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입과 거리감을 느끼시는 분들을 위해서
1. 오래전에 아래의 인터뷰가 화제가 되었죠.
하시는 말씀에 공감이 안 가는 건 아닌데, 엄밀히 말해서 스타트업이라던가 소규모 집단이 아닌 이상, 시키는 일 이외의 것을 신입이 하는 건 거의 불가능합니다. 만화 <미생>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장그래는 파일 폴더 편리하게 정리했다가 상사인 김동식 대리에게 걸려서 엄청나게 깨지죠.
저는 저렇게 말한 저분들이 일하는 회사가 초창기엔 소규모 회사가 아니었다면 신입 때 별반 다르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2. 저분들이 하고 싶은 진짜 이야기는 이런 거겠죠.
일일이 지시 안 하고도 내가 100% 만족할 만큼 일하는 사람이 필요해
그 마음 400% 공감합니다. 신입이 아무 지시도 안 해도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시력을 감안해서 폰트를 조절하고 회의시간과 장소를 감안해서 배경색을 정하고 참석자들의 이슈를 집어서 만족할만한 PT를 만들어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 만은 그게 첫술에 될 리 있겠어요?
3. 오히려 저런 말이 자꾸 나온다는 것은
신입과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다는 반증
입니다. 우리나라같이 상하관계가 강하고 조직에 군대문화가 자리 잡은 국가에선 상부의 권한이 굉장히 강해요. 그래서 아랫사람은 윗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맞추게 되고, 이게 반복되면서 윗사람은 이를 당연하게 여겨요. 그래서 한국 조직에서 적응은 복불복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성향이 비슷한 사람끼리라면야, 혹은 눈치가 빠른 사람이라면야 상사가 척하면 척이 나오지만 그렇지 않고 성실하기만 하다던가,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낮으면 완전히 조리돌림 당하거든요. 결국
윗사람은 아랫사람과 잘 소통하는 방법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전에는 괜찮았을지 몰라요. 하지만 요즘 신입들은 자아가 굉장히 강합니다. 본인들이 납득하거나, 확실하게 지시받은 일은 잘 해내지만 지시도 안 했는데 '척하면 척'으로 해야 하는 일은 서툴뿐더러 그걸 자기가 왜 잘해야 하는지 이해도 못해요.
보통 상사가 점심 쏜다고 해서 따라가서 짜장면을 시키면 짬뽕을 먹고 싶든 볶음밥을 먹고 싶든 짜장면을 주문하잖아요? 요즘 신입들은 자기 먹고 싶은 걸 서슴없이 시킵니다. 물론 나중에 중간 상사가 '그땐 짜장면을 시켜야 한다'라고 혼내거나 타이르겠죠. 하지만 요즘 신입들은 이를 받아들이지 못해요.
말없이 따르기는 하겠지만 '그럴거면 그냥 짜장면만 먹으라고 하지 저건 무슨 짓이야?'하고 불만을 갖습니다. 이는 리더십에 영향을 줘요. 그래서 당신이 정말 제대로 일하고 싶은 상사라면 이런 성향을 고려해서 하급자와 효율적인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4. 타 부서의 장이었지만 좋은 롤모델이 있었습니다. 그 상사는 절대 하급자에게 '이거 저거 해'라고 지시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신입에게 첫 지시를 내릴 때는 다음과 같이 지시를 내렸습니다.
"비록 이번 거래처가 우리에게 을이기는 하지만, 사장님이 굉장히 얻고 싶은 거래처고, 업계에서의 영향력도 적지 않아. 만약 그 회사와 거래가 잘 풀리면 회사에 추가적으로 거래처가 늘어날 가능성도 있지. 그러므로 그 회사와의 거래에선 갑질 분위기가 나지 않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해. 신뢰 있는 대응으로 우리를 파트너로 생각하게 했으면 좋겠어."
하던가.
"사장님은 이번 프로젝트를 원하시지만 정작 우리 직속 임원께서는 이 프로젝트를 좋아하지 않으셔. 그래서 발표를 할 때는 이 두 사람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게 해야 해. 일이 잘 안 풀리면 사장님에게 찍히고, 너무 이 프로젝트를 띄우면 직속 상사가 화를 내겠지"
의 식으로 지시를 했습니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꼭 피드백을 줬는데 그게 꽤 까다로웠어요.
- 3번 회의실 프로젝트의 램프가 오래됐는데, 왜 굳이 거기서 발표를 한 거지?
- PPT를 만들 때 파일이 잘 안 열릴 때를 대비해서 PPT는 JPG파일로도 만들어서 백업을 해둬.
- 거래처에 보내는 메일에 사족이 너무 많아 인사는 두줄 이내로 끝내.
이런 게 수십 가지는 나왔습니다. 대단한 건 바빠도 이를 소홀히 하지 않고 최우선 사항에 뒀어요. 읽으시면서 이걸 신입과 매번 어떻게 해, 내일도 바쁜데라고 할 수 있겠죠.
저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반년 지나니까 효과가 나더라고요. 이 친구가 거래처의 역학관계를 다 알아서 꿰고, 윗사람들 간의 역학관계를 다 알아서 꿰고 나아가서 회사의 전략 히스토리를 알고 맞춰 행동하니까 잡음이 안 나는 거예요.
그다음부터는 지시가 간단해집니다. 임원회의 준비해, 거래처 미팅가. 정도였죠. 하지만 이렇게 하다보니까 시키지도 않아서 신제품 리서치는 미리미리 해두고, 바뀐 규제가 있는지도 알아서 찾아보고, 거래처 관리도 상사가 원할정도로 잘하게 되더군요.
별 말 안해도 귀신 같은 눈치로 상사의 맘에 들게 일하는
유능한 사원이 만들어졌습니다!
결국 동기 중에서 제일 빨리 대리로 승진했습니다. 이후로도 잘 나가고요, 그 상사는 역시 능력도 좋았지만 커뮤니케이션도 잘하는 만능인재, 외부에서 좋은 조건으로 스카웃을 받고 모 그룹사 대기업에서 아주 높은 사람으로 근무중이고요.
5. 알아서 따박따박 잘하는 신입? 학원에서 배운 것 이상을 하는 신입? 그런 걸 원하려면 그만큼 가르쳐야죠. 대부분의 회사가 신입은 알아서 배우는 거라고 간주하는 현실은 잘못된 겁니다. 도둑놈 심보예요.
사람마다 살아온 환경, 문화가 다 다르고 심지어 같은 집에서 자란 가족, 형제끼리도 커뮤니케이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걸 신입이 다 해결해서 올 거라고 생각하면 그건 이기적이거나 공감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거라고 생각해요.
갓 들어온 신입이 무슨 수로 말도 안하는 상사의 의중을 파악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나요? 초능력자 뽑나요?
한국사회는 상사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시니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주니어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게 잘 되었을 때 비로소 쓸만한 신입이 나올 여지가 생깁니다.
역사 리더십 경영 매거진의 테마를 바탕으로 새로 엮어낸 <조선 리더십 경영> 이 와이즈베리/미래엔에서 2018년 11월 하순 출간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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