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삼양그룹이 잘 대응했다고 본다

채용시스템 오류에 대응하는 기업의 모습

by 지식공장장

1. 삼양그룹이 신입사원 채용과정에서 원래 대로라면 탈락시켜야 할 370명에게 2단계 전형을 통과했다고 잘못 알렸다가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750명 중 1/3 배수인 250만 합격시켜야 하는데 탈락한 사람 중 370명에게 합격했다고 잘못 보낸 것이다. 이후 잘못 처리된 것임을 알리는 사과메시지를 보냈으나, 취업게시판은 난리가 났다.


이게 생각해보면 굉장히 복잡한 문제다. 액면만 보면 단순한 채용 오류로 보인다. 그런데 이런 사건에 반감을 가진 사람에게는, 이런 일을 당한 당사자들에게는 기업 브랜드를 거부할만한 충분한 이유가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기업은


채용전형 과정에서 소요되는 비용 VS 실 잠재고객 이탈에 대한 비용


을 고려해야 한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난 '삼양그룹'이 잘 처리했다고 본다.


2. 예전에 한창 직장을 구하던 시절, 나는 버릇을 못 이기고 각 채용 회사에 대한 리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개중에는 최악의 회사가 있었다.


갑자기 면접 회장에 회사 회장님이 등장, 회장님이 응원해주고 나가셨는데 갑자기, 면접도 안 본 사람들에게 '나머지 분들은 돌아가셔도 좋습니다'라고 하는 회사.

경력 면접이라고 해서 다섯 명이 들어갔는데 나머지 네 명에게는 이름도 안 물어보고 한 사람에게만 모든 질문을 쏟아붓는 회사. 참고로 면접 끝날때까지 한마디도 못했다.

임원면접까지 봤는데 결과가 안 나와서 '서면으로 결과라도 알려주시면 안 되느냐'라고 연락했더니 갑자기 전화를 끊어버리고 이후 전화는 안받는 회사.

해외사업관리 직무로 사람을 뽑는다고 불러놓고선 '고객 서비스 센터'일을 할 거냐고 물어보길래 '저는 해외사업관리로 지원한 사람입니다'라고 대답하니까 바로 내보낸 회사.

면접 과정이라면서 총 30P의 보고서, PT50장을 만들어서 보내게 만들고 결과를 묻자 아예 전화를 차단해 버린 회사(친구 전화를 빌려서 거니 받더라)


참고로 구멍가게들이 아니라 모두 대기업, 못해도 중견그룹이다.


IMF 이후 구직자와 고용주의 밸런스가 깨진 한국 사회에서 채용과정에서 일어나는 말도 안 되는 일은 상당히 많다. 높은 분들에게 우리 회사에 이렇게 많은 지원자가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아이디어만 쏙 빼먹고 버리기 위해, 내정자가 있는데 달랑 뽑으면 말나 올까 봐 구색을 갖추기 위해 얼토당토않은 채용을 진행하는 회사는 부지기수다. 위에서 리뷰를 하고 있다고 말했는데 이 리뷰는 구글 오피스의 공용문서로 MBA 동문들하고 같이 운영하는 것이라 내 사례만 아니라 다른 동문들, 헤드헌터로 일하는 지인들의 정보도 같이 모인다. 한꺼번에 보면 이런 식으로 잘못된 채용을 진행하는 회사의 비중은 상당히 많다.


3. 삼양그룹은 각 과정에서 요즘 세상에선 구경하면 전생에 나라님을 구한 거라는 면접비를 제공하기로 유명하다. 이번에 난리 난 게시판에 가보니 7만 원이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저 사람들을 부르면 삼양그룹은


350 x 7 = 2450만 원

잘못 통보된 사람들의 1차 면접을 진행하는 사람들의 인건비

잘못 통보된 사람들의 1차 면접 결과를 처리하는 인력의 기회비용


을 채용에 투자해야 한다. 짧게 보면 기업은 저 비용이 아까워서 사람들에게 취소 통보를 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기업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그냥 다 불러앉혀놓고 떨어뜨리면 되지 왜 저렇게 번잡스럽게 처리했냐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위에서 말한 것처럼 말도 안 되는 채용을 경험해 본 입장에서는


구직자를 평판을 지키기 위한 소비재
실수를 숨기기 위한 도구로 보지 않은 회사가 반갑다


실수는 회사 채용 프로그램의 오류일 수도, 사람의 실수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구멍가게 기업이라면 모를까 대기업이라면 한 사람의 실수가 노출되면 팀 또는 그룹이 이를 해결하기 위해 움직인다(그래서 대기업을 선호하는 거다).


삼양이라는 대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단순히 돈만 추구한다면 그냥 싹 불러다 놓고 대충 면접보고 면접비는 지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처리하면 된다. 전술했듯 요즘 면접비 주는 기업 면접 보려면 전생에 나라님을 구해야 할 정도니 이는 일도 아니다.


그런데 굳이 이렇게 통보를 했다는 것은? 나는 그 우직함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애초에 면접비를 줄 정도면 괜찮은 회사다. 탈락처리를 했다는 것에 대해서는 구직자에 대한 나름대로의 존중이자 성의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럼에도 속상하신 분들이 있다면, 2번 항목을 다시 읽어주시길 바란다. 저런 막장 회사를 만나는 경우도 있다. 그런 사람도 있다. 조금은 위안이 되지 않는가?


오히려 이런 회사는 훗날 경력을 쌓고 다시 도전해봐도 좋고, 관련 경력자가 새로운 이직처로 고려해볼만하다. 여러분의 앞날에 더 좋은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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