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걸까?

히맨 이즈 인 제주_Day#9_20170503

by 히맨

상처는 사람을 가리지 않고 찾아온다.

특별한 사람이건 평범한 사람이건... 그 특별함의 기준을 정하는 사람도.

아침은 치유의 시간이었다. 고민과 슬픔을 이야기하고 나누며 해소가 되는 장면을 목격했다. 혼자였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운 시간일까.

쨍쨍과 다음을 기약하며 쨍쨍랜드에서 나왔다. 원래는 오늘 한라산 둘레길에 복귀하려 했다. 수악길 구간을 걸으려 했다. 하지만 여건 상 트레일 복귀가 힘들어졌고, 오늘은 앨리의 일정에 맞춰 움직여 보기로 했다. 앨리의 점심약속 전 살짝 빈 시간을 이용해서 용눈이 오름으로 향했다. 5년 전 겨울에 오탐OB들과 함께 올랐던 그곳이다. 하지만 그런 걸 여유롭게 느낄 시간이 없었다. 마음의 빈 공간과 시간이 없었다.


‘왜 이렇게 심란하지?’


바로 산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내 계획이 늘어지면서부터 이런 감정이 피어난 거 같은데, 정확한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애매한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안 드는 건가? 그냥 혼자 조용히 있고 싶은 걸까?

용눈이 오름을 스치듯 훑어보고는 다시 차에 올랐다. 한 식당으로 이동했고, 거기서 한 친구를 만났다. 앨리의 지인인 광희라는 그 친구는 전역을 반년정도 남겨둔 군인이었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뭔가 또렷한 에너지가 느껴진다. 식사 후 동백이라는 카페로 이동한 우리는 한켠에 분리된 좌식 공간에 들어가 앉았다. 나는 나의 작업을 했고 다른 둘은 서로 자신의 사업 계획서를 살펴보며 대화를 나눴다. ‘그게 정말 될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그것을 실현하는 것은 나의 생각이 아닌 그들의 생각에 달렸다. 동진이가 정글마라톤을 가겠다며 지원 영상을 내게 보여줬을 때가 그랬고, PCT 영화를 만들겠다는 두 친구가 나를 찾아왔을 때도 같은 생각이 들었으니 말이다. 그 외에도 많은 비슷한 상황을 봤는데, 통계적으로 보면 성공 확률은 반반인 것 같다.

김녕해변으로 향했다. 김녕해변이 좋다며 추천을 받았었지만 멀어서 오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었다. 이렇게 보게 될 줄은 몰랐던 그곳은 사람이 많았다. 그래도 푸른 해변은 확실히 좋았다. 다음에는 꼭 여기서 텐트치고 자야지.

해변에서 나와 한 마을의 한복 대여점을 보고 싶다는 앨리의 동선을 따랐다. 감각적인 한복과 가게의 모습이 매력적인 그런 곳이었다. 한복 입고 촬영한 사진들이 참 예쁘다. 이 마을엔 참 아기자기한 장소들이 많았다. 소박하고 평화로운 느낌. 마을 골목을 구경하다 우연히 발견한 한 카페 또한 좋았다. 옛날 학교 책걸상 등으로 꾸며져 있었는데 마당에는 앉은키재기도 있었다. 거기에 앉아 앉은키를 잰다. 반에서 1~2등을 다퉜던 나의 앉은키는 여전했다.

제주에 온 김에 생각나는 사람들을 최대한 만나고 가보려 했다. 예지한테 전화를 했다. 예지는 상당히 바쁜 듯 연락이 참 힘들다. 다행히 부재중을 보고 전화한 예지와 통화가 됐고 만나기로 했다.


“파스타 괜찮아요?”

예지는 세화에 있다고 했다. 운이 좋게도 가까운 위치였고, 두 사람의 동의를 얻어 함께 만나러 가기로 했다. 예지가 오라고 한 ‘부엌 인 세화’라는 이름이 뭔가 낯설었다. ‘영어로 바꾸면 ‘키친 인 세화’겠지?’ 이제는 한글을 쓰는 것이 오히려 특별함으로 다가오는 건 나 뿐만은 아니겠지.

예지는 아마 한 3년 만에 보는 것 같다. 강남의 작은 사무실에서 한솥밥을 –정말로 한솥밥- 먹어가며 고생하던 때 이후로 처음 다시 만났다. 예지는 그때의 기억을 한 사람의 ‘회사놀이’로 규정했다. 나도 부정하지 않았다. 그때의 나는 확실치 않은 여러 상황들에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확신이 없는 일에 매달려 있었고,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을 극복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쏟아야 했다. 무엇보다 엉덩이의 통증과 함께 저려오는 다리는 내게 인생 최대의 고비를 선사했다. 그 얽힌 상황들을 풀어내려다 더 얽혀 묶인 채 헤어 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결국은 끊어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다다랐다.

예지에게도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던 그때의 기억은 그녀에게서 완전하게 지워진 듯 했다. 아니 다시는 꺼내지 않고 싶어 철저하게 꼭꼭 눌러 담아놓은 것 같았다. 처음으로 서로 알게 된 오픈팩토리 시절의 이야기도 잠시 했고...

곧 서울에서 열릴 전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 제주 살이 3년차라는 예지는 이전보다 그 모습이 또렷해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단단해져 있다는 느낌도 함께.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고 했지만 그것 역시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좋아보였다.


‘나도 가끔은 이런 고요함 속에 지내고 싶다.
평온한 마음으로.’

앨리와 함께 돈내코 야영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히맨 이즈 인 제주_Day#9_20170503

쨍쨍랜드 - 김녕해변 - 세화해변 - 돈내코 야영장

20170503@돈내코 야영장

by 히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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