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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 길

오, 나의 네팔!

여섯. 트래킹 시작도 전에 우당탕쿵탕이라니.

by hearida

(2012년 4월 네팔 여행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쓴 글과 사진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네팔에서의 둘째날.


우리 모두 늦잠을 자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새벽 댓바람부터 일어났다. 아침에는 뜨신 물을 기대했는데 욕심이 과했나보다. 원치 않는 냉수마찰니 없던 신까지 확 들었다. 그래도 나름 쉬폰 치마를 둘러 입고 맛난 브런치 집을 찾아나섰다. 아, 포카라에서 쉬폰 치마라니... 지금 생각하면 자다가 공중부양으로 천정까지 올라 하이파이브 치고 올만큼 부끄럽지만 그때 나는 당당했다. 당당해서 더 슬픈 옛날이여!! 심지어 곱슬머리 드라이를 못하는 대신 스카프를 머리에 새싹처럼 묶기까지 했다. 아, 잠깐. 한 번 더 천정과 하이파이브를 해야 할 시간이다. 왜 그랬을까, 왜왜... 정말 돌이켜 생각하면 할수록 부끄럽기 짝이 없고나. 흐어.


그 꼴로 이곳 저곳 둘러보다 들어간 곳은 Bella Nepal! 단돈 150루피면 토스트 빵과 커피(혹은 차), 감자와 야채를 배불리먹을 수 있다. 신기하게 이곳의 감자는 질리게 먹는데도 먹으면 먹을수록 달디 달아서 끝도 없이 입으로 들어간다. 한국에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던 감자인데, 여기서는 꿀맛이다. 그리고 오이도 호박만큼 커서 마사지 하려면 딱 세 조각이면 충분할 사이즈다. 라고 깨알같이 작은 얼굴 자랑을 하는 건 맞... 맞자, 오늘 나 좀 맞자.



든든히 아침을 먹고 돌아오는 길, 동네 구경을 하는데 페와 호숫 근처에서 보트 경주를 했다. 처음에는 보트에 대학 깃발 비슷한 것이 달려있어 학생들인가 했는데 아무리 보고 요리보고 조리봐도 학생은 아니었다. 학생일 수 없다. 학생이면 아니되오. 뭐, 그러거나 말거나 구경이나 하자며 보고 있는데 8척에서 10척 정도의 보트가 동시에 출발했다. 페어플레이 따위 없이 서로의 보트를 잡고 밀치고 있는 힘껏 방해해가며 보트가 마구 나아갔다. 그런데 멀리 멀리 갔다. 보이지도 않을만큼 멀리 가는데 아마 저어기 저 끝에 점처럼 보이는 동네가 전환점인듯 했다. 누가 이길지 궁금하기도 했지만 돌아오기까지는 아주 오래 걸릴 것만 같아서 그냥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몸을 돌려 나오려는 순간, 우리는 보았다. 심사위원 테이블 옆에 묶여 있는 그들을. 얌전히 서서 풀을 뜯는 염소와 닭을 보았다. 있는 힘껏 노를 젓는 사람들에 비해 염소랑 닭의 표정이 너무 세상을 달관한 듯 편안해서 그만 웃음이 터졌다. 이제 정말 내가 있는 곳이 네팔이란 게 실감나기 시작했다.



트래킹 신청을 위해 산촌 다람쥐로 갔다. 여전히 많지도 적지도 않은 여행자들이 자리를 잡고 저마다 책을 읽거나 밥을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들에게서 오랜 여행자들이 지닌 묘한 분위기랄까, 반은 이 세상에 반은 저 바람에 속해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언젠가 이 여행을 마치고 더 많은 여행들을 거치게 되면 나에게서도 저런 느낌이 나게 될까 문득 궁금해졌다. 혼자 요리조리 다른 사람들을 살피는 사이, 엄마 아빠가 내일부터 시작할 트래킹을 신청을 마쳤다. 그리고 트래킹 내내 가이드를 겸할 포터도 부탁했다. 부디 좋은 포터와 만날 수 있기를.


산촌 다람쥐에서 나와 향한 곳은 티베트 난민촌이었다. 티베트 난민들이 피난을 와 마을을 이루었다는데 어떤 곳인지 궁금한데다 딱히 할 일도 없어서 가보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아직 여행 온지 얼마 안되서 기운도 있고,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동네 구경도 하고 싶고,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나는 자전거도 못타고,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레이크 사이드에서 댐사이드까지 멀어봤자 뭐,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걸어가기로 했다. 우리는, 우리는... 왜!!! 걸어가기로 했을까? 멀었다. 너무 멀었다. 몸 상태가 안좋았던 선영이는 벌써 지치고 점차 내가, 엄마가, 아빠가 지쳐가기 시작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누구에게라고 할 것도 없이 짜증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런데 막상 그렇게 걷고 기어 한시간 반이나 걸려 간 티베트 난민촌은 그닥, 볼게 없었다!!! 포장하지 않겠어, 볼 게 없었다고!!! 진짜 볼 건 정작 내 다리에 있었다고!! 부레옥잠같은 알이 터질듯 종아리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고!!



지친 다리로 돌아오는 길, 우리의 마지막 남은 희망이자 기대였던 독일 빵집에 갔다. 비주얼이 아주 좋아보이진 않았지만 비주얼과 맛이 꼭 같으리란 법은 없늬까. 그렇게 유명한 독일 빵집이니 얼마나 맛이 좋겠냐며 우리 모두 들떠있었다. 일단 트래킹에 가져갈 큰 빵 두 덩어리사고, 점심 대신 간단하게 케이크를 먹어보기로 했다. 치즈 케이크 두 개랑 스위스 애플파이 두 개, 그리고 커피. 포크로 치즈 케이크의 부드러운 등을 푹 하고 찔러 크게 들어올렸다. 그리고 입속으로 앙- 먹고나서 앙- 앙? 맛이... 큰 실망, 크디 큰 실망! 왜 유명한지 모르겠는 건 나뿐인가 싶었는데 나를 따라 치즈 케이크를 떠먹은 엄마도 아빠도 선영이도 모두 표정이 어둡다. 케이크를 씹던 빠른 하악골의 움직임이 둔해지며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아니, 독일 빵집이 이래서야 쓰. 오묘한 맛이었다. 시큼 짭조름 달다름하면서 요상한 식감이었다. 치즈케이크 귀신인 내가 반이 넘게 남기다니. 비통했다. 피곤한데다 허기까지 지니 슬픔은 크기만 했다. 차라리 선영이처럼 스위스 애플파이를 먹었더라면 나았을 것을... 그건 먹을만 했는데...



그 길을 또 걷고 걸어 돌아가야 할 수 밖에 없나 슬퍼하다가 페와 호수를 건너가는 보트를 발견했다.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무작정 보트에 올라타고 출발을 외쳤다. 따지지도 않고 흥정도 안하고 무조건 타겠다는 우리를 보고 보트 주인 아저씨가 기쁜 웃음을 지어보이셨다. 그러니까... 처음에는... 그런데 우리가 네 명이다 보니 힘에 부치셨나보다. 중간쯤 다다르자 거친 숨을 내쉬며 옷을 벗으셨는데 땀이 흥건하셨다. 정말 죄송합니다, 우리 넷이라 죄송합니다. 왠지 죄송하고 안쓰런 마음이 들었지만 중간에 내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음... 사실 중간에 내릴 수 있었다 해도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진짜 다리가 너무 굉장히 극도로 아팠다. 보트를 탄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물살을 가르며 파란 하늘도 보고 호수를 뛰어다니는 소금쟁이도 보고 나뭇 가지 위에서 노래하는 파랑새도 보고 둥둥 떠다니는 운동화도 보고 정말 재밌었다. 비가 안와서 다행이었다. 보트도 타봐서 다행이었다. 아저씨한테는 다행이 아니었겠지... 죄송합니다.



반나절 만에 너덜너덜해진 몸으로 숙소에 돌아와 트래킹 용으로 준비해 둔 육포 한봉지를 엄마에게 배식받았다. 선영이와 방 침대에 누워 육포를 질겅거리며 별 것 아닌 얘기로 소녀처럼 깔깔 웃다가 문득, 생각해보니 내일부터 트래킹이구나. 트래킹용 짐을 싸며 마음은 두근두근. 이라고 거짓말치기 없기. 나 트래킹 싫은데... 그래도 일기엔 습관처럼 기쁜 척 하는 이 가식덩어리, 에라이. 아, 며칠동안 죽도록 걸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눈가에서 땀샘이 폭발하는 기분이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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