 번 제대로 피워 보지 못한 부싯돌처럼 단단하고 날카로웠으며 굴처럼 음흉하고 좀처럼 속을 내보이지 않는 외톨이였다.


p.75

“감히 말씀드리겠는데, 세상에는 굳이 덕을 보지 않아도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것들이 아주 많아요.” 크리스마스도 그중 하나죠.


p.95

“자네에게 유령 셋이 찾아올 걸세.”

스크루지의 안색이 유령만큼 침울해졌다.

“그게 자네가 말한 기화와 희망인가? 제이컵?”

스크루지가 머뭇거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렇네.”


첫 번째 유령

p.102

묘하게 생긴 어린아이의 모습이었다. 아니 어린아이 같으면서 한편으로 노인 같아 보이기도 했다. 초자연적인 매개를 통해 보여서 그런지 시야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 어린아이만 하게 축소되어 보였다. 목덜미에 넘실거리고 등까지 길게 내려온 머리카락은 나이에 걸맞게 하얗게 셌지만 얼굴은 주름 하나 없고 피부는 지극히 보드랍고 혈색이 좋아 보였다.


p.106

“학교가 텅 비어 있진 않군.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는 외톨이 소년이 아직 저기 남아 있어.”

유령이 말했다.

스크루지는 그 아이가 누구인지 않다고 말하면서 흐느끼기 시작했다.


p.117

“아닙니다. 실은 방금 내 직원에게 따뜻한 말 한두 마디라도 건넬 걸 그랬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그뿐이에요.”

스크루지가 이런 소원을 입 밖에 내는 순간 과거의 스크루지가 등잔불을 껐다.


p.122

이제야 스크루지는 좀 더 찬찬히 살펴보았다. 이 집의 주인은 아내와 다정하게 몸을 기대어 오는 딸과 함께 난롯가에 앉아 있었다. 저렇게 예쁘고 앞날이 희망찬 여자아이가 자신을 아빠라고 부를 수도 있었는데, 그랬으면 황량한 겨울 같은 자신의 인생에 봄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자 스크루지의 시야가 점점 흐릿해졌다.


과거의 유령: 과거를 마주할 때 현재가 변한다

첫 번째 유령이 스크루지에게 보여준 것은 친구들과 웃던 장면이나 성공의 기억이 아닌 학교에 홀로 남겨진 한 아이의 모습이었다. 친구들에게 따돌림당하고 크리스마스에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외톨이 소년. 스크루지가 흐느낀 이유는 그 아이가 낯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그때 이미 혼자였고 지금도 여전히 혼자다.


과거의 크리스마스 유령은 스크루지를 꾸짖지 않았다. 대신 차갑고 인색한 노인은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수없이 외면한 상처가 굳어 만들어진 모습임을 보여주었다.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넬 수 있었던 순간과 사랑을 선택할 수 있었던 갈림길들. 스크루지는 그 장면들 앞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기 시작한다.


이 유령이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했다. 인간은 하루아침에 괴물이 되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과거를 직면할 수 있다면 지금의 삶의 태도 역시 바꿀 수 있다는 희망. 스크루지의 변화가 이 하룻밤의 반성에서 시작되었듯.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잊고 지냈던 과거의 나를 다시 제대로 마주할 용기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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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유령

p.128

소파에는 호탕해 보이는 거인이 거나하게 취한 모습으로 편안하게 앉아 있었다. 스크루지가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보자, 거인은 풍요의 상징인 뿔 모양의 횃불을 높이 쳐들어 스크루지를 비췄다.


p.142

“유령님, 꼬맹이 팀이 살 수 있겠지요? 제게 말씀해 주세요.”

스크루지가 전에는 알지도 못했던 관심을 보이며 말했다.


p.150

“정말 재밌는 양반이야. 사실 그래. 그다지 상냥한 분은 아니지. 하지만 당신의 괴팍한 성격 때문에 스스로 벌을 받고 계시니 굳이 나쁘게 얘기할 건 없지.”

스크루지의 조카가 말했다.


p.151

“난 참을 수 있어! 난 삼촌이 안 됐어. 아무리 미워하려고 해도 화가 안 나. 그분의 고약한 성미 때문에 고통받는 사람이 누구겠어? 언제나 당신 자신이지. 우리를 미워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릿속에 단단히 집어넣으시곤 어떻게 됐지? 그렇다고 뭐 대단한 저역 식사를 놓치신 건 아니지만.”


p.159

“인간의 아이들이지. 나에게 매달려 제 아버지로부터 구해달라고 하고 애원하고 있다. 사내아이들의 이름은 ‘무지’이고 여자아이의 이름은 ‘궁핍’이다. 이 두 아이를 경계하라. 그리고 이 두 아이와 비슷한 것들을 경계하라. 그러나 무엇보다 이 사내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내 눈에는 이 아이의 이마에 적힌 ‘파멸’이란 글자가 보인다. 그 글자가 지워지지 않는 한 이 아이를 경계해야 한다. 물리쳐야 한다!”


현재의 유령: 외면하지 말아야 할 얼굴들

두 번째 유령이 보여준 것은 스크루지 그가 발 딛고 서 있는 이 순간의 세상이다. 현재의 크리스마스 유령은 결핍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삶을 보여준다. 넉넉하지 않은 식탁 위에서도 이어지는 온기 있는 대화와 서로를 향한 배려는 스크루지가 한 번도 생각하지 않은 풍경이다. 그는 처음으로 ‘가난함’과 ‘불행함’이 같은 말이 아님을 목격한다.


이 유령과 함께한 여정에서 스크루지는 처음으로 타인의 삶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다. 숫자와 계산에만 민감했던 그가 누군가의 안부를 묻고 한 아이의 내일을 걱정한다. 조카의 대사를 통해 그의 성미가 결국 가장 크게 상처 입힌 대상이 스크루지 자기 자신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인간적인 관계를 거부한 대가는 고독이 되어 돌아와 그는 그 고독 속에서 외롭게 살아왔다.


과거를 마주해야 현재가 변할 수 있지만 과거를 이해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미래를 두려워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다. 중요한 것은 현재 자기 자신이 무엇을 바라보고 있고 무엇을 외면하고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스크루지는 현재를 바꾸지 않는 한 어떤 미래도 달라질 수 없다는 사실을 두 번째 유령을 통해 배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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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유령

p.162

유령은 천천히 장엄하게 소리 없이 다가왔다. 유령이 오자 스크루지는 무릎을 꿇었다. 이번 유령은 대기를 뚫고 올 때 음산함과 신비함을 내뿜는 것 같았다.


p.165

“장례식은 아주 저렴하게 치르겠구먼.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가겠다는 사람은 하나도 없으니 말이야. 우리라도 자발적으로 조문단을 꾸려서 가야 하는 건 아냐?”


p.184

스크루지는 벌벌 떨면서 무덤 쪽으로 기어갔다. 그리고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로 버려진 무덤의 묘비에 쓰인 이름을 읽었다. 거기에는 ‘에브니저 스크루지’라고 적혀 있었다.


p.187

“앞으로는 과거와 현재, 미래의 세 분 유령 님의 뜻대로 살아가겠습니다! 세 분 유령님을 잊지 않겠습니다. 이봐, 제이컵 말리! 내가 하나님과 크리스마스를 찬양하고 있네! 이렇게 무릎을 꿇고 말이야! 제이컵, 이렇게 무릎을 꿇고 말일세!”


p.197

스크루지는 그 후로 더 이상 유령들을 만나지 않았고 ‘완벽한 금욕주의자’로 살았다. 그리고 살아있는 사람들 가운데 크리스마스를 어떻게 보내야 하는지에 대한 말이 나올 때면 언제나 그의 이름이 언급되었다. 진심으로 바라보니 우리 모두도 스크루지처럼 불리길! 그리고 꼬맹이 팀의 말대로 우리 모두에게 신의 가호가 있기를!



미래의 유령: 선택에 따라 바뀔 수 있는 그림

세 번째 유령은 말이 없다. 그는 스크루지를 미래로 데려가 조용히 보여주었다. 그곳에는 애도도 추억도 남지 않은 죽음이 하나 있었다. 한 인간의 삶이 이렇게까지 무심하게 정리될 수 있다니. 스크루지는 처음으로 진정한 공포를 느꼈다. 그것은 죽음 그 자체보다, 아무도 슬퍼하지 않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미래의 크리스마스 유령이 보여주는 장면들은 모두 스크루지가 살아온 태도의 결과다. 인간적인 관계를 거부하고 타인을 외면하며 오직 자신만을 위해 살아온 삶이 어떤 결말로 이어지는지 그는 더 이상 부정할 수 없었다. 스크루지는 무릎을 꿇었다.


미래는 확정된 운명이 아니다. 세 번째 유령이 전하는 메시지는 그저 예언자처럼 너의 미래는 이렇게 될 것이라고 하는 것이 아니다. 삶의 태도에 대한 변화 없이 이대로 이어진다면 이렇게 된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 유령은 가장 냉혹했지만, 결국 선택의 책임을 온전히 스크루지에게 돌려주며 가장 자비로웠다. 미래는 두려워해야 할 예언이 아니라, 지금의 태도로 다시 써 내려갈 수 있는 결과다. 유령들이 떠난 뒤, 스크루지는 삶의 전체 방향을 바꾼 사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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