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펜스를 쥐고는 바라볼 수 없는 달

달과 6펜스- 서버싯 몸

by 레토

The Moon and Sixpence


세계문학전집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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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던 찰스 스트릭랜드가 어느 날 모든 것을 버리고 그림을 그리기 위해 떠나면서 시작되는 소설이다. 안정적인 직업과 가족, 사회적 지위를 내려놓고 오직 내면의 욕망에만 충실한 그의 선택은 ‘예술을 위한 삶’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다. 이 작품은 달을 바라보는 이상과 손에 쥔 6펜스 같은 현실 사이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가며 그 선택의 대가는 무엇인지 질문을 남긴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이 소설을 쉽게 좋아할 수 없었다. 주인공 스트릭랜드의 선택은 용기라기보다 잔인함에 가까워 보였고 그의 예술은 숭고함보다 불편함을 먼저 남겼다. 그럼에도 책을 다 읽고 난 후 그가 완전히 틀린 사람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었다. 달을 향해 걸어간 한 인간의 극단적인 선택은 지금 내가 붙들고 있는 6펜스의 무게를 돌아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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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9

그렇다고 문외한은 그림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문외한이 그림 감상 능력을 보여 주려면 그저 말없이 수표나 끊어 그림만 사 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는 오만한 화가들의 생각에는 찬성할 수 없다.

p.29

“남편이 있나요?” 내가 물었다.

“이, 그럼요. 시내에서 꽤 알아준다나 봐요. 아마 증권 중개인일 거예요. 아주 따분한 사람이에요.”

p.35

스트릭랜드 부부는 별 관심도 없는 많은 사람들에게 저녁 식사 ‘빚’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초대했으며, 그들은 초대를 수락했던 것이다. 왜? 부부만 마주 앉아 식사를 하면 따분하니까.

p.50

시골집에 육 주일간 세를 들어 살고 있었죠. 계약 기간이 끝나자 처제는 남편에게 어느 날짜에 런던으로 돌아가겠노라고 편지를 썼답니다. 그런데 글쎄 이 친구가 파리에서 답장을 보냈어요. 체제랑은 이제 더 이상 살 생각이 없다고 말입니다.

“이유를 뭐라고 했습니까?”

“아니 글쎄, 이유라는 게 한마디도 없었다니까요. 나도 그 편지를 봤소만 열 줄이나 되었을까.”

p.56

에이미 보시오.

집은 다 잘 정돈되어 있으리라 생각하오. 앤에겐 당신이 말한 대로 일어두었으니 돌아오면 당신과 아이들 식사가 준비되어 있을 것이오. 하지만 나는 당신을 보지 못하오. 당신과 헤어지기로 마음 먹었소. 내일 아침 파리로 떠날 작정이오. 이 편지는 그것에 도착하는 대로 부치겠소. 다시 돌아가지는 않소. 결정을 번복하진 않겠소.

찰스 스트릭랜드


스트릭랜드. 나에게 그는 잔인했다.

결혼을 한 부부, 아이를 키우는 부부 중 과연 누가 자신이 원하는 삶을 그대로 살고 있을까? 삶은 늘 선택의 연속이고, 무엇인가를 얻는 순간 다른 무엇인가를 내려놓게 된다. 부모가 되어 자식을 키우며, 또한 서로 아내와 남편으로 살아가며 우리는 저마다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한다. 스트릭랜드 아내의 언행이 다소 불편하게 느껴졌음에도, 그녀가 이렇게까지 혹독하고 잔인한 결말을 감당해야 할 만큼의 잘못을 저질렀는지는 쉽게 납득할 수 없었다.


스트릭랜드에게 아내와 아이들은 그의 세계를 지탱해 주는 가장 든든한 정서적 울타리가 아니었을까?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읽어서인지 마음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소설 초반부 그가 보여 준 갑작스럽고 독단적인 선택은 끝내 이해되지 않았고, 무엇보다 잔인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장면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나 역시 달이 아닌 6펜스를 붙잡고 살아가는 사람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다시 태어나지 않는 이상, 나는 평생 그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6펜스에는 가족이 주는 정서적 평온함도 있는 것일까?


p.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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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도대체 무엇 때문에 부인을 버렸단 말입니까?”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소.”

나는 한참 동안 그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이자가 돌아 버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p.83

나는 남들의 의견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사람을 믿지 않는다. 그것은 무지에서 오는 허세이다. 그것은 남들이 자신의 조그만 잘못들을 비난할 때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뜻인데, 그들은 아무도 그 잘못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다.

p.99

고통을 겪으면 임품이 고결해진다는 말은 사실이 아니다. 행복이 때로 사람을 고결하게 만드는 수는 있으나 고통은 대체로 사람을 좀스럽게 만들고 품게 만들 뿐이다.

p.161

아내가 불쑥 이렇게 말하지 않겠나. ‘더크, 난 이분을 따라갈 거예요. 당신과는 이제 더 이상 같이 못살겠어요.’라고 말야. 나는 무슨 말을 해 보려 했지만 도무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네. 스트릭랜드라는 작자는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계속 휘파람만 불고 있고 말야.

p.181

나는 몇 주일 동안 스트릭랜드를 만나지 않았다. 그가 역겨웠다. 기회만 있었다면 역겹다고 말해 주고 싶었지만, 그 말을 해 주겠다고 일부러 찾아 나설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로서는 도덕적인 문제로 분개하는 일이 어쩐지 쑥스럽게 여겨진다. 그런 일은 어쩐지 자기 만족을 위한 일 같아서 유머 감각을 가진 이에게는 어색하게 여겨지는 것이다.

p.227

“남을 완전히 무시해 버린다는 일이 가능할까요?” 나는 그에게라기보다 나 자신에게 물아ᅠ갔다. “당신은 살아기면서 필요한 모든 일을 남에게 의지하고 있어요.” 혼자 힘으로 홀로 살아가려고 하는 건 가당치 않은 일이에요. 이제 얼마 있으면 병들고 지치고 늙겠죠. 그러면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으로 엉금엉금 찾아오게 됩니다.


나는 타인의 도덕성을 판단할 만한 사람일까?

소설의 중반부로 갈수록 나는 점점 그에게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며 책을 읽고 있었다. 화가 났다. 참으로 무책임한 인간이라고 생각했다. 혼자 내린 단 한 번의 결정에 상대방이 그대로 감당해야 할 삶이 된다는 사실. 그럼에도 책을 읽어갈수록 그 잔인함 마저 어느 정도 이해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그렇게 극단적으로 관계를 끊어내지 않았다면 그는 스스로를 삶의 반대편으로 끝까지 몰아넣지 못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해되지 않는 장면들이 있었다. 병든 그를 도와준 친구, 그리고 그 친구의 아내. 이 일은 그의 예술과 어떤 연관이 있을까.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 해도 그의 행동은 예술가적 고독이 아니라 인간성의 결핍처럼 보였고, 비판적인 시선만 더해졌다. 그런데 그 비판조차 불편해졌다. 나는 과연 얼마나 도덕적인 사람인가, 내가 이 인물의 인간성과 도덕성을 평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일까? 그렇다면 그 자격은 누가 부여하는 것이며, 그 잣대는 누가 만들어 온 것일까?


이 소설은 어느새 주인공을 넘어 나 자신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판단하듯 읽기 시작한 이야기가, 결국 판단하는 나의 기준을 되묻게 만들었다. 『달과 6펜스』가 정말로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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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48

앞서 말한 대로 내가 우연히 타히티를 여행하지 않았던들, 결코 이 책을 쓰지 못했을 것이다. 이곳이 바로 찰스 스트릭랜드가 오랜 방랑 끝에 이른 곳이었으며, 이곳이 바로 그가 자신의 명성을 확립시켜 준 그림들을 그려 낸 곳이었다.

p.250

타히티는 높이 솟은 푸른 섬이다. 깊게 패인 짙은 초록색의 주름은 거기에 고요한 골짜기가 있음을 짐작하게 한다.

p.279

갑판 청소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야, 저것 좀 봐.’하지 않겠소. 그래 고개를 들어 보니 섬이 어렴풋이 보이더란 말이오. 그 순간 내가 평생 찾아다녔던 곳이 바로 이곳이로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소. 섬이 가까워질수록 어쩐지 처음 오는 것이 아닌 것 같았소.

p.296

그는 그림을 그렸고, 책을 읽었으며, 저녁이 되어 날이 어두워지면 아타와 함께 베란다에 나가 앉아 담배를 피우며 밤하늘을 바라보기도 했다. 이윽고 아타는 아이를 낳았다.

그도 역시 이곳에 주저 앉았고, 이들은 다 함께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 어울려 살았다.

p.324

다시, 그때는 한때 인간이었던 주검을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움찔 놀라 물러섰다.

“아니, 눈이 멀고도 어떻게.”

“네, 일 년 가까이 앞을 보지 못했어요.”

p.328

잎을 못 보기 시작하면서, 그림을 그려 놓은 그 두 방에 하루에도 몇 시간이고 앉아 그 그림을 바라봤던 모양입니다. 보이지도 않는 눈으로 말입니다. 아마 그때 평생 보았던 것보다 더 많은 걸 볼 수 있었겠지요.

p.336

그들의 눈길은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있는 나부에 멎었다. 한 소녀가 나부 곁에 무릎을 꿇고 앉아 무심한 아이에게 꽃 한 송이를 내밀고 있다. 말라 빠진 쭈그렁 할머니가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것이 바로 스트릭랜드가 그린 「성가족」이었다.


그럼에도, 글의 중심선과는 어긋난 나의 감정선

이 책이 쓰인 시대의 한계인지, 아니면 작가 개인의 시선인지 쉽게 단정할 수는 없지만, 소설 속 여성에 대한 비유와 묘사는 읽는 내내 거슬렸다. 귀찮은 존재, 조용하고 묵묵히 하라는 대로 따르면 가장 이상적인 존재, 심지어 폭력을 겪고서도 그것을 사랑과 애정으로 받아 들이는 존재로 그려지는 장면들은 불편함을 넘어 거부감이 느껴졌다. 만약 이것이 단지 시대상이라면, 나는 더 이상 그 시대의 감수성을 이해한다는 명목으로 이런 시선을 감내하며 책을 읽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연 지금의 여성들도 그런 존재일까? 아직도 그것밖에 되지 않는 존재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 곳곳에 여전히 그런 인식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여성의 본질이 아니라 특정한 인간이 가진 태도의 문제일 것이다. 성별의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는 남성이어도 충분히 가질 수 있는 왜곡된 마인드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이 폴 고갱의 삶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 고갱의 삶과 소설 속 이야기가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 역시 분명히 다가왔다. 책을 읽기 전에는 한 유명 화가의 파격적인 삶을 다룬 소설이라는 점에서 흥미를 느꼈지만, 책을 덮고 난 뒤 내가 몰입한 감정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했을 중심선과 상당히 어긋나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글을 쓰는 것이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감정만큼은 남기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이 소설을 읽으며 실제로 지나온 감정의 궤적이기 때문이다. 이해하지 못한 지점, 불편했던 시선, 끝내 동의할 수 없었던 장면들까지 포함해서, 이 책은 나에게 질문을 남겼다. 그러나 솔직하게 나는 아직 그 질문 앞에 답을 찾지 못했다. 6펜스를 바라보는 내가 달의 바라보는 시선을 알 수 없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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