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히맨 Oct 16. 2016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참 좋겠어.

그럼에도 나는...

그냥 풀썩 침대에 엎어졌어.

휴...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한숨을 바깥으로 내뱉었는지 혹은 속으로 꾹꾹 눌러 담았는지도 모르겠어.


'모든 게 계획대로 된다면 참 좋겠어.'


하지만 모든 게 계획대로만 된다면 재미없잖아?!

아니 그것도 아닌 거 같은데...

자신의 예측과 계획이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것만큼 큰 희열이 있을까?!

마치 미래에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야...


문득,

PCT 첫 한 달의 운행과 재보급 계획이 꽤나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기뻤던 기억이 나.

한 달간 산길을 걷다가 먹을 게 떨어졌을 때쯤이면 다시 먹을 것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일.

그 일을 한 번도 아니고 7번이나!!

그 어려운 일을 해냈을 때의 뿌듯함이란...

내게만 의미 있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겠지마는... 미소가 절로 지어지는 일이었어.

참으로 고되고 머리 아픈 준비과정이 있었기에 그 희열이 컸어.

준비를 끝내야 하는 날. 나는 당시 LA의 선배님 댁에서 재보급 박싱과 운행 일정에 맞춰 어디로 보낼 것인가를 고민하며 밤을 새웠어.

befor PCT  ⓒ양희종

초반에는 하루 20km 정도 걷는다고 치고 5일이면 100km니까 그쯤에 있는 재보급지 이름과 주소를 확인하고 박스에 써넣고, 예상 도착일(ETA)를 적어주고...

그 이후부터는 30km씩 가면 이 날에는 여기에 도착할 거고... 다음 재보급지까지는 거리가 좀 기니까 식량을 하루치 더 넣고, 양말도 이때쯤이면 필요할 것 같아...


계산해야 할 것들이 산더미인데 시간은 어찌도 그리 빨리 흘러가는지... 마음만 점점 급해지더라...

잠 안 자면 큰 일이라도 나는 줄 아는 나인데, 길을 나서면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감이 마음을 졸이게 했던 것 같아.

befor PCT  ⓒ양희종

33일 차 이후부터는 그때그때 필요한 재보급품들을 바로 다음 혹은 조금 더 확실한 장소로 보내면서, 띄엄띄엄 보내 놓은 장소의 사이사이를 채웠지. 당장 며칠 뒤 가까운 미래에 받을 수 있는 것들이라 분명히 제 때 계획대로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어. 이번엔 참 계획대로 안 되더라...


그리고,

내가 거기서 엄청나게 아프고 고통 속에 신음하며 걷게 된 것.

처음 아팠을 때는 '내가 이 개고생 하려고 여기에 왔지'라고 피식하며 받아들였지만,

두 번째이자 마지막 한 달간의 아픔은 상상을 초월하며 진지하게 포기를 생각하다가,

기어서라도 가겠다며 길과 싸우듯 치열하게 걸어갔어.

'포기를 생각하며 울먹이는 내 모습'

이건 내 계획에 단 0.000001%도 없었어. 정말로!


그리고 그건 정말 평생의 소중한 경험과 교훈으로 남아있어.

결국에는 성공했기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일지라도 말이야...


결론을 내보자면...

나의 계획이 맞든 틀리든 일희일비할 필요 없겠더라고...


방은 다시 환해지고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그리고 다시 기대와 함께 길을 나서.

하지만 오늘도 역시 나의 예상과 그리고 기대와는 다른 그냥 그런 하루가 지나가.


그럼에도 나는...

항상 기대하는 것을 기대하고 있다.



Next Green talk concert 첫날 첫 강연 시간, 심란한 마음에 딴짓하다가 문득.

그리고 연신내 스타벅스에서...

20161015_21:47

by 히맨


- 내 인생 정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구나...

매거진의 이전글 오직 내가 떠오르기 바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