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생존전략 이야기 : 닌텐도 편 (3)
최근에 구글과 애플 등 실리콘밸리 회사의 업무공간이 주목받고 있다. 직원들이 놀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놀이를 통해 만들어진 창의성을 기업의 발전을 이용해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업무관리 효율성을 이유로 개방형 오피스를 운영하던 기업들이 최근에는 실리콘밸리의 사무실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청바지를 입도록 권유하고 1페이지 보고서를 시행하는 기업도 늘었다.
하지만 이는 여러 가지로 이상한 정책이다. 예를 들어 전교 수석권에 있다가 최근에 성적이 떨어진 아이가 있다 치자. 이 아이를 공부시키기 위해 전교 1등 아이와 같은 공부환경을 준비해줬다면 그 아이의 성적은 바로 전교 1등이 되는가?
환경을 바꾸더라도 환경을 만든 요인을 바꾸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실리콘 밸리는 특별한 환경이다. 세계적인 기업과 대학이 붙어있는 환경이라 산학협력이 쉽게 이뤄지며 학생이 아르바이트나 인턴십으로 이들 기업에서 일할 수 있는 기회가 많다.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구하기가 쉽기도 하다. 대학의 우수한 연구자료를 활용하기도 쉽다. 자연스럽게 창업이 실리콘밸리에서 이뤄지고 구글, 애플, 페이스북 등의 회사가 태어날 수 있었다.
이렇듯 기업의 초기 환경은 단순히 창업자의 역량과 수익모델만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의 영향도 받는다고 볼 수 있다. 재미있는 건 이게 실리콘밸리만의 특성이 아니라는 것이다.
닌텐도를 이해하려면 교토(京都)라는 지역의 특색을 이해해야 한다.
교토는 한국인의 입장에선 쉽게 이해하기 힘든 도시다. 교토를 무대로 한 일본의 문화 콘텐츠가 로컬라이징 되어 한국에 출시될 때, 콘텐츠의 대상 연령이 낮으면 문화적 장벽을 낮추기 위해 한국의 경주로 현지화를 하는 경우가 있다.
경주는 신라의 도읍지가 있던 곳이라 왕릉 사찰 등의 유적지가 모여있으며, 교토는 약 천년 간 천황이 머물던 수도, 이후 전쟁 피해를 덜 입어, 도시 전체가 그대로 보존된 문화유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로 이런 공통점 때문에 교토를 이해하기 힘들어진다.
이 도시는 관광지로만 먹고 사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토를 일본의 경주’ 같은 곳이라고 이해하면 선입견에 갇힌 채 교토의 진면목을 놓칠 수 있다.
경주의 경우 GRDP(지역 내 총생산)의 40~50%는 광업이 차지한다.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관광, 기타 서비스업 비중은 35~40% 정도다. 도시 대부분이 문화유적지라 새로운 공업 등의 산업이 발전하기 어렵기에 기존 자원을 바탕으로 생활하는 도시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교토는 살짝 상황이 다르다. 교토의 GRDP에서 관광 비중은 10%, 광업의 비중이 30% 정도다. 나머지 비중은 유통과 식품 그리고 제조업 및 첨단 고부가가치 산업에 몰려있다.
게다가 산업 분포도 다양하다. 음식, 담배, 사료 비중이 약 30% 미만, 업무용 기기 및 기구가 10%인데 운송기기, 전자기기, 전자부품, 생산기기 등 없는 것이 거의 없다. 교토는 현대 도시가 갖춰야 할 모든 산업군을 갖추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필요한 모든 것을 생산할 수 있는 곳이 교토다
이렇게 업종이 다양하게 포진된 이유는 교토가 무려 1200년 가까운 시간 동안 일본의 수도였기 때문이다. 사람, 물품, 돈은 수도를 중심으로 모인다. 이 수도가 1200여 년이나 유지되었고 생산기반과 관련 인프라가 상당히 오래전부터 구축된 것이다. 닌텐도가 100년 기업이라지만 사실 교토에서는 어린 신참이다. 업종은 다르지만 서기 578년에 창업해서 지금까지 살아남은 기업도 있다. 사찰 건축 전문회사인 ‘곤고구미(金剛重光)’가 그렇다.
2008년, 닌텐도가 한국에서 성공을 거두자 닌텐도를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났고 이는 교토기업의 특별함을 연구하려는 움직임으로 나타났다.
교토에는 역사뿐만이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유명한 기업이 많다. 이 글의 ‘소재’인 엔터테인먼트 기업 닌텐도, 전자, 정보기기, 태양전지, 세라믹이 주력인 교세라(京セラ: 교토 세라믹), 스마트폰 시대에서 변화하지 못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PC 부품 시장 절대 강자였으며 현재도 모터기술로는 일본 1위인 일본전산(日本電産: Nidec), 전 세계적인 톱클래스 부품회사인 무라타 제작소(村田製作所), 전 세계 1위 음향부품을 만드는 니치콘(ニチコン), 금속 및 항공기술 강자인 아사히 금속공업(旭金属工業) 그리고 이들 기업이 성장하는 공구를 만들었다고 평가받는 시마즈제작소(島津製作所)등 수많은 기업이 있다.
이 외에도 닛케이(日経)가 발표한 자료를 수놓는 여러 우량기업이 골고루 퍼져있다. 세계 1위는 곤란하더라도 일본을 넘어 아시아 1위는 거뜬한 기업들이 포진해있다. 공구부터 시작해서 운송, 제조, 전자기기의 톱클래스 기업들이 모였기에 제조업 강세인 한국에서 애플이 뜨기 전까지 주목을 받은 건 교토기업들이었다.
더욱 희한한 것은 여기 있는 기업들이 전부 니치마켓의 강자들이라는 것이다. 니치마켓(Niche Market)은 틈새시장이라고도 하는데 특정 제품이 집중되는 시장을 말한다.
왜 교토에 니치마켓의 강자들이 몰렸을까? 여기에도 역사적 배경이 있다. 교토는 1200여 년 전 설계될 때부터 사각 그물망 형태의 기획 도시였다. 수도를 중심으로 각 분야에 전문가들이 살아남기 위해 경쟁해왔고, 이들은 소규모였기 때문에 다양한 분야에 문어발을 뻗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한 가지 분야에서 역량을 기르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또한 비슷한 규모의 대도시 도쿄, 오사카와는 달리 재벌의 영향이 약했다. 바로 급행 지하철로 20~30분이면 달려갈 수 있는 오사카만 해도 버스, 운송, 교통, 물류, 백화점 등을 2017년 기준으로 152개의 계열사를 가진 한큐한신 토호 그룹(阪急阪神東宝グループ)이 쥐고 흔들고 있다. 이는 일본의 경제발전기에 퍼스트 무버의 이점을 충분히 살린 성장이었다. 하지만 교토는 이 시점에서 워낙 자기 분야의 개성이 강한 기업이 많았고 이 기업들이 오늘날까지 살아남은 것이다.
닌텐도의 3대 사장이자, 오늘날의 닌텐도는 물론 비디오 게임산업을 새로 만들어낸 위업을 세운 고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은 경박단소(軽薄短小)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달고 다녔다. 가볍고(軽), 얇고(薄), 짧고(短), 작은(小) 제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워낙 닌텐도가 유명한지라 이 멘트가 야마우치 사장의 오리지널인 줄 아는 사람이 많지만 유통업계에서 사용하는 일반적인 용어이며, 교토기업들을 잘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1889년에 창업한 닌텐도는 오히려 영향을 받은 수혜자 중 하나에 가깝다.
이렇게 오래된 기업이 많다면 일반적으로 ‘고집 센 장인’을 떠올리게 된다. 특히 일본은 잘 안 바뀌는 경영스타일로 유명하다. 한 예로 최근에 해외에서 사원 채용을 진행해서 그렇지 일반적으로 일본 기업은 외부 피의 수혈에 소극적이다.
일정 레벨의 대학이 아니면 일정 레벨의 기업에 입사하면 안 된다는 관례가 구직자와 기업 사이에 자리 잡고 있고 외국인은 계약직, 파견직으로는 근무가 가능해도 정직원은 될 수 없다는 내규에도 없는 조항을 인사담당자가 너무도 당연한 듯이 말하는 나라였다. 이것이 저출산 및 글로벌 시장 진출 활성화로 인해 점점 바뀌었을 뿐이다.
그런데 정작 교토에선 다른 양상이 펼쳐진다. 교토 사람들은 자기 속을 잘 안내 보이고 고집이 세며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런 교토 사람들은 해외 인재에 일반적인 일본 사회보다 너그럽다. 이에 관한 수많은 논문이 있을 정도로 보편화된 문화이기도 하다.
이는 대부분의 교토기업이 초기단계에서 글로벌로 진출했기 때문이다. 닌텐도만 해도 매출의 75%는 해외시장에서 일어나고 다른 기업들도 적극적으로 해외에 진출해있다. 니치콘 같은 경우엔 아예 세계 1위다. 이런 특성상 교토의 기업은 싫어도 외국인을 고용할 수밖에 없다. 언어의 장벽을 깨고, 해외 현지 비즈니스를 운영하며, 해외 파트너를 발굴할 인재가 필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도쿄 기업에서 한국인이 눈에 띄는 경우는 스퀘어에닉스(SquareEnix)나 소프트뱅크(Softbank)의 IT회사 정도인 반면 교토 기업에는 한국인이 상당히 많다. 교토기업들은 산학협력, 헤드헌팅, 인재파견회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해서 해외인력, 정확히 말하면 해외 장벽을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채용한다.
산학협력도 활발하다. 일본 총무성은 경제활성화를 바탕으로 한 주요 도시의 기업활동에 관한 자료를 매년 발표하는데 이 자료에서 1이 넘어가면 해당 분야에서 강하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자료에서 교토의 제조업 특화지수는 1.5로 표기되는데, 교육 및 학습 지수가 무려 1.7로 일본 최고다. 면적 대비 대학 수가 제일 많아 학생의 도시라는 별명까지 가지고 있을 정도다.
이 수많은 교육 인프라와 교토기업 간에는 활발한 교류가 이뤄지고 있다. 교토의 기업은 회사 창문 열면 와글와글 몰려드는 대학생을 볼 정도로 기업과 대학이 가깝고 심지어 회사의 옆에 기업이 있을 정도다. 교토대학, 리츠메이칸 대학 등 공학이 강한 대학은 물론 교토사가 예술대학 등 다양한 분야의 대학이 관련 기업과 산학협력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여기서 두각을 보인 인재는 바로 기업에 채용되는 구조이다.
이런 면에서 교토와 실리콘밸리는 그야말로 판박이다
기업 간의 교류 또한 활발하다. 한 예로 아사히 철강공업이 성장할 때 기술지원을 해주고, 관련 설비를 납품한 곳은 일본 제조업의 아버지라 불리는 시마즈 공업이었다. 교토는 상공회의소, 경제동우회 등의 단체가 활발한 데다 목적에 따라 각자의 업무를 제휴할 수 있는 사적 단체를 만들기도 한다.
일본 기업들은 이런 수많은 단체와 교류하면서 각자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고 해외진출 사례를 서로 공유하기도 하며 때로는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다른 회사 이상을 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가혹한 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나름대로의 자구책이라 할 수 있다.
실제로 아사히 금속공업의 야마나카 야스히로(山中泰宏) 대표 겸 사장이 성공의 비결을 묻는 인터뷰에서 ‘모임에서 다른 금속회사가 자동차, 전기, 전자분야에 깊숙이 진출했다고 들었다. 그래서 그 기업들이 손대지 않는 분야를 골라서 공략했기 때문이다’이라고 답할 정도니 모임의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 알만하다.
닌텐도의 경우는 유통사들과 연합해서 만든 ‘초심회 (初心会)’라는 조직이 유명하다. 70년대 닌텐도가 카드와 완구를 팔 때 조직한 무슨 다단계 조직 같은 이름의 다이아 회(ダイヤ會)가 훗날 게임산업 출범에 맞춰 진화된 단체로, 닌텐도가 재고 리스크를 줄이고 유통을 할 수 있는, 닌텐도의 하드웨어가 초기에 불티나게 팔리게 된 초석이 되었다.
* 헤드 스타트(Head Start): 게임 하드웨어는 각자의 유통망으로 초반에 많이 팔려야, 플랫폼이 보급된 시장이 커지고 소프트웨어 기업의 참여가 늘어나며 무엇보다 소비자가 하드웨어를 접할 기회가 늘어난다.
이렇듯 교토는 절대 관광만 좋은 도시가 아니다. 일본의 제조업을 상징하는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를 대표하는 컬렉션 적인 도시다.
현재 닌텐도 하드웨어를 생산하는 곳은 중국의 폭스콘(Foxcorn, 鸿海)이지만 이는 비교적 최근의 일, 야마우치 히로시 사장 때까지 닌텐도의 게임 하드웨어, 게임 카트리지, 각종 인쇄물 등은 교토에서 생산되었다. 심지어 인쇄물과 카트리지는 지금도 일본 우지(宇治)에 있는 공장에서 생산되고 있다.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최소한의 공정만 남기고 해외에 진출시키는 경우가 많은 제조업에서, 특히 단가가 중요한 완구사업을 하면서 인건비가 센 일본에 그것도 인쇄물과 카트리지 공장이 남아있다는 것은 굉장히 특이하다.
하지만 이것도 닌텐도만의 특성이 아니다. 많은 교토기업들은 적어도 중심 생산시설은 교토에 남겨두고 있다. 이렇게 교토기업들이 교토의 덕을 보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앞에서 말한 일본 특유의 ‘모노즈쿠리’를 들 수 있다. 지금은 일본의 고베철강을 시작, 여러 기업이 품질을 속여서 납품한 것이 밝혀져서 균열이 간 신화지만 당시에는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가 일본의 ‘모노즈쿠리’에 주목할 정도로 혁신적이었다.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혼신의 힘을 담아 최고의 물건을 만들다는 개념인데 한국에서는 뛰어난 기술, 남들보다 열심히 만든다는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지만 일본인의 관점의 모노즈쿠리는 여기에 장인정신이 포함된다. 장인의 손에 의해 제조된 제품이 뛰어난 품질로 만들어진다는 사고방식 때문인지 교토기업들의 기술자 대우는 유난히 좋다.
이는 닌텐도도 마찬가지로 직원 1인당 연구개발비가 일반 기업의 4배를 넘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6년 연구개발비는 690억 엔으로 거의 매년 10% 정도 늘어나고 있으며, 1인당 연구개발비는 4500만 엔 수준이다.
이것도 교토기업의 특색이다. 닛케이의 관련 자료에 의하면 교세라, 니치콘 등도 4배까지는 안 가지만 한국은 물론 서양 기업 기준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회사 규모 및 매출 대비 고액 연구개발비용이 투자된다. R&D 비용 순위에서 도요타 등의 중공업, 소니 같은 복합체를 제외하면 상위권 대부분이 교토기업들일 정도다.
이 역시 한 가지 분야에 집중에서 역량을 키워가며 살아남아야 하는 니치마켓 공략 기업이라는 특징 때문이다. 외부환경, 외부 경쟁자에 휘둘리지 않는 독점적인 기술, 상품을 연구하는 이런 성향은 잃어버린 20년이라는 일본 경제 암흑기에서도 교토 기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한 원동력이 된다.
시야를 닌텐도만이 아니라 교토로 넓혀보면 여러 서적에서 닌텐도 만의 특징이라고 알려진 특징 중 상당수가 교토기업 전반이 가진 특징임을 알 수 있다.
다카하시 겐지가 1986년에 집필한 ‘닌텐도 상법의 비밀’은 오래된 책이긴 하지만 닌텐도가 거대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전에 쓴 책이라서 그런지 포장이 덜 된 인터뷰가 많이 실려있다. 후에는 닌텐도만의 특징이라고 정의된 내용이 실제로는 교토의 것임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많이 실려있는 책이기도 하다.
닌텐도는 교토기업이다. 니치마켓, 산학기관과의 협약, 글로벌 전략은 물론 고집 세고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며 보수적인 성향까지 모두 교토기업이다. 그래서 창의성을 중시하는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과 성향이 다르다.
심지어 창의성과 트렌드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게임회사임에도 불구하고 닌텐도는 시스템과 경영방식 변화에 지극히 보수적이다. 소통의 부재, 폐쇄주의로 유명한데 재미있는 건 애플도 이런 방면으로 유명하다는 것이다. 이런 성향이 잘 드러난 사건은 온라인 스토어를 들 수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경우 Xbox를 발매하면서 온라인 스토어를 시작한 것이 2002년 11월 15일, 이에 대항하기 위해 소니가 만든 것이 2006년 11월 플레이스테이션 3의 발매와 동시에 서비스를 시작한 PSN(Play Station Network)였다.
하지만 닌텐도 온라인 서비스는 2018년 9월 예정이다. 그 전에는 온라인에서 게임만을 구매할 수 있었지만 다른 회사의 그것보다는 많이 떨어지는 ‘닌텐도 네트워크’라는 서비스를 운영한 게 고작이었다.
이 서비스는 다른 회사들의 그것보다 많이 떨어져서 다른 경쟁사의 경우 서버에 계정을 두는 것이 아니라 구매자의 기기에 계정과 구매 제품을 옮겨놓는 방식을 사용했다. 이런 과거 기술에 기반한 온라인 스토어는 해킹된 기기에서 마음대로 정식 스토어의 게임을 다운로드할 수 있는 원인이 되었고, 그 때문에 2018년 새로운 서비스가 시작되는 것이다. 거의 6년 만에 소비자의 외침에 화답한 셈이기도 하다.
시스템을 잘 바꾸지 않는 회사기도 하다. 위의 온라인 서비스도 시스템을 급격하게 바꾸기보다는 충분히 연구하고 다듬어서 안정화되었을 때 출시한다. 마이크로소프트에 비해 상대적으로 온라인 네트워크 기술에 약한 소니가 서비스 개시일에 서비스가 작동하지 않는 사례가 일어난 것과는 거의 극과 극으로 대조적이다.
다른 회사들은 이미 2005년에 보이스 채팅 기능을 지원했는데 닌텐도는 2017년에 발매된 스위치조차 온전한 보이스 채팅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별도의 스마트폰이 있어야 가능하다. 타사가 만든 시스템이 히트하더라도 닌텐도의 검증을 거쳐,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이 서지 않으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닌텐도는 위기가 와도 구조조정을 잘하지 않는다. 단순한 철학인지, 모노즈쿠리 기반의 일본 사회에서 ‘노하우를 지닌 인재’를 놓치지 않기 위한 전략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구조조정에 둔한 기업이다. 닌텐도는 여러 차례 위기를 겪었다. 1973년에는 무리하게 사업을 벌이다 석유파동 때문에 회사를 날려버릴 뻔했고, 1990년엔 버블 붕괴의 직격탄을 맞았다. 그러나 야마우치 사장은 구조조정은커녕, 사내 유보금으로 회사를 유지할 것을 결정한다. 닌텐도가 구축한 인적 자산을 함부로 무너뜨릴 수 없다는 것이 이유였다.
이후 2011년에는 엔고 현상으로 인한 환율 차손으로 인해 큰 손해를 입었다. 무려 창립 50년 만에 처음 겪는 적자로 순손실이 무려 423억 엔, 환율파동 및 주력 하드웨어 닌텐도 DS, 닌텐도 Wii의 매출 감소로 인한 총체적인 위기였다.
닌텐도는 임원들의 급여를 대폭 삭감하고 유보금 체제로 유지할지언정 구조조정은 시도도 하지 않았다. 단 이는 본사와 지사의 인력에게만 해당하는 것으로 해외의 마케팅 사무소 중 실적이 나쁜 곳은 과감하게 인력을 줄였다.
비록 체면을 구기긴 했지만 일본에서도 게임업계의 구조조정이 빈번한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인 것임은 분명하며 이것도 기술자 = 인재중심의 교토기업의 특징이기도 하다.
자금 운용도 안정적이다. 부채를 최대한 줄이고 현금을 최대한 확보하는 자금 전략을 세우기에 주가도 안정적이며 시장에서 투자상품으로 높게 평가된다. 일본의 동양경제 온라인(東洋経済オンライン)은 2017년 일본 상장기업의 현금 보유자산(Net Cash)을 분석했는데 닌텐도가 9460억 엔으로 1위를 했다.
이것도 교토기업의 특징이다. 교토기업들이 안정적인 자금관리에 집중하는 이유는 교토기업들 상당수가 기술개발형 벤처기업 출신이기 때문이다. 자기자본비율(=자기자본/총자산*100)은 동종업계 대비 약 1.5배에 달할 정도이다.
대부분의 교토기업은 창업 당시, 창업자의 관련 이력, 경험이 없었다. 그래서 은행의 대출심사를 통과하기가 어려웠는데 이런 특징상 자연스럽게 은행과 멀어질 수밖에 없었고, 궤도에 올라가기까지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은행으로부터 대출, 투자를 받지 않고 유보금으로 각자도생 하는 기업문화가 생긴 것이다.
이런 교토기업 중 압권은 바로 닌텐도인데 홈페이지에 있는 실적 발표를 들여다보면 아예 차입금 항목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부채가 0이라는 뜻이다. 이로 인해 이자이 율도 0으로 잡히기 때문에 압도적인 현금 보유량을 유지할 수 있다. 덕분에 닌텐도는 매출이 1엔도 발생하지 않아도 30년간 직원의 급여를 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이렇듯 닌텐도는 전형적인 교토기업이다. 니치마켓에서 성장했고, 인재를 중시하고 이를 산학네트워크의 힘을 활용하여 기술과 함께 키워나간다. 그리고 안정적인 경영 및 자금관리로 운영하는 보수적인 기업이기도 하다. 1200년 교토의 혼은 자체가 닌텐도에 이식된 것이다.
이는 달리 말하면
교토기업을 아무리 베끼려고 해봐야 소용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교토의 대기업이 니치마켓 집중이라면 대한민국의 기업은 다품종에 손대는 경우가 많고 산학협력을 하기 위한 환경도 복잡하며 대학의 인재와 기업 간의 거리가 멀다. 그래서 무작정 교토기업의 시스템을 이식하는 것은 힘들다. 이는 우리가 실리콘 밸리를 그대로 이식하지 못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닌텐도는 교토기업의 기본 요소를 그대로 갖추고 있다.
실리콘 밸리, 교토의 시스템을 한국 기업이 그대로 도입하기는 어렵다
교토기업의 벤치마크는 다른 방향에서 이뤄져야 하며 이는 닌텐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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