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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식공장장 Nov 26. 2018

대한민국이 사망선고받은 날

<국가 부도의 날> 


최근 <국가 부도의 날> 개봉 소식을 듣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97년 금융위기, 이후 이어진 IMF 구제금융은 단순한 정치실패, 정치부패를 넘어 대한민국 개개인의 삶을 파탄에 몰아넣은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옭아맨 사회문제의 시발점이기도 하죠. 


그런 대사건이 영화화된 건 반가운 소식이고, 그래서 많이 영화를 기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대형사건이 이제야 영화화된 건가? 하는 의문도 솔직히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 공백도 메워볼 겸, 영화의 의미도 되살려볼 겸 대한민국이 지옥에 떨어진 날에 대해 조명해보려고 합니다.


국가 부도의 날에는 두 대상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국민을 원흉으로 만든 가해자인 <국가>
 그리고 자신이 가해자라고 착각한 피해자인 <국민>입니다


IMF에 대한 이해


IMF에 대해서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면 표정들이 그리 좋지 않습니다. 특히 제가 어울릴 세대들은 IMF를 기점으로 나름대로 심적, 물적인 고생을 직접적으로 한 분들이 많아요. 이번에는 IMF에 대해서 한번 나름대로 짚어봤습니다. 


IMF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계시나요? '나는 F학점이다?’, '나는 해고당했다'(I am Fired)?’... 는 아니고 ‘국제통화기금’(INTERNATIONAL MONETARY FUND)의 이니셜을 딴 약어입니다. IMF의 업무를 간단히 정리하면 달러가 부족한 국가에 달러를 빌려주는 것입니다. 이것만 보면 문제가 없어 보입니다. 다만 문제는 이 자금을 공급할 때 엄격한 의무를 부과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자면 상환 기간의 설정, 건전한 재정 정책 등 엄격한 거시 경제 지표 관리, 시장 경제 원리에 따른 보조금 철폐와 가격 자율화 등 요구 등이 있습니다. 


문제는 정부가 이를 무조건적으로 수용해서 국민들에게 피해가 왔다는 점입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상황

1994년과 1995년은 한국 경제에 있어 좋은 시기였습니다. 경제성장률은 고공행진이었고 실업률은 더 이상 통계를 낼 필요가 있을까 싶을 듯한 수준이었죠. 당시 대학 졸업 비율은 30%, 대학만 졸업하면 누구나 대기업에 갈 수 있었고 고등학교만 졸업해도 좋은 회사에 갈 수 있었습니다. 입사기준으로 토익을 도입한 게 신문 1면에 혁신으로 실릴 정도였죠. 이런 상황이라 GNI가 처음으로 1만 달러를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활황은 투자에서 비롯됐습니다 기업 고정자본형성(고정투자)은 전년대비 약 30%라는 증가율을 보이며 불타올랐죠. 물론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당연하다는 이야기가 더 컸습니다. 지금 시점에서 보자면 ‘주식투자는 위험하지 않느냐 = 이 정도 리스크는 투자에 다 따라다닌다’ 정도예요.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투자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이런 상황은 1996년까지 계속 이어졌죠. 


다만 이때 한국의 물가 상승률이 5%를 넘어가는, 정부의 물가방어 공약이 물거품이 되는 사태가 벌어집니다. 경제상승률이 수축되고 GDP의 5%를 넘는 경상수지 적자를 보이고 말았죠. 


정부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 무리한 투자촉진 조치를 실행합니다. 사치성 소비재의 수입이 늘어나서 경상수지가 늘어났다. 따라서 투자를 늘려 수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하지만 이런 조치는 별 효과를 보이지 못합니다. 그리고 뒤돌아보면 이 조치가 거대한 파문의 시작이었습니다. 



한국의 투자 취약성


경제학 서적에서 평가하는 한국 경제의 실증적 사실은 다음과 같습니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볼 때 한국의 고정투자는 이자율에 대해 매우 비탄력적이다.

한국의 수입은 원자재, 자본재, 소비재 각각 약 50%, 40%, 10%로 구성된다.


이런 경제상황에서 투자과잉이 벌어지면 경상수지 적자가 발생하게 됩니다. 위에서 원자재, 소비재의 구성비율은 경기변동에도 불구하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자본재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자본재에서 고정투자는 제조업이 중심인 특성상 기계류의 구입이 중심을 이루는데요 그 기계는 대부분 일본에서 구입한 것입니다. 즉 일본에서 수입한 것이라는 건데 거의 1:1 비율이죠. 


1997년에는 전 세계 경제의 활력이 저하된 상황입니다. 이 상황에서 수출을 늘리면 물량은 늘어나도 수출 단가가 줄어들어서 이익은 거의 늘지 않죠. 이런 두 가지가 엮이면 수출액은 거의 늘지 않는데 수입액만 늘어나서 경상수지 악화라는 사태를 불러오게 됩니다. 그런데 고정자본형성(고정투자)이 30%라니요. 대규모 적자가 날 수밖에 없습니다. 


경상수지 적자는 자본 유입으로 국제수지 균형을 맞춰야 하고 경상이익 악화는 유동성으로 메워야 합니다. 나라는 외국에서 돈을 빌려야 하고 기업은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려야 합니다. 여기서 금융기관(주로 종금사)은 외국에서 돈을 빌려 국내 기업에 대출했죠. 이 모든 것이 김영삼 정부 초기에 기획된 자본자유화 계획 ‘3단계 금융자율화 및 시장개방계획’에 의해 기획됐습니다. 97년까지 모든 금융 시장 규제를 없애는 것을 목표로 외국인 주식투자 한도를 획기적으로 늘렸고, 채권시장을 개방했으며, 재벌들의 해외차입과 관련한 규제도 대폭 완화하였습니다. 


그런데 위의 상황에서 금융기관이 외국에서 차입한 걸로 국내 기업에게 대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금융기관이 돈을 빌릴 땐 당연하게도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립니다. 상식이죠. 대출해보신 분은 알듯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리려면 단기대출을 했습니다. 외국은행은 자금 회수를 할 때 편하니 이쪽을 선호했고요. 그러나 국내 금융기관 입장에선 위험이 불어나게 됩니다. 해외자금 동향에 극도로 민감해지니까요. 이쯤 되면 외환당국이 뭐라 한 소리를 할 만도 하지만 당시 외환당국 자체의 정책이 투자활성화에 있었으니 투자를 활성화하는 정책에 뭐라고 할 리도 없죠. 


하지만 우리는 역사를 통해 투자심리가 과열되면
 어떤 비극이 오는지 알고 있습니다. 


세계 대공황이 그랬고 일본의 버블경제 – 잃어버린 10년도 이 투자 과열에서 온 거예요. 경제적인 펀더멘탈이 튼튼한 이 국가들도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데 많은 희생을 했습니다. 그런데 산업적인 기반도, 경제적인 기반도 이 두 국가들보다 훨씬 약한 대한민국이 이들을 따라 하다 위기를 맞는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IMF도입

그러나 자본의 위험기피 성향이 고조되며 국제 유동성이 감소함에 따라 국내 금융기관의 해외차입에 문제가 발생하고 기업에 대출해줄 여력은 감소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에 대한 자본도피를 강화시켰죠. 외국의 투자제한이 많이 내려갔었고 그만큼 활성화된 상황에서 말이에요. 


결국 금융기관들이 해외의 롤 오버 거부로 더 이상 과잉투자로 인한 경상수지 및 기업 경상이익에서 발생한 적자를 메우기 위한 자금융통을 해주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 상황에서 강경식 당시 경제부총리가 ‘은행도 망할 수 있다’는 말을 하고 이는 불안한 해외 금융기관의 자금 회수에 박차를 가하는 셈이 됩니다. 그리고 1997년 동남아에서 발생한 외환위기는 이런 한국의 금융시장에 치명타를 날립니다. 환율은 미친 듯이 상승, 달러당 800원대에서 2,000원에 올라갔죠. 1998년 경제성장률은 -6.9%를 기록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총체적인 자금난에 휘말린 대한민국은 IMF에 손을 내밀게 됩니다. 


IMF가 비난받는 이유는 그 취지와 시스템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 과정에 있습니다. 아르헨티나 사태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IMF는 절대 국가의 특성에 맞춘 상환 플랜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이는 한국도 마찬가지였습니다. IMF는 대한민국에 두 가지를 강권했습니다. 재정긴축, 또 다른 하나는 통화긴축입니다.



재정긴축: 재정긴축의 경제안정을 위해 재정정책을 펴면 안 된다는 이야기인데 당시 정부부채는 고작 GDP의 13%였습니다. 현재 성공한 경기부양책을 보면 이보다 부채가 많은 나라도 경기부양을 위해 정부가 돈을 푸는 게 일반적이니 비난이 됐죠. 


고금리 정책: 고금리 정책은 이론상으로는 적절했으나 실익은 거의 없었습니다. 고금리로 자본유입을 늘린다는 것은 채권시장을 통한 자본유입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지금도 채권시장이 미약한 상황인 판에 당시는 말할 것도 없었죠. 당시 무너져가서 주가지수 500까지 추락한 주식시장으로 유입된 극히 소소한 외환이 고금리로 채권시장에 유입된 양보다 많을 정도니까요. 



IMF의 의도는 기업들의 구조조정, 부채감축을 은은하게 권고하려고 한 듯합니다. 하지만 워낙 높은 고금리 덕택에 기업부채는 고금리 정책이 실시된 6개월간 오히려 더 늘었죠. 이자를 갚기 위해 차환 기채를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이 외에도 또한 IMF는 해외 채권자들과의 채무조정을 중재했습니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 및 중장기적 성장을 위한 고려는 묻혔으니 당시 IMF의 정책에 평가는 상당히 짤 수밖에 없습니다. 고금리 정책을 통해 -6.9%라는 재앙적 경제성장률을 자랑했죠. 환율이 환상적으로 폭등해서 수출을 통한 경제회복을 기대할 상황인데 고금리를 통해 기업의 목을 죈 셈이니까요. 고금리 정책만 아니었다면 폭등한 환율로 인한 수출로 기업이 회복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죠. 이런 관점에서 볼 때 IMF는 원인제공은 안 했어도 한국에 상처를 남기는 데는 분명 일조한 구석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 상처를 입게 한 원흉입니다.


국가 부도의 날에는 두 대상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국민을 원흉으로 만든 가해자인 <국가>
그리고 자신이 가해자라고 착각한 피해자인 <국민>입니다


대한민국을 지옥에 떨어뜨린 자들


외환위기를 다룬 책에서 이런 결말을 본 적이 있습니다. 


"가계는 과소비를 했고, 기업은 문어발식 확장을 일삼았으며, 정부는 인위적 환율 유지를 했고, 외국의 단기자본들은 치고 빠지기 식으로 공격했다. 부동산 광풍으로 물류비용도 높았고, 근로자들은 쟁의로 제몫찾기에만 골몰했다. 이렇듯 모든 경제주체들의 도덕적 해이가 위기를 가져왔다. 누구의 책임이 더 중하거나 덜한 게 아니다. '내 탓이요'라는 자세로 우리 스스로를 가다듬어야 한다." 


이런 묘사는 모두 다 잘못했으니 책임을 묻지 말자는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까딱하면 국민이 이 국가부도의 공범처럼 여겨지는 문제성 있는 묘사이기도 합니다.


당시 가계저축률은 단독으로 GDP의 30%에 육박했죠. 나름 환상적인 수치인데 당시 신문에는 일본(이 이자율도 우리보다 낮은데)보다 저축률이 낮다는 기사만이 수를 놓고 과소비의 경종을 울렸죠. 그런데 당시 수입 전체에서 소비재 수입 비중은 10%도 못 넘겼습니다. 한국도 뭣 좀 사가라는 압력이 그래서 줄을 이어 들어오고 있었어요. 이 상황에서 과소비에 책임을 물리는 건 문제가 있습니다. 오히려 소비가 늘어나는 건 못살던 나라에서 개발도상국을 벗어나 선진국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수출주도 정책 때문에 버려뒀던 내수시장이 경제성장과 더불어 성장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렇다면 주범은 누구인가? 바로 당시 정부죠. 정부는 이 과정에서 잘한 게 없습니다. 김영삼 정부, 한보사태의 주범 김현철 그리고 이에 얽매인 경제정책의 수장들입니다. 그들은 정세의 흐름을 못 읽고 그 상황에도 투자촉진에 올인했습니다.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 업적을 남기기 위해서 그리고 다음 정권에게 물리는 사태를 막기 위해서. 


여기에 기업이 발을 담급니다. 기업의 부채를 정부가 맡아줬거든요. 이 역시 공약을 지키려는 정부의 목적이겠지만 투자촉진에 눈이 돌아가서 자신의 여력도 무시하고 돈만 끌어서 투자한 기업들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국가위기로 사익을 추구한 사람들의 책임이죠 <출처 : 국가 부도의 날>


지옥문이 열리다


무리한 경기부양, 무리한 기업지원의 여파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었습니다. 당시 한국의 이름난 기업들이 줄지어 부도났죠. 기아자동차, 해태제과, 고려증권 등 여러분이 아실만한 회사가 수두룩합니다. 이후 기업들은 투자를 줄이고 완성된 비즈니스를 운용하는 식으로 체제를 바꿉니다. 


이렇게 되자 당연히 고용에도 영향을 줍니다. 정리해고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적 경제정책이 진행된 것입니다. 1996년 연말 한나라당(현 자유 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로 도입된 유연화된 노동제도로 인해 계약직이 늘어나고 정리해고가 쉬워지게 되었습니다. 좋은 직업을 얻기 위한 대학 경쟁, 스펙 획득이 가속화되고 잘려나간 사람들은 치킨집과 편의점에 몰렸고 덕분에 상가 임대료는 천정부지로 솟아올랐습니다. 


참고 글: 대한민국 건물의 나비효과

뿐만 아니라 성장동력과 인프라마저 사라져 버립니다. 당시 진행되던 서울 지하철 계획은 9호선을 제외하고 전부 폐지되었고, 서울보다 자금이 열악한 지방도시는 아예 전면 폐지되는 사태까지 발생했습니다. 이는 수도권 발전의 속도를 늦추고 지방발전에 제동을 거는 역할이 됩니다.



역사에서 아무것도 못 배웠다


영화 예고편을 보신 분들께서는 아시겠지만 이 사태의 진정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정치적 리더십의 붕괴입니다. 경험이 모자라서 잘못된 경제정책을 세운 것은 좋아요. 그런데 이렇게 사고를 쳐놨으면 제대로 수습을 해야지요. 당시 김영상 정부는 임기 내에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IMF가 내놓은 안을 조정조차 안 하고 무리하게 받아들여버리고 맙니다. 왜냐하면 대선이 코앞이었거든요. 하지만 그 조건을 다 받아들이는 바람에 짐은 상상 이상으로 무거워졌습니다.


버블을 만난 일본이 그나마 연착륙을 하려고 노력했다면
한국 정부는 부기장에게 조종간을 넘기고 낙하산 타고 뛰어내린 셈입니다.

영화가 97년 외환위기를 통해 진짜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걸 겁니다. 국가가 국가로써의 역할을 하기는커녕 책임을 내던지고 정치적 생명만을 위해 국민을 사지로 몰아넣었다는 것이죠. 


그리고 대한민국이라는 국가는 진짜 부도가 나버립니다.
경제만이 아니라 나라 자체가 말이죠. 


이는 망국의 책임을 백성들에게 뒤집어씌운 선조, 인조, 고종의 작태를 떠올리게 합니다. 정말 사람들은 역사에서 아무것도 배운 게 없군요. 


국가 부도의 날에는 두 대상이 존재합니다. 
하나는 국민을 원흉으로 만든 가해자인 <국가>
그리고 자신이 가해자라고 착각한 피해자인 <국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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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브런치의 <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을 엮어서 대량 가필, 추가한 <조선 리더십 경영>, 전국 온/오프라인 서점에 발매 중입니다! 물론 IMF에 관한 이야기, 그 책임에서 눈을 돌린 역사 속 리더에 대한 이야기도 실려있습니다!!

<조선 리더십 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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