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 글이 쓰여진 날로부터 딱 20년전인 2001년 1월 26일 오후 7시 15분경 JR 동일본 야마노테선 신오쿠보역에서 한 명의 취객이 선로로 떨어졌습니다.
취객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사람들은 발을 동동구르면서 어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역무원도 오지 않았죠, 이때 두명의 사람이 선로에 내려와서 그 취객을 도왔는데요
한 사람은 사진작가 세키네 시로 세키네 시로(関根史郎, 향년 47세)
또 한 명은 한국의 유학생 이수현 씨 (향년 26세) 였습니다.
이수현씨가 먼저 뛰어들어 그 사람을 구조하려고 했지만 술취해서 인사불성이 된 사람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세키네씨가 뛰어내려 이수현씨를 도왔죠. 하지만 열차가 너무 빨리 들어오는 바람에 그들은 유명을 달리합니다.
이 사건은 일본에서 큰 반향을 일으킵니다.
첫째, 안전조치가 취해졌습니다.
일본의 상당수의 플랫폼은 사람이 떨어지기 딱 좋은 구조입니다.
신오오쿠보는 플랫폼이 좁지만, 러시아워에는 사람이 밀릴 수 밖에 없어서 까딱 잘못하면 노란 선 밖으로 밀려나가기 일수입니다. 취객이라면 정신이 없어서 플랫폼을 넘어갈텐데 스크린도어가 하나 없죠.
사실 일본에서는 지하철 낙상 사고가 꽤 많이 일어나는데요, 이에 관해 민원제기를 해도 잘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일본의 지하철 대부분은 민영화 된 사철(私鐵)이라 기업에 손해가 난다면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절대 안하거든요. 그리고 유착관계인 정부는 국가가 기업에 간섭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면서 이를 묵살했고요.
게다가 취중 낙상이 많이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역 플랫폼에서 술을 팔았죠. 즉 플랫폼에서 취하라는 겁니다. 물론 자판기는 각 사철의 소유기업이 설치한 것이었죠.
하지만 이 사건이후로 안전에 관한 이슈가 크게 불거졌고, 결국 일본의 민영화 철도기업들은 버티다 버티다 못해 스크린도어 설치를 시작하기 시작합니다. 물론 한국의 것보다 안전성도 낮고, 단가도 싼 것이지만 그래도 이제서야 안전조치를 취한 건 바람직한 일이죠. 물론 주류판매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중단했습니다. 아니 그동안 꿋꿋히 버티다가 이 사건을 계기로 중단했습니다.
둘째, 사람들의 의식이 바뀌었습니다.
일본은 개인주의가 굉장히 심한 국가고, 나이드신 분들이라면 모를까 어린 사람들은 잘 도와주려고 하지도 않아요. 길을 물어봐도 슥 쳐다보고 지나갈 정도죠. 선로에 누가 떨어져도 신고조차 하지 않은 이유가 여기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후 선로에 누가 떨어지면 적극적으로 역무원에 연락하고, 손을 흔들어 기관사에게 위험을 알리는 등 적극적으로 행동하기 시작했지요. 이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사람을 구한 사례가 꽤 많아요.
누구도 행동하지 않던 그런 상황에서 나선 두 의인의 용기가 일본사회를 바꾼 것입니다.
셋째, 한국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사실 당시 한국은 지금과는 달리 모든 면에서 후진국이었고, 피점령국이라는 인식도 있어서 일본에서 한국을 얕잡아보는 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후, 한국인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한국에 대한 관심도 늘어서 한류가 발붙이게 되는 원인이 되기도 했고, 재일교포에 대한 강압적인 차별도 기세가 꺾이기 시작했다고 하죠. 행동한 의인 이수현씨의 뜻에 감화되었다는 뜻입니다.
올해는 코로나 여파로, 한국 일본 양국에서 열리던 추도식이 열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남을 돕기 위해 스스로 움직인 이 분들의 희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잊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고 이수현씨의 명복을 다시 한 번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