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식공장장 Dec 04. 2018

우리 미래를 위해 필요한 리더

조선 리더십 경영

1. 퇴계 이황이라는 위인은 꽤 이색적인 인물입니다. 우선 1000원권 지폐에 나오고, 교과서에도 나오므로 인지도는 높아요. 하지만 정작 제대로 아는 사람은 드뭅니다. 인기도에선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에서 밀리고 역사를 잘 아시는 분들에게도 안중근 의사, 정조에 밀리죠. 


전 이게 좀 안타깝습니다. 어찌 보면 퇴계 이황은 위의 인물들과 동급 아니 그 이상으로 존경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도산서원앞의 운영대

퇴계 이황은 조선의 대유학자로 자는 경호(景浩), 호는 퇴계(退溪), 퇴도(退陶), 도수(陶叟), 청량산인 등으로 다양합니다.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은 물론 퇴계(退溪). 사후 이자(李子), 이부자(李夫子)로 존숭 될 정도의 대 학자였죠. 잘 감이 안 오시면 공자, 맹자, 노자, 장자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그는 그만큼 조선 유학에 많은 기여를 한 인물입니다. 성리학을 완성시켰다고 하죠. 


2. 보통 여기까지 이야기하면 듣는 사람의 이맛살이 찌푸려지는 걸 볼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리학에만 매달린 기득권이 조선을 망하게 하는데 기여하고, 친일 했다는 인식들이 강하거든요. 


그런데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물론 친일한 인사 중에 조선의 기득권이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성리학을 비난하는 건 아니라고 봐요. 통치자가 헌법을 유린했으면 통치자가 나쁜 겁니까 헌법이 나쁜 겁니까? 통치자가 나쁜 것이죠. 성리학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선시대에 갑질 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사람은 성리학을 공부하되 이를 나쁜 방향으로 활용하거나 제대로 지키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이 학문의 기본은 윗사람도 윗사람의 도리를 다 해야 한다는 것이거든요.


생전 퇴계 이황의 지위는 그만큼 대단했습니다. 누구나 존경하는 대학자, 남명 조식 정도 외엔 라이벌도 없었고 무려 선조의 스승. 보통 이 정도면 오늘날 대한민국 사회에선 호화 변호인단을 꾸리고 맘껏 갑질을 하면서 살아도 문제가 없을 겁니다. 하지만 이 대유학자의 삶은 정 반대였습니다.



3. 퇴계 이황은 율곡 이이와 함께 이기론을 완성 성리학을 발전시켰다고 평가받습니다. 이쯤 되면 두 사람이 친구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으실 텐데 사실 율곡 이이가 거의 아들뻘인 게 반전입니다.

그는 나이 어린 신진 학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아는 학자였습니다.


가장 유명한 것이 기대승(奇大升)과의 사단칠정 논변입니다. 이 상황은 오늘날은 물론 당시에도 꽤 화제가 되었는데 왜냐하면 이황은 58세의 대사성인데 기대승은 갓 과거에 급제한 32세의 신출내기였기 때문입니다. 대사성은 성균관의 우두머리이고 특히 이황의 지위를 생각하면 서울대학교 총장, 의전서열로 따지면 장관급에 속합니다. 그런데 기대승은 갓 관직에 급제한 7급 주무관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게다가 이황은 살아있는 왕 선조의 스승, 선조조차 극진한 예를 갖추고 대우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7급 공무원이 장관에게 말대답했다가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요? 아니 사원이 과장에게 말대답해도... 아니 군대에서는 사회연령은 거의 차이 없는데도 이병이 상병 말에 토달았다간 전원 집합입니다. 저 군 생활할 때만 해도 다른 후임이 그런 일을 해도 연대책임이라며 발길질이 날아왔어요. 


그런데 이황은 기대승의 편지에 한 번도 허투루 대한적이 없습니다. 13년 동안이나 주고받은 기대승의 편지는 젊은 혈기가 넘치는 들이받기가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황은 한 번도 이를 나무라거나, 묵살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토론했고 심지어 기대승의 견해를 받아들여 학설을 일부 수정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대단한 거냐고요? 대학 조교가 교수의 연구에 뭐라고 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지게요? 


물론 이후 학통의 후계자인 정약용이나 현대 철학자는 기대승이 판정승했다고 평가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 기대승은 그만큼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더 대단한 건 이황입니다. 


이 정도 지위를 가진 사람이 새파란 신입과 성실하게 토론하고
자기 잘못을 수정하는 경우 보셨나요?


4. 어느 날 영의정까지 지낸 권철 (권율의 아버지이자 이항복의 장인)이 이황을 만나기 위해 도산서원(당시엔 도산서당)을 찾아왔습니다. 두 사람은 학문에 대해 즐겁게 토론을 하며 즐겁게 지냈습니다만 권철에게 단 하나에 문제가 있었으니 바로 식사였습니다. 퇴계 선생은 귀한 손님이 오셨으니 평상시에는 내놓지 않는 특별히 귀한 반찬을 내오라고 명합니다. 그런데 정작 나온 것들은 기본 요리가 보리밥, 가지 잎, 콩나물국이었고 특별히 귀한 반찬은 명태무침이었다고 하죠. 이황 선생은 평상시엔 보지 못한 귀한 명태무침이 나오자 식사를 맛있게 하셨지만 권철은 그렇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렇게 기대 이하의 식사가 이어지자 결국 권철은 예정보다 빨리 도산서원을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하지만 퇴계 선생의 학문을 얻는 기회가 못내 아쉬웠는지 마지막으로 한 가지 가르침을 부탁합니다. 그러자...


대감께서 이 먼 곳까지 찾아 주셨는데 융숭한 대접을 해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그러나 대감께 드린 식사는 일반 백성이 먹는 것에 비하면 성찬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대감께서 식사를 못 하시는 것을 보니 나라의 장래가 걱정됩니다.
정치의 근본은 여민동락(與民同樂), 즉 관과 민이 일체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대감께서는 앞으로 백성과 고락을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속이 뻔히 들켰던 탓인지, 은근히 표시한 불만에 대한 답을 들은 탓인지 권철은 얼굴이 벌게졌습니다. 이후 그는 퇴계 선생에게 자신의 그릇이 작았다며 반성하고 검소한 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도산서원의 모습

그는 검소했습니다. 지금 이 도산서원보다 더 큰 서원도 존재할뿐더러 이것도 퇴계 선생 사후, 제자들이 그의 업적을 기린다며 중축한 것입니다. 생전에는 도산 서당을 운영했는데 그 규모가 굉장히 작았습니다. 이런 도산 서당에서 그는 스스로 물을 긷고, 반찬인 고기를 직접 낚았다고 하죠. 이유인 즉 백성을 다스리기 위한 학문을 연구하는 사람은 백성들과 같이 생활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검소함의 증거가 바로 도산서원입니다.



5. 그 외에도 퇴계 선생은 도를 지켜가며 생활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 과거를 보러 갈 때 하인이 남의 콩을 훔쳐서 밥을 지어오자, 하인을 꾸짖어서 돈을 물어주고 오게 합니다. 이후 돈을 물어주고 올 때까지 밥에 손도 대지 않았다고 합니다.


* 장손인 이안도가 아이를 낳았는데 문제는 둘째를 또 가지는 바람에 젖이 안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이안도는 막 아이를 낳은 하녀를 유모로 쓰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하지만 퇴계 선생은 그렇다면 그 하녀의 아이는 어떻게 되겠느냐. 내 손자 살리자고 남의 자식을 죽일 수는 없다. 고 거절합니다. 결국 외손자는 굶어 죽고 맙니다.


* 맏며느리 봉화 금씨의 가문은 퇴계가 가난하다고 해서 (청렴했으니) 혼수도 대충 주고 심지어 며느리 집에 인사 온 퇴계를 문전박대하기까지 했습니다. 당연히 시아버지의 복수(?)때문에 전전긍긍한 며느리. 하지만 퇴계 선생은 오히려 혼수가 적다고 화가 난 문중 사람들로부터 며느리를 감싸줬다고 합니다. 오히려 며느리가 버선 등을 기워줄 때마다 감사의 표시로 바늘 등을 선물로 보내는 등 지극히 아꼈다고 하죠. 그래서 그랬는지 며느리도 시아버지에게 지극 정성이었다고 합니다.


* 반면 둘째 아들이 일찍 죽어, 둘째 며느리는 청상과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퇴계 선생은 사돈에게 연락하여 데려가셔도 좋고, 재가시키셔도 좋다고 말합니다. 물론 이렇게 한 사람이 퇴계 선생만은 아닙니다만 동학농민운동 때 요구 중 하나가 '청상과부의 재가를 허가해달라'였다는 걸 감안하면 그야말로 깨인 인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6. 언로가 SNS로 인해 다양하게 열리고 실시간으로 전달되어서 그런지, 보도가 갑자기 많이 되는 것인지 아니면 요즘 들어 더 늘어나는지는 모르지만 요즘 갑질 관련 보도가 유난히 많습니다. 남녀노소를 불구하고 벌어지는 일이며 백화점에서 고객이 난리 치는 사건을 보면 자기가 조금만 낫다 싶으면 갑질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 사례를 보다 퇴계 이황 선생의 일화를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것 같습니다. 이 분은 위의 일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항상 상대방의 입장이 어떤지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일화를 보면 참 훈훈해요. 이런 사람이 오늘날에도 많았으면 좋겠다, 이런 사람이 오늘날에도 있으면 많이 소개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퇴계 선생 같은 사람이 이 나라의 미래를 위해를 위해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합니다. 증오와 분노로 인해 소모되고 이를 잘못된 형태로 표출하는 연쇄를 막기 위해서, 한국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말이죠.


이메일: inswrite@gmail.com



PS: 자녀가 수능시험을 준비한다면, 혹은 수능을 준비하는 학생이라면 사단칠정은 꼭 읽어보고 이해하시고 가는 게 좋습니다. 현대 철학의 틀까지 이어지는 수능 고난도 단골 문제 중 하나입니다. 


<조선 리더십 경영>

조선 리더십 경영이 교보문고 선정 12월 1째 주에 주목할 책에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북모닝 CEO책으로도 소개될 예정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대한민국이 사망선고받은 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