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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맨 Mar 28. 2016

처음으로 기록이 떨어졌다.

2016 동아마라톤

5번째 마라톤 풀코스,

처음으로 기록이 떨어졌다.


5, 4, 3, 2, 1 

출발!


처음 A그룹으로 나서는 동아마라톤.

가민 피닉스2 GPS 시계를 출발 3분 전쯤부터 위성을 잡기 위해 눌러놨는데, 도무지 위성을 잡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출발 신호 후에 출발 매트는 점점 내 앞으로 빠르게 다가오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은 스킵 버튼을 통해 강제로(?) 스타트 버튼을 누를 수밖에 없었다. 

'에이 망했다. 어제처럼 또 GPS 기록 안남을 거 같은데...... 그냥 시간만 보고 뛰자'

항상 시계에 표시되는 페이스만 바라보며 달리던 이전과 달리, 정확하지 않은 페이스를 믿을 수 없어 일일이 매 km마다 체크를 해야 되는 대회가 될 듯하다. 페이스 조절에 애를 먹을 게 뻔해 보였다. 출발부터 무언가 좀 잘 맞지 않는 느낌이다. 하지만 뾰족한 해결방법은 떠오르지 않는다.

초반 몇 km를 달리며 코스의 km표식과 시계의 것과 맞추어 보았으나 오차는 이미 매 km마다 몇 백 미터씩 나고 있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GPS는 엉망이었다. 잠시 짜증 팍~! 그래도 어쩌겠는가, 열심히 달리는 수 밖에.


7km

런투마 응원단을 찾으며 코너를 돌았으나 결국 찾지 못 했다. 아쉬워하며 달려 나가고 있는데,

뒤에서 한 아저씨가 나와 부딪히며 순간 넘어질 뻔했다. 순간 많이 당황. (참 노매너였다ㅠ)


13~14km 즈음,

뒤에서 뽕짝이 흘러나온다. 잠시 뒤면 없어지겠지 했던 그 음악소리는 희한하게도 나를 계속 쫓아오고 있었다. 차라리 나를 빠른 속도로 제치고 지나가면 좋으련만,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게...... 그러다가 나를 지나쳐 조금 멀어져가면, 또 다른 노래가 뒤에서 흘러나온다;; 포기한 채 적응하기로 한다. 그나마 최신곡이나(최신곡이라 해봤자, 왁스의 '오빠'^^;;)  빠른 박자의 노래들은 페이스를 흩뜨리지 않았으나, 뜬금없는 늘어지는 트로트는 나를 힘들게 했다. 그렇게 휴대용 스피커에서 크게 흘러나오는 뽕짝들을 들으며 1~2km가량을 달렸다.

Half

1시간 40분. 생각보다 빠른 페이스였고, 나머지 절반을 뛸 힘이 부족함을 느꼈다. 다른 때 같으면 만족할 만한 페이스였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벌써부터 지친 감이 들었고, '내가 오버페이스 했구나'하는 확신이 들었다. 페이스를 제대로 나타내지 못하는 GPS 시계에 괜한 투정을 부리고 나니, 이후 부담감과 불안감이 엄습했다.

37km

힘겹게 잠실대교를 건너며 응원을 받아 조금이라도 힘을 내고 싶었다. 37km 지점에서 런투마 응원단을 만나 겨우겨우 힘을 짜내며 달렸다. 하지만 3~400미터쯤 지났을까, 갑자기 하복부에 쥐 나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멈추기 싫은데...... 조금만 더 속도 내주면 충분히 가능한데......' 하며 버텼지만  쉽지가 않았다. 결국 멈춰 섰다.

다리를 올릴 때마다 복근이 뭉치는 느낌에 죽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뛰기에는 참 괴로웠다. 준비하면서 스트레칭 좀 잘 해줄 걸 하는 후회를 잠시해보지만 이미 늦었다.

해숙누나가 급 찍어준 사진 중 마지막 컷 ㅎ


~40km

이후 5~6번을 걷다 뛰다를 반복했다. 멈춰서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조급함은 정말 오랜만에 느끼는 조급함이었다. 발목부상에서 회복되지 않았고, 짧은 준비기간이기는 했지만 항상 실전에서 강했기에, 걱정을 하면서도 은근히 기대를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 나는 걷고 있고, 조금씩 기록을 타협하며 레이스를 이어나가고 있다.

2km를 남긴 지점, 조금 통증이 해소된다. 있는 힘을 다해, 아니 한 90%의 힘을 쓰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마지막 2km는 정말로 길다.


41km

급수대에서 포카리를 한 잔 집어 들고 마시며, 몇 초간 쉬고 마지막으로 남은 거리를 내달린다. 힘을 더 내서 빨리 가고 싶은데 왼쪽 종아리에 쥐가 나려 하는 것이 나를 자꾸만 방해한다. 몇 백 미터 가지 않아 한 번 급 뭉치면서 넘어질 뻔하면서 놀라기도 했다. 계속해서 달리지만 역시나 멀다.


결승선 400m 전

잠실 종합운동장에 들어선다. 빨간 트랙이 보인다. 이전 같으면 단거리를 달리듯 전속력으로 달렸을 텐데, 이젠 발목이 약하고, 쥐가 나려 하는 종아리 때문에 그렇게 달리진 못했다. 그래도 분명 빠르다. 마지막으로 이를 악물며 달려 나간다. 내 앞으로 빈 공간이 있었고, 사진 찍어주는 사람이 보인다. 그래서 더 힘을 짜내서 달린다.


골인!

5번째 풀코스이자 4번째 동아마라톤 완주!
그리고 2010년 처음 마라톤 풀코스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기록이 떨어졌다.

작년 동아마라톤보다 8분가량 쳐진 기록. 발목 부상 이후 2 달이라는 짧은 훈련기간이 아쉽기는 하다. 2주만 시간이 더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지만 100까지는 아니더라도 99%의 전력을 다 했기에 후회는 없다. 오히려 앞으로의 가능성이 보였다. 다신 못 뛸 줄 알았는데......

PCT 마치고 캐나다서 절뚝이던 때 생각하면 이 정도면 훌륭하지!

올 가을 시즌 혹은 내년 동마에선 10분대 진입 가능할 듯하다.
고생했다~!^^


- 이 악물고 전력으로 달리는 마지막 스퍼트는 언제나 멋져 +_+

- GPS 엉망인 피닉스 2는 내가 44킬로를 뛰었다고 한다. 1km 랩타임이 1분 대도 있다 ㅠㅠ


20160320
서울국제마라톤(동아마라톤)
3:37:12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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