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이나 걷다보면 인생의 정답 같은 게 떠오르지 않을까?’
그런 건 없었다. 그 길 위에서의 하루하루는 걷고 먹고 자는 단순한 일상일 뿐이었다. 그 일상 속에는 온전한 내가 있었다. 그 길에서 나는 울고 웃었다. 햄버거 한번 먹어보겠다고 46km를 걸어가 마주친 맥도날드 간판을 보고 환호했고, - PCT에서 가장 성취감 있던 때가 언제냐 물으면 가장 먼저 맥도날드가 떠오르는 건 이상한 걸까? - 속병으로 힘없이 터벅터벅 걸으면서도 ‘그래 내가 이러려고 여기에 왔지!’라며 미친놈처럼 웃기도 했다. 마을을 떠날 때면 더 쉬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배낭을 둘러멨고, 앞에 누군가 걷고 있으면 속도를 높여 제일 앞에 있어야 직성이 풀렸다. 내가 알고 있는 나의 모습 그 자체였다. 그동안 추구해온 나의 생각과 가치들은, 바뀌기는커녕 더욱 강해졌다. 크고 작은 고비들이 있었지만 나는 잘 버티며 극복해나갔다. 어쩌면 PCT는 내게 그저 하나의 운동장 중 하나로 그쳤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곳에서 끝을 모르는 자만심을 얻어왔을지도 모른다. 지옥과도 같았던 워싱턴에서의 마지막 한 달이 없었다면 말이다.
육체적 한계를 정신력으로 넘어서는 경험들로 굳어진 신념은 그동안 발목이 수시로 전달하던 경고를 머리에서 무시하게 했다. 매우 즐겁고 알찼던 하루를 보낸 다음날 아침 텐트 밖으로 첫 발을 내딛으며 느껴지는 심상치 않은 통증. 발목은 나를 더는 따르지 않기로 작심한 듯 했다. 빗속에서 절뚝이며 걷게 된 첫 날 나는 억울함에 울먹였다. 이제 다 끝났다 생각했는데... 길 위에는 발이 조금만 잘못 놓여도 몰려드는 통증에 악 소리를 질러대는 내가 있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떳떳할 수 있도록 길에만 집중해온 내게 왜 이런 시련을 주느냐 원망하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맨발의 PCT 하이커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신중하고 또 소중했을 그와 달리 나는 수없이 내딛은 그동안의 걸음들을 당연하게 여겼다.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후회해보지만, 결국 나는 그 벌로 남은 700km를 절뚝이며 걸어야 했다.
매 끼니마다 먹어온 진통제의 부작용인지 손이 전기가 오듯 찌릿찌릿했다. 퉁퉁 부어오른 발목은 피멍이 든 듯 시퍼렇게 변해버렸다. 캐나다까지 320km를 남겨둔 스카이코미쉬 마을의 모텔, 나의 정신력은 바닥을 드러냈고 나는 어쩔 줄 몰라 했다. ‘먹을 게 없으면 쥐라도 잡아먹고, 기어서라도 이 길을 걸어내고 말겠다.’며 각오를 다지던 나의 정신력이었다. 신들의 다리에서 길을 다 끝내기라도 한 듯 기념으로 목에 건 PCT 목걸이를 길에 묻어주고 이제 그만 돌아가자고 내게 제안해왔다. 하지만 그걸 받아들일 수 없는 마음은 포기하지 말라며 눈물로 호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