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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히맨 Mar 04. 2017

너 그렇게 뛰다 죽어~

다행히 죽지는 않았던 뜨거운 사막 위에서의 기억

나도 회사 생활을 할 때가 있었다.

회사 생활은 군대 가는 느낌과도 비슷했던 해병대 수색대 이후 또 흔치 않은 경험이었다.

내가 일해야 할 그곳은 뜨겁고 건조한 홍해가 흐르는 사우디의 한 해안가 건설 현장이었으니까.

그야말로 무(無)였던 현장. 지금은 내 뒤로 어마어마한 발전소가 자리하고 있을거다.


나는 살아야 했다.

내가 이 사막에서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이해할 수 없었고, 그저 생각 없이 멍해진 나는 창문 틈새로 모래가 들이치는 컨테이너 숙소에서 죽어가고 있었다. 적어도 내가 본 그곳 사람들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방식은 대게 음식과 무엇보다 '싸대기'로 불리는 질이 좋지 않은 술이었다. 빡빡한 하루하루 속에서 자신만의 시간이 거의 없는 그들에게서 아니 나를 포함한 우리는 익숙한 그것 말고는 별다른 탈출구가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새로운 탈출구를 찾는 것이 더 큰 스트레스로 다가올는지도... 나 역시 평소보다 많은 양의 음식을 먹게 되면서 항상 신경을 써야 했고, 그동안 나의 일상이자 탈출구였던 운동마저도 강한 의지로 의무적으로 하기 시작했다.

과자의 천국 사우디의 쇼핑몰에서 사온 과자와 초콜릿들... 식당에서 가져온 무알콜 맥주와 페트병에 담아온 과일주스... 아래는 내 화장품 ㅎ
76번 방이 내 집이다.
내 방

일찍 마치면 6시지만 대부분 8~9시는 돼야 사무실을 나올 수 있었고, 바로 숙소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고 체육관이나 나의 러닝 코스인 숙소 앞 도로로 나간다. 다음날을 생각하면 내게 주어진 운동시간은 1시간 남짓. 평소 운동에 3시간 정도를 할애하던 나의 운동 스타일이 짧고 굵게로 바뀐 것은 이때부터이다.

컨테이너를 칸막이로 나눠 방을 만든 숙소가 유일한 혼자만의 공간이었다. 그리고 저기 보이는 바로 앞 아스팔트가 나의 운동장이었다.
이곳에선 항상 씨스타의 '나혼자'가 흘러나왔다 ㅎ

그곳에서는 오직 그 순간만이 나의 시간이었다. 그 순간만은 내가 살아있었다.

매일 밤 사무실과 바로 옆 숙소 사이의 포장도로는 나의 운동장이었다.

그 운동장을 쳇바퀴 돌듯 돌다 보면 업무를 마치고 퇴근하는 전 직원들을 마주친다.

직원들과 인사를 하며 계속 달려 나갈 때면 여러 말을 듣게 된다.

그중 한 부장님의 말씀은 아직도 선명하다.

"너 그렇게 뛰다 죽어~"


아마도 참 쓸데없는 짓한다는 생각을 하셨으리라 짐작을 한다.

익숙한 그 반응에 나는 오히려 재미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계속 뛰고 또 뛰었다.

결국 나는 현장에서 모르는 사람이 없는 '뛰는 놈'이 되었다.

(부장님들이 틈만 나면 찾아와서 내게 살 빼려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을 할 때 상당히 귀찮았던 기억이 난다. 뭐 인정(?)을 받은 것 같아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운동 후 정신없이 씻고 누우면 하루가 끝난다. 그리고 5~6시간을 잔다. 새벽 4시 반에 일어나 복근 운동을 하고 아침식사까지 한 후 6시 출근하는 일은 잠이 많은 내게 상당히 고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걷잡을 수 없이 스스로 망가질 것이라는 불안감에 매일을 살기 위해 뛰었다. 별일 없는데도 일부러 현장에 나가 홀로 걷기도 하고 눈치 보며 화장실에 들어가 스쿼트를 했던 것도 견디기 힘들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 없었던 일상이었다. 하지만 더 이상 이대로는 안됐다. 내가 나를 놔버릴 것 같아 결국 나는 그곳을 나왔다. 인천공항에 마중 나온 부모님께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에서 회사를 그만두겠다는 '폭탄선언'을 해버린 것은, 그 어떤 가치보다도 소중한 나 자신을 위한 선택이었다.


런 앤 런(Run & Run)

지루했던 단체 회의 시간, 동기 중 한 명이 종이에 그림을 그려 내게 보여줬던 것이 기억난다.

엑셀 마스터를 꿈꾸는(?) 배관 담당인 오기사, 현종이의 그림 속 나는 뛰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그림에 난 폭소를 터뜨렸고 그와 함께 묘한 기분을 느꼈던 것 같다.

그 그림 속 나는 살아있었다.

(오기사의 그림실력은 브런치에서도 먹힐 거 같은데...ㅎ)

뛰고 또 뛰는 김희남 ㅎㅎㅎ/ drawing by 오기사
사우디 입국장에서 야동이 있나없나 외장하드 검색당했던 정우 ㅎㅎ / drawing by 오기사
잠이 많은 나보다 잘 잤던 지형이 형. 이거보고 회의 때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ㅎㅎ / drawing by 오기사


지금도 나는 아직 죽지 않고 계속 뛰고 있다.

다행히 부장님 말씀대로 되지 않은 거다.


나는 지금도 뛰고 있다. 

다만 조금 느리게.


by 히맨


- 쓰다 보니 길어졌다.

- 사진을 돌아보니 이때의 거울을 매거진으로 써도 괜찮겠다 싶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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