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수사도북 트레일러닝
나른한 오후, 겨우 자리를 잡고 작업을 시작한지 얼마 안 되어 전화가 울렸다.
형 내일 뭐해요?
급 이틀 휴식이 주어졌다며 청도에서 올라갈 테니까 내일 당장 불수사도북을 하잔다.
'아니 이렇게 번개로?! 아 지난 주말 은평둘레길 뛰고 어제는 남산 기록 세웠는데...'
겨울 불수사도북을 하겠다며 나섰다가 시간이 늦어져 북한산 구간을 남기고 포기한 게 불과 한 달 전이다. 이렇게 빨리 다시 불수사도북을 달리게 될 줄이야;;
22시가 다되어 서울에 도착해 제대로 된 식사는 못하고 간단히 치킨만 사다가 집에서 먹고 러닝 준비. 미리 무릎과 발목에 테이핑하고 장비와 행동식을 미리 챙겨두었다. 언제나 그렇듯 자정을 넘겨 1시 쯤 잠이 들었다. 그리고 4시 50분 기상. 간단히 빵으로 아침을 대신하고 바로 지하철 첫 차에 올랐다. 화랑대 역에 내린 후 드디어 출발지인 공릉산백세문 앞. 벌써 8번째 불수사도북 시도다. 그동안 불수사도북 단체 하이킹은 많이 경험했으나, 러닝은 함께할 러너가 없어 나홀로 달려왔다. 함께 달리는 첫 불수사도북 출발!
우준이 걸음은 정말 따라가기 쉽지 않았다. 내가 앞에서 길 안내를 해야하는데 너무 페이스가 빨라 리딩이 쉽지 않았다. 이러다간 내가 먼저 퍼질듯 해 시야에 보이는 정도로만 유지하며 우준이를 페이스메이커 삼아 열심히 따라갔다. 덕분에 불암산-수락산 구간을 빠르게 통과할 수 있었다. '그래 당길 수 있을 때 최대한 당겨놔야지.' 하지만 우준이는 예상대로 오버페이스였다. 사패산 이후 좀 힘들어하더니 결국 쥐가 나버렸다. 도봉산에 힘겹게 오른 후 우이동으로 내려와 "여기까지만 할게요."라고 하면 나도 굳이 무리해서 데리고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북한산을 위한 각오를 다지듯 정신없이 짜장면을 흡입하는 걸 보니 가긴 가겠구나 싶었다. 시간과 멘탈이 충분하니 몸만 잘 버텨주면 될 일이었다. 백운대에 올라 한숨 돌리고 나서 본격적인 북한산 구간의 시작. 백운대 이후부터는 나도 솔직히 겁이 났다. 작년 5월 처음 러닝으로 도전했던 때 잦은 알바에 정말 힘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때를 제외하곤 모두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가는 단축 코스를 선택했기에 이 코스를 걷는 건 이제 겨우 두번째였다. 심각한 길치인 내가 길을 익히는데 2번은 턱없이 부족한 횟수다. 성곽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험한 너덜의 내리막길을 헤드램프에 의지해 걸었다. 후반부 정말 쉽지 않았을 텐데 우준이는 역시나 멋지게 잘 따라 와줬다. 덕분에 나 역시 끝까지 갈 수 있었다. 그래도 한 번 뛰어 봤다고 저번만큼 힘들진 않았다. 아마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을 거다. 나를 믿고 의지만 보여준다면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며 끝까지 가는 거다. 큰 알바없이 꽤 매끄럽게 진행됐다. 그렇게 아무런 사고없이 출발한지 14시간도 안 되어 불광역까지 완주!
그렇게 우준이의 첫 불수사도북 시도는 풀코스로 완주~!
나는 8번째 시도 만에 첫 러닝 때 빼먹은 영봉까지 오르면서 처음 풀로 완주!
- 미세먼지는 넘나 아쉽ㅠ
드디어 거의 알바 없는 온전한 GPS 트랙을 얻었다. 이제야 전체 코스를 제대로 안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불수사도북을 구간별로 나누어 하이킹하고, 최종적으로 불수사도북을 완주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장거리 하이킹을 준비 중인 예비 하이커들에게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관심있으시다면 댓글로 알려주세요!)
2021년 3월 11일
07:18 공릉산백세문(출발)
08:12 불암산
09:30 수락산
12:26 사패산
13:47 도봉산 신선대
17:39 북한산 백운대
21:09 불광 대호아파트(종료)
(1) 화랑대역-공릉산백세문-불암산
(2) -덕릉고개-수락산
(3) -기차바위-도정봉-동막골초소-사패능선-사패산
(4) -원도봉-Y계곡-도봉산 신선대
(5)
-원통사-우이령마을입구-육모정지킴터-영봉-인수대피소-백운산장-북한산 백운대
-용암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청수동암문-승가봉-사모바위-비봉-족두리봉-대호아파트-불광역
(불수사도북 풀코스와 단축코스의 루트는 물론, 주요 포인트까지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언제나 동기를 주고자 하는 편인데 그건 나를 위한 동기부여이기도 하다. 아무것도 없는 나를 언제나 믿어주는 하이커들에게 고맙다. 서포터는 무슨 일이 있어도 흔들리지 않아야한다.
20210312_20:38
불수사도북 다음날 회복주 중 문득
20210318_14:53
by 히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