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스터 션샤인 특집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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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의 인기 드라마 <미스터션샤인> 14화에서는 궁내부 대신 이정문(강신일 분)이 유진 초이(이병헌 분)를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고종이 선교사 요셉 스텐슨에게 미국의 원조를 청하는 밀서를 보내지만, 요셉은 살해당하고 서류는 친일 앞잡이 이완익 손에 넘어간 게 발단입니다. 이에 고종은 일본의 위협을 피하기 위해 이 서류가 요셉이 사익을 위해 위조한 것이라고 누명을 씌우고, 요셉에게 은혜를 입은 유진은 이에 분노하고 제대로 수사할 것을 선포하죠. 결국 일본과 껄그러워지는 것을 막기 위해, 고종의 입지를 위해 유진을 죽이려는 겁니다. 이렇게 애신(김태리 분)은 유진에게 총을 겨눠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지요.
그런데 이는 참 씁쓸하면서 이상한 광경입니다.
왜 씁쓸하냐, 이 나라는 나라를 위해 싸워간 사람들을 무시하는 풍토가 강하기 때문이죠. 멀쩡히 일 잘하던 이순신 제독이 선조에게 끌려가 국문을 당한 것을 시작으로 친일파 노덕술이 의열단의 김원봉을 대한민국 정부의 공직자로서 고문하는 아이러니까지 이어져왔습니다. 드라마상에서 유진도 조선의 이권이 담긴 증서를 돌려주는 등 선의를 베풀었는데 이를 악의로 갚는 짓을 한 거죠.
그리고 이상한 광경입니다. 유진을 죽이는 이유는 일본을 거스르지 않기 위해서잖아요? 하지만 유진을 죽이면 더 무서운 미국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습니다. 미국은 터키가 선교사를 멋대로 감금하자 이를 구해내기 위해 경제제재까지 감행하는 나라입니다. 복합적인 인종, 국가 출신이 모인 연방제 국가라 중앙정부가 이 연방을 보호한다는 모습을 보여야 하는 국가이기 때문이죠. 그때도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유진이 죽었을 때 하하하하고 넘어갈 리가 없습니다. 당장 친구 카일부터 가만히 있을 리가 없죠.
대체 조선 조정은 무슨 생각을 한 걸까요?
조선 조정은 적과 아군을 제대로 파악, 아니 국제 정세 자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1화에서는 메리견(아메리카)이라는 나라에 대해 물어보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후 유진이 30년의 세월을 거쳐 장성했으니 이쯤 되면 미국을 알만도 하지요. 그동안 보빙사를 보내서 들은 것도 있을 테고요.
하지만 실제 역사에서 조선은 미국이라는 나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미국을 극동문제에 적절히 끌어들였다면 1905년 가츠라 태프트 조약은 맺어지지 않았을 겁니다. 물론 가정이지만요.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당시 조선 조정이
아군과 적군의 구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겁니다.
조병갑은 갑질의 황제였습니다. 멀쩡한 저수지를 놔두고 만석보를 만든 후, 여기서만 물을 비싸게 사 먹게 함으로써 착복했고, 개간하면 땅을 준다면서 열심히 개간하게 해놓고선 그 땅을 빼앗아서 착복했죠. 이에 전봉준의 아버지가 항의하자 그를 때려죽였고, 이에 분노한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납니다.
동학농민운동은 거셌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거세졌습니다. 이를 잘 달래고 설득하라는 명을 받은 이용태가 설득은커녕 무차별 학살을 했기 때문이죠. 덕분에 불에 휘발유를 부은 꼴이 되어 동학운동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습니다.
문제는 당시 조선군의 사기였죠. 임오군란은 병사들에게 줄 봉급을 착복해서 일어난 사건입니다. 겨우 준다는 봉급도 모래와 돌을 섞어 양을 불렸죠. 이 사건을 겪은 조선의 병사가 동학농민군과 싸울 마음이 날까요? 그 사정이 빤~하게 보이는데? 실제로 군산포에 상륙한 홍계훈의 부대 800명 중 330명이 상륙 직후 탈영했습니다. 사기는 바닥, 조선군은 이를 진압할 수 없었습니다.
보통 이쯤 되면 백성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드러나 보는 게 정상입니다. 좀 바보 같은 군주면 끝까지 토포사를 보냈겠죠. 하지만 우리 급이 다른 바보 고종은
외세인 청나라에게 자국의 국민이 일으킨 민란을 제압해 달라고 청합니다.
이러자 조선에 출병할 기회만 노리던 청나라는 얼시구나 들어왔고, 역시 조선에 진출할 건수만 노리던 일본도 텐진 조약을 빌미로 조선에 군대를 파견합니다. 물론 이렇게 되어 전봉준은 체포되고 동학군은 와해되지만, 와해되면 뭐하나요? 그렇게 들여서는 안 되는 외세 청나라와 일본에게 이권을 빼앗기는 꼴이 되었습니다.
외세의 힘을 빌리는 것은 최악의 정치임을 멸망한 나라들이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러니 아군/적군 파악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만약 미스터션샤인의 조선 조정이 상황 파악을 제대로 했다면, 쿠도 히나(김민정 분)의 정보라도 잘 활용했다면 이완익과 유진의 악연을 파악하고 미군이 이완익을 견제하도록 했을 겁니다. 그리고 그 과정이 길어지면 이완익을 암살한 다음 미국이 이완익을 죽였다고 일본에 통보라도 해도 되고요(이건 아주 좋은 수는 아닙니다만). 그런데 그 수 다 놔두고 미국의 장교를 무관 대장 안 맡았다고 건방지다고 죽이다니요. 애초에 그는 조선의 신민도 아닌 것을.
드라마 속의 조선도 결국 피아식별도 안 되는 얼치기 정부였습니다.
오늘날에도 위안부 합의를 당사자 협의 없이 하고, 전범기업의 편을 들어준다던가, 일본 자위대의 한반도 진출을 허가해주는 개념 없는 사람들이 있었듯이 세상에는 국가를 지키기보다는 국가를 팔아 자기 주머니를 채우려는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위에 조병갑처럼 조선의 권력자들은 정치는커녕 자기 재산 모으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이를 통제할 시스템이 없었습니다. 급기야 을사오적, 을사삼흉 같은 사람들마저 튀어나오지요.
나중에는 조선 조정의 반이 이완익의 편, 사실상 이토 히로부미의 자금과 권력에 휘둘리는 꼭두각시가 되죠. 그들이 왜 자기가 그 자리에 있는지 본질적으로 생각하고 실천할만한 인물들이라면 그럴 일도 없을 겁니다.
이런 간신들이 창궐한 배경에는 지배층의 무능이 있겠죠. 우선 상류층 자체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데만 골몰했습니다. 임진왜란 이후 조선의 정치가들은 앞으로는 해외의 무기를 적극적으로 들어오고 외국과 통교해서 두 번 다시 치욕을 당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는 말뿐이었죠. 물론 실제로는 강하지만 인식상에선 자기보다 급수도 안 되는 일본을 벤치마킹하는 것이 싫기도 했겠지만 무역과 지식을 독점하기 위해서가 더 큰 이유였습니다.
결국 조선은 아무 반성도 하지 못한 채 병자호란을 맞게 되고 나중에는 세도정치로 거의 60여 년을 날리더니 급기야 쇄국정책을 취하면서 스스로 망조에 들어섭니다.
미스터 선샤인의 고종은 나라의 미래를 염려하고 있으며, 그들의 속내를 꿰뚫어 볼 정도로 뛰어난 인물로 나옵니다. 하지만 실제 고종은 솔직히 좋게 봐줄 만한 사람이 못되죠. 기본적으로 아둔한 사람이고, 민비의 축재를 막지도 않았고, 민씨 일가의 세도정치를 묵인했습니다. 원래는 고종도 은근히 빼돌린 돈이 많았다지만 나중에 상당수를 독립자금으로 썼다니 이건 면죄부를 줄만합니다.
하지만 이 아둔한 군주에게는 거의 정조급의 역량이 필요했습니다. 할 일이 많았어요. 국제정세를 파악하고 그들과 정당한 교류를 통해 국력을 키웠어야 합니다. 하지만 아버지 흥선대원군 때문에 20이 넘어서도 권력을 못 가졌던 반등 탓인지 그는 권력을 나눌 줄도, 사용할 줄도 몰랐습니다.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선교사를 파견해서 열강을 활용하려 합니다. 하지만 실제 고종은 외세를 이용하기는커녕 외세의 본질도 몰랐습니다. 그러지 않고서야 자기 백성을 밟으려고 남의 나라를 끌어들일 리 없죠.
오히려 기회를 차 버리는 쪽이었습니다. 실제 고종은 미국과의 라인을 가진 서재필이라는 든든한 라인이 있었죠. 그를 통해서 미국과 제대로 수교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서재필이 조선의 독립을 위해서 움직인다고 밀어주다가 그가 민족계몽 및 공화정 수립을 꿈꾼다는 걸 알자, 권력을 나눠주기 싫었던 고종은 서재필을 내칩니다. 지금 무엇을 해야 나라를 보존하는지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왕자리에만 집착한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왕이니 열강의 이해관계조차 파악 못하고 무턱대고 도와달라고 편지만 보내다가 독살당한 겁니다.
이렇게 그는 인간에 대한 이해도 통찰력도 없었습니다.
애초에 저 친일파들이 조정을 좀먹은 이유도 자기에게 살랑거리는 사람에게 벼슬을 팔아대다가 벌어진 일이지요. 앞서 말한 조병갑은 그 난리를 치고도 1년 만에 고종에게 사면받고 고등재판소 판사 자리를 차지하고 잘 살다 죽습니다. 이러니 조정에 친일파가 득실득실하지요.
서양 열강에게 무엇을 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그 위력을 뒤늦게 깨달은 고종은 신식 제도를 도입합니다. 하지만 제대로 운용할 줄도 모르는 병기를 사들이다가 부채에 시달리게 되죠. 게다가 무기 구입은 탄약, 보급 계획을 세우고 구매해야 하는데 그것도 안돼서 관상용이 되었고 그나마 제대로 된 인력으로 관리도 못해서 고물로 만들고 맙니다. 한 마디로 계획성도 없는 사람이었어요.
이 문제점은 조선에 치명타를 날립니다. 고종은 광무개혁을 통해 개화를 시도합니다. 하지만 계획성이 저리 없는 바람에 오히려 빚만 잔뜩 지고 내실 있는 개화를 하지 못했어요. 오히려 일본에게 거액의 차관을 빌리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구멍가게를 했어도 말아먹을 양반이 권력의 중추인 왕을 했으니 나라가 이 모양이 날 수밖에요.
이정문이 유진을 죽이라는 지시를 내리는 건 이상하게 비칩니다. 실제 고종은 바보였지만 미스터 션샤인의 고종은 통찰력과 포용력이 제법 있는 인물로 나오거든요. 게다가 미국의 힘을 이용하려던 사람이 미국을 적으로 돌리는 상황을 만들다니요. 설마 쿠도 히나가 '미국의 입장에선 유리할 땐 미국인, 아쉬울 땐 조선인'이라고 말한 것만 믿고 저러는 건 아니겠죠? 실제 조선이 저랬다면 큰일입니다. 라이언 일병 이야기가 괜히 실화가 아니거든요.
드라마의 극적 긴장을 높이기 위해 나온 이 상황, 과연 15화에선 이 모순을 깰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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