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맨 Jan 26. 2016

눈물이 날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건 없었다.

히맨 이즈 온 PCT

둘은 샌디에고에서 비행교육을 받고 있던 지인의 도움으로 차량을 타고 출발지까지 이동을 했다.

미국과 멕시코 국경은 마치 하나의 담을 쌓아 놓은 듯 하다.

캄포라는 곳의 PCT의 최남단 포스트. 그 외에는 바람 소리 뿐이었다.

둘을 데려다준 지인은 다시 차를 타고 돌아갔다. 이제 두 사람이 길 위에 서 있다.


그는 아직 얼떨떨한 듯 했다. 동시에 무언가 알 수 없는 불안함이 보였다.

'혹시 무언가 빠지지는 않았나?'

'고프로는 어떻게 달까? 처음인데 촬영은 어떻게 할까?'

'참, GPS 시계 스타트해야지!'

무언가를 느낄 새도 없이,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마음의 조급함을 느끼며 그렇게 첫 발을 뗐다.

그제서야 생각을 한다.


'정말 내가 PCT에 와 있는 걸까?'


많은 고민과 고생을 하며 준비해서 도착했는데,

PCT에 오면 무언가 커다란 성취감에 감격하여 눈물이라도 날 줄 알았는데...

그런건 없었다.


그는 앞장 서서 힘차게 걷기 시작한다. 간만의 탁 트인 자연에서의 걸음이어서 인지, 처음 시작의 설렘 때문인지. 그렇게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 앞만 보며 걸어 나갔다.

초반부터 형은 많이 쳐졌다. 사진을 찍는 것도 영향이 있었을 테지만, 아무튼 한 500m까지 벌어진 것 같다.
한 15분쯤 걸었을까?? 국경 순찰 차량이 뒤에서 나타났다.


“너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어!”

출발하자마자 길을 잃다니...
그리고선 친구도 봤다며 뭐라 뭐라 하는데, 그는 머뭇거리다 “OK” 라고 한다.

차에 타란다. 3초 뒤 깨달았다. 출발지로 다시 픽업해 준다는 말이었다는 것을...
그렇게 그는 PCT 첫 날부터 차를 타 버렸다.

그리고 다시 원점.


국경 경비원은 그를 내려주며 길을 찾아가는 법을 설명한다.


"저 갈색 스틱과 표식을 따라가면 돼"

그는 그동안 행정적인 문제와 재보급에 온 신경을 쓰느라 정작 어떻게 길을 걸어갈 지에 대해서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어 불안해 했다. 그래도 저 스틱만 따라가면 된다는 얘기에 조금은 마음이 놓이는 눈치다.

저 멀리서 빨간 점으로 형이 보인다. 그는 큰 소리로 형을 부른다. 하지만 안 들리는 듯 하다.

'잘 못 된 길로 계속 가는건가? 분명 같은 순찰차를 먼저 만나 이야기를 들었을 텐데...'

거기가 아니라고 소리치지만, 여전히 들리지 않는 것 같다.

'첫 날부터 이렇게 헤어지는건가?'

'예상은 했지만 이건 좀 너무 빠른데?'

동시에 불안함도 조금은 느껴진다. 다행히 이내 곧 그를 보고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 둘은 출발지 앞에서 다시 만난다. 다시 출발.

사막이라고 해서 발이 푹푹 빠지고, 엄청난 체력소모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런건 없었다. 그는 충분히 걸을 만 했고, 다만 길을 또 새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으로 주변을 두리번 거리며 걸을 뿐이었다. 형은 생각보다 잘 따라와 주었다. 잘 걸었고 예상 거리보다 훨씬 긴 거리를 걷게 되었다. 하지만 역시 이내 길이 또 헷갈린다.


"이 길인 것 같은데요?"
"저 길 아닌가?"


형이 아이폰을 꺼낸다.

"여기에 보면 길이 나와 있더라고"

받아 놓고선 별 도움이 안되는 것 같아서 지웠던 어플이었다. 하지만 분명 유용한 어플인 듯 했다. 처음 써보는 거라 WR*이 뭐고 CS*가 뭔지 아무것도 알지 못 했다. 그저 오늘 잘만 한 곳이 어디인지 묻고 싶을 뿐.

지도를 보면서도 확신을 할 수 없는 길을 따라 걷고 걸었다. 그리고 해가 거의 기울었을 무렵, 한 캠프사이트를 찾았다. 주변에는 다른 하이커들이 이미 텐트 안에서 곤히 자고 있는 듯 했다. 방해가 되지 않게 둘은 최대한 소리를 죽이며 짐을 풀었다.

첫 날. 어찌보면 기념으로 무언가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형이 무언가 하고 싶어하지 않을까 했다. 그런건 없었다. 생각과는 달리 의외로 어두워졌으니 빨리 텐트치고 들어가 정리하고 휴식을 취하자고 한다. 아마도 첫 운행이 쉽지는 않았으리라.


서둘러 텐트를 치고 들어갔고, 침낭을 꺼내 덮었다. 저녁은 캄포의 주유소 옆 서브웨이에서 먹고 남은 샌드위치 절반을 먹는다. 아주 신난 표정이다. 얼마나 신났는지 어울리지 않는 어깨춤까지 춘다. 그는 군대에 있을 때부터 텐트 안 침낭 속 취침을 가장 행복해 했다. 이것 때문에 PCT에 온 이유도 있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은 것도 같다. 아마도 포근한 곳에 늘어져 있는 것을 좋아하는 듯 하다.


PCTDAY#1 20150416
 드디어 출발했다!! 나는 여태까지 이 PCT를 준비하면서 힘들었던 때가 생각나며 눈물이 날 줄 았았다.
그런데 그런 건 없었다. 아침부터 너무 여유없이 급하게 출발지로 향해서 였을까…
나는 여느 때와 다르지 않았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지금 처음 텐트를 치고 혼자 텐트 안에 들어 오니 어느 정도 실감이 나는 그런 그림??
그나저나 이게 얼마만의 캠핑인가~ 완전 신남!!^^
뭐 기타 여러 가지 생각들이 있었는데…
피곤하니 오늘은 이만~!!
- 텐트 안 침낭 속에서 엎드린 채…


PCT의 첫 날 밤은 그렇게 포근하게 흘러갔다.


He-Man's PCT day#1

*WR/CS : Water/CampSite. 급수포인트와 야영이 가능한 사이트를 말한다.


20150416#1_Campo-WRCS015

by 히맨


매거진의 이전글 여자 26살, 혼자 4285km를 걷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