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체성과 존재의 감각

양면의 조개 껍데기 - 김초엽

by 레토

처음 김초엽 작가를 만났던 것은 『지구 끝의 온실』이었다. 기후변화로 인한 상실과 이어진 회복이 교차하는 세계에서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돌보고 지켜보는 일이라는 문장이 내게 남았다. 그런데 이번에 읽은 『양면의 조개껍데기』에서는 그 세계가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각 소설의 배경은 더 작고 일상적이며 이야기의 무게는 겉으로 보기엔 가볍지만, 마음속으로는 훨씬 깊이 가라앉을 만큼 무게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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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개껍데기의 안쪽과 바깥이 서로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사람 역시 한 면으로는 결코 설명되지 않는 존재라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누군가의 겉모습을 먼저 보고 판단하지만 결국 마음에 닿는 것은 그 사람의 속을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다. 김초엽의 이번 소설집은 바로 그 마음속을 들여다보는 일의 어려움과 아름다움, 그 양면성에 관한 메시지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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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브다니의 여름 휴가

p.13

언니가 기겁할까 봐 한 번도 자세히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저는 작년 가을까지 인공장기 배양 회사에서 일했어요. 처음에는 심장파트에서, 다음에는 간 파트에서요. 의뢰자들에게 세포와 유전자 샘플을 제공받아 면역반응이 없는 이식용 세포 기반 인공장기를 길러내는 일이었죠.


p.17

우리 가게 손님들은 주로 자신이 인간이 아닌 다른 종이라고 믿는 아더킨(otherkin)들이었어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그들은 자신이 인간의 몸을 지니고 태어난 고양이나 늑대, 혹은 드래곤 같은 것이라고 진심으로 믿어요.


p.27

“녹슨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로 녹슬고 싶어요.”

수브다니는 꿈결 같은 목소리로 말했어요.


p.29

수브다니의 피부는 인간의 피부가 아니라, 안드로이드에 인간화 시술을 하는 매우 특수한 경우에 한정해 사용되는 세포 기반 인공피부였어요. 그 결과가 말해주는 건 분명했죠. 수브다니는 원래 안드로이드였어요. 그리고 인간화 시술을 받아서 거의 사람처럼 보이게 된 것이고요.


그러니까 아주 단순하게 요약해보면, 수브다니는 인간이 되고 싶은 기계도 아니고, 기계가 되고 싶은 인간도 아니고, 기계였다가 인간이 되었다가 이제 다시 기계가 되려는 존재였던 거예요.


p.54

베를린에서 사장이 보았다는 남상아와 수안의 마지막 공동 작업은 정확히는 죽음의 실천도 아니고, 실천적 죽음도 아닌 ‘변화의 실행’이라는 제목의 작품이었어요.


그 영상 속에서 수안은 폐기된 금속 로봇들 수십 대를 해변가에 가져다 놓아요. 파도가 피며 몸을 반쯤 적셨다가 다시 빠져나가는 위치에다가요. 그리고 자기 자신도 그 수많은 금속 로봇 사이에 자리 잡고, 로봇들과 자신의 손목을 끈으로 연결해요.


정체성은 수많은 선택의 과정들이 모여 만들어진다

『양면의 조개껍데기』의 첫 번째 소설인 「수브다니의 여름 휴가」는 인간과 기계 그리고 그 경계에 선 존재의 이야기를 다룬다. 주인공은 한때 인공장기 배양 회사에서 일했다. 타인의 몸을 위해 새로운 장기를 길러내는 일을 했다. 그런데 수브다니를 만난 이후 몸을 이루는 것들에 관한 생각이 이 단순한 의학적·기술적 문제가 아닌 존재를 가늠하는 질문으로 확장된다.


수브다니는 인간화 시술을 통해 사람과 거의 구별되지 않는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다시 기계로 되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녹슨 것처럼 보이는 게 아니라, 정말로 녹슬고 싶어요.”라는 문장은 이 소설의 중심축이었다. 녹슬고 싶다는 것은 변하지 않는 완전함보다 시간에 닳아가는 유한함을 스스로 선택하고 싶다는 뜻이었다. 기계가 유한함을 갈망한다는 모순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 가진 상실과 그로 인해 생겨나는 감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수브다니는 인간이 되기 위해 몸을 바꾼 것이 아니었고 기계로 돌아가려는 것도 마찬가지의 시도였다. 그는 단지 자신이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선택하고자 했던 것뿐이다. 소설처럼 어떤 시술을 통해 나의 외형을 인간이 아닌 제3의 존재로 선택하며 살아갈 수는 없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어떤 존재로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정도는 충분히 선택하며 살아갈 수 있다. 중요한 건 어떤 형태를 갖추는가가 아니라 그 형태를 스스로 선택하려는 마음일 것이다. 정체성은 한 번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는 동안 계속 다시 만들어지는 것. 수브다니의 이야기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싶은가?’라는 질문을 남겨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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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면의 조개껍데기

p.63

“맞아요. 그동안은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균열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잘 밀봉해 왔다고 믿었지만 한번 틈이 생기면, 사실은 그전에도 괜찮지 않았다는 걸 알게 되죠.”


p.67

“샐리 씨 알고 있죠? 이런 상태에서는 안 돼요. 두 분…… 아니, 그보다 더 많나요? 어쩄든 타자아들 사이의 합의를 거쳐야 합니다. 설령 동의서에 혼자 사인하는 데에 성공한다고 해도, 두 달 가까이 되는 시술 준비 과정에서까지 다른 자아를 속일 수는 없어요. 자기 자신을 온전히 속이는 게 불가능한 것과 마찬가지인 겁니다.”

p.77

열두 살 때, 그 애가 나에게 처음 말을 걸었다.

―제발 그 멍청해 보이는 원피스는 입지 마. 내가 그 천 쪼가리를 입는다고 생각하면 끔찍하니까. “대체 무슨 소리야? 이 원피스가 어때서?”


길거리에서 혼자 중얼거리고 나서야 그 목소리가 들려온 곳이 어딘지 깨달았다. 나에게 말은 건 그 애는 바로 나였다. 정확히는 나의 조금 다른 면이라고 생각했던 목소리였다. 모두가 잠든 고요한 밤에 께어 있는 나, 거울 앞에 설 때면 혐오감을 느끼는 나, 사람들의 시선을 잘 마주치치 못하고 엉뚱한 소리를 해대는 다, 그건 내가 아닌 그 애, 타자아였다.


p.106

의식 위에 있는 레몬에게 나를 모두 맡기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애의 세계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언제나 조금씩 혼란스러워서, 나는 레몬에게 휩쓸리는 것을 늘 두려워했다.

처음으로 온전히 개방한 내 자아 안쪽으로 레몬의 세계가 파고든다.


여럿인 나를 이해하는 방식. 함께 머무는 자리 내어주기

의식과 무의식 그리고 한 사람 안에서 나타나는 서로 다른 자아라는 소재는 이전에도 여러 소설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다루어져 왔다. 하지만 「양면의 조개껍데기」가 특별하게 다가온 이유는 그 분열로 인해 일어난 사건이나 특별한 문제에 초점을 맞춘 것이 아닌 한 사람 안에 공존하는 감정의 결로 풀어낸 방식 때문이었다. 이 소설에서 레몬은 분리된 타인이 아니라 샐리가 밀봉해 둔 마음의 얼굴, 타자아다. 류경아가 그들에게 각각 이름을 붙여준 것은 분리를 위한 구획으로 보이지만 오히려 샐리가 품고 있던 감정들을 이해하기 위한 언어를 마련해준 행위가 아니었을까?


등장인물도 적고 배경도 좁지만, 오히려 그 제한된 공간이 인물의 감정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외부의 큰 사건 없이도 마음이 요동치는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면 샐리의 이야기를 통해 나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었다. 소설 속 인물처럼 완벽히 분리된 자아는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기분과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태도와 목소리를 드러낼 때가 있다.


다정한 나, 상처받기 쉬운 나, 예민해지는 나, 때로는 스스로도 두려워지는 나. 그 모든 얼굴은 ‘진짜 나’와 ‘가짜 나’로 나뉘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같은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하는 결들일 것이다. 이 작품은 정체성이 하나로 통합되어야만 온전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때로는 내 모습이나 행동들이 나답지 못해 당황스럽고 불편해지더라도 그 모든 모습 또한 나다움의 일부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인정해야 한다. 여러 마음 감정 모두가 자연스럽게 함께 머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어야 내 삶이 조금 더 편안해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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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고 미지근한 슬픔

p.240

양봉복과 우주복이 얼마나 닮았는지, 벌떼와 대면하는 순간의 시끄러운 고독이 얼마나 진공 속에 있는 것 같은지. 양봉복 안에서 벌어지는 감각적 사투와 벌들의 군집 움직임에 대한 순수한 감탄도 남겼다. 다른 벌치기들은 그 일지를 입문자의 과장되고 유치한 낭만 정도로 여기며 지나치는 것 같았지만, 개중에는 단하를 대 놓고 비웃는 사람들도 있었다.

―왜 그런 한심한 상상을 해? 이제는 우주에 갈 수도 없는 시대인데.


p.248

“그 이런 부탁을 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규은은 여전히 긴장한 듯 벌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었다. 벌에 신경을 쓰면 오히려 쏘인다고, 신경 쓰지 말고 하던 얘기나 계속 하라고 단하가 말하려는 순간, 규은이 물었다.

“혹시, 벌에 좀 쏘여봐도 될까요?”

별 미친 인간이 다 있군.


p.253

“단하님은 아주 오래 양봉을 하셨잖아요. 여전히 벌에 쏘이면 많이 아픈가요?”

“아프지”

단하는 대답하며 쏘인 부위를 건드려보았다.

“그런데 왜 아플 위험을 감수하고 계속 하세요?”

규은의 질문에 단하는 대답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p.257

관찰 기록의 알아볼 수 없는 약어들 사이에서도, 단하의 눈에 확연히 들어온 한 줄은 이런 것이었다. 왜 모든 것이 거짓에 불과한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여전히 살아있다고 느낄까? 이로써 믿고 싶지 않지만 명백해진 사실이 있었다.


규은은 ‘몰두’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몰두는 허무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기 위한 규칙이다.

단하는 몰두하지 않는 사람이 싫었다. 이 세계가 거대한 양자 컴퓨터 속 큐비트서버로 구현된 시뮬레이션이고 더는 진짜 인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것을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거대한 공허만을 안겨준다. 이 세계에 몰두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만이 진실을 아는 것처럼 다른 모든 이들을 비웃곤 했다. 그들은 모두가 아는 사실을 끊임없이 다시 말하고 싶어 했다. 어차피 우리는 실재하는 물리적 몸이 없는, 그래서 통 속의 노조차 되지 못하는 부유하는 데이터에 불과해.


p.259

고대인들이 모든 인간은 죽는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매분 매초 죽음의 무게에서 눈 돌리며 살아갔던 것처럼, 몰두 역시 이 세계에 도사림 근본적인 허무에서 도망치며 살아가는 것이다.


p.272

“고립이나 고독이 중요한 것 같지는 않네요…….”

규은이 지친 채로 말했다.


p.288

규은은 현존감을 느끼고 싶어 했고, 이 세계 사람들의 허무감에 잠식되는 상황을 해결하고 싶어 했다. 어떤 사람들은 단하처럼 아주 오랫동안 특정한 일과 현상에 몰두한 끝에 큐비트 몸을 가지고 살아있다는 느낌을 스치듯 포착하지만, 그건 극히 일부의 사람들일 뿐이었다. 게다가 단하 역시 몰두가 깨어진 이후로 아슬아슬한 느낌을 받고 있으니, 아마도 모두에게 세계가 시뮬레이션이라는 것을 애써 잊어버리고 양봉이나 유리 공예 따위에 몰두하라고 권하는 건 가능한 해결책은 아닐 터였다.


p. 291

어디로 가야 할지는 알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알았다. 살아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것, 이 세계도 이곳의 사람들도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단지 다른 방식으로, 어떤 생물도 존재한 적 없는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작은 몰두 한 조각

「달고 미지근한 슬픔」은 『양면의 조개껍데기』 안에서 가장 독특한 전제 조건을 가진 이야기였다. 이 세계에서는 인간이 더 이상 물리적 생명체인지 혹은 양자 큐비트에 기록된 데이터인지조차 분명하지 않다. 모든 것이 시뮬레이션이라는 전제가 깔린 세계에서 ‘살아있다’는 감각은 더 이상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증명해야 하는 감각이 되었다.


단하는 양봉에 몰두하며 그 증명을 시도한다. 벌에 쏘일 위험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벌들과 마주하는 이유는 단 하나, “살아있다는 느낌이 드니까.” 통증, 열기, 떨림 같은 몸의 감각은 이 세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반대로 규은은 모든 것이 가짜라는 인식 속에서 허무에 잠식되어 가는 인물이다. 단하의 몰두가 허무를 잊기 위한 전략이라면 규은은 허무를 머리로만 이해한 끝에서 의문을 품게 된다.


이 소설은 결국 진짜와 가짜의 문제가 아니라 살아있음을 어떻게 느끼는가에 관한 이야기였다. 감각에 몸을 내어주어도 좋고 몰두에 기대어도 좋다. 중요한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이 세계에 발을 딛고 자신의 존재를 느끼려는 시도일 것이다. 살아 있다는 감각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마지막 문장은 지금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AI의 발전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 속에서 인류의 미래를 상상하면 휴머노이드에게 잠식당한 존재들의 이미지가 가장 많은 주류를 이룬 가운데, 현실이 불확실하고 모든 것이 허무해 보일 때일수록 우리는 결국 나를 다시 살아있게 하는 각자의 그 무언가에 몰두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허무에 빠져가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대로 생각할 수 있는 자신의 몰두 한 조각을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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