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첫날밤에.
(2012년 4월 네팔 여행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진짜 포카라 생활이 시작되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잠시 쉬기로 했다. 꼬박 하루만의 휴식이었다. 모두 다 지쳐있었다. 엄마, 아빠는 긴 비행과 이동으로 피곤해했고 선영이는 혼자서 지내다 나와 엄마, 아빠까지 가니 멘붕이 온 상태였다. 사실 네 사람 다 할 말은 해야겠고 하기 싫은 건 안 하겠다는 ㄱㅐㅆㅑㅇ 마이웨이 스타일이라 처음엔 긴장감이 조금 돌기도 했다. 확실히 서울에서 가끔씩 보는 것과는 달랐다. 개성이 강한 네 사람이 24시간 밀착하여 함께 움직인다는 건 제 아무리 가족이라도 게 쉬운 일이 아닐터인데, 하물며 선영이는 오죽 불편했을까. 그래도 지내면서 엄마, 아빠가 선영이를 너무 예뻐하고 선영이도 너무 잘 따라주어 진짜 가족같이 지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정말 기쁘고 참 좋은데, 그 덕분에 내가 개밥의 도토리가 되어 청계천 똥다리 밑에서 불쌍해서 주워온 양자설에 휩싸인 건 부작용이랄까. 뭐든 양면은 있는 거니까.
어쨌든 그렇게 조금 쉬다가 일단 트래킹 용구를 대여하러 가기로 했다. 산촌 다람쥐에서 고라파니에 가면 싸게 얻을 수 있다고 알려줬다. 처음엔 고라니로 들었는데, 알고 보니 안나푸르나 마을 이름 중 하나였다. 고라니와 고라파니 라니... 라임은 좋지만 아무래도 귀를 좀 씻고 와야겠다.
고라파니에는 각종 등산 도구가 가득했다. 새 것도 있지만 대부분 대여해서 사용한 후 다시 반납하는 경우가 많았다. 미리 준비해 왔던 도구들도 트래킹을 마치면 그냥 두고 가는 일도 허다하다 했다. 하긴, 나만 해도 안나푸르나에서 쓴 물건을 서울에서 쓸 일이 많을 것 같지는 않다. 제 때에 맞는 물건을 사용하고 다 쓰면 품에서 놓아 서로 나눌 줄도 알아야 하는 법이다. 음, 이건 그러니까 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다. 뭘 한 번 잡으면 놓으려 하지 않는 욕심이 과한 나에게 이 여행은 벌써부터 뭔가 자꾸 가르침을 주는 것만 같다. 건방진 여행 같으니..;;;
우리가 필요한 건 우선 침낭과 판초, 스틱 등이었는데, 시간이 조금 이른 탓에 아직 좋은 물건이 없었다. 트래킹에서 돌아온 사람들이 저녁 7시는 지나야 물건을 반납하기 때문에, 밤이 돼서야 좋은 물건들이 많이 들어온다고 주인아저씨께서 말씀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일단 밥을 먹고 다시 오기로 했다.
여행 첫날밤의 저녁 메뉴는 선영이가 극찬했던 '에베레스트 스테이크 하우스'의 스테이크였다. 오랜만에 스테이크를 배불리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침샘이 범람하여 입술 언덕을 넘어 흐를 듯 요동쳤다. 아무래도 500g은 너무 많아서 모두 250g 하프 사이즈로 주문했다. 목이 마르셨는지 아빠가 칼스버그 맥주 한 병을 시키셨다. 우리는 치사하게 아빠 꺼 한 병만 시킨다고 눈으로 아빠를 마구 흘긴 뒤 콜라라도 시키려 손을 들었다. 그때였다. 칼스버그가 나온 것은... 그러니까... 병은 병인데 병 사이즈가 내가 아는 그 병 사이즈가 아니오, 그렇다고 큐팩 사이즈도 아닌 것이 거대한 그런 칼스버그가 나왔다. 예상치 못한 사이즈에 놀라 네 명이서 빵- 하고 터진 뒤에, 주문하려 활짝 핀 손을 눌러 꾸욱 주먹을 쥐고 식탁 아래로 내렸다. 저 정도면 우리 넷이 마셔도 충분할 것 같았다. 칼스버그 덕분에 큰 웃음을 지은 후, 드디어 스테이크가 나왔다. 사실 조금 질기긴 했지만 그래도 맛은 꽤나 훌륭했다. 우리의 손놀림이 다급해진 만큼 말수는 급격하게 줄어 있었다. 하지만 어려서 꼬역꼬역 스테이크 욱여넣다가 크게 탈 난 뒤로 스테이크를 많이 먹을 수 없게 되기도 한데다, 사실 살찔까 봐 걱정이 되고 해서 스테이크는 3분의 2나 남겼다. 그런데 남기고 금방 후회가 돼서 다시 좀 더 먹을까 했는데 그때는 이미 엄마 메뚜기, 아빠 메뚜기, 선영 메뚜기가 다녀간 후여서 깨끗하게 빈 접시만 남은 후였다. 슬퍼해도 소용없기에 대신 사이드로 나온 감자를 마시듯이 다 입으로 쏙쏙 넣어 먹었다. 감자가 달디달아서 정말 다행이었다.
배불리 먹고 나오니 거리 이곳저곳에서 상인인듯한 네팔 남자분들이 인사를 하고 난리가 났다. "안녕하세요" "곤니치와" "니하오~" 라며, 마치 뭘 좋아할지 몰라 다 준비했다는 느낌의 인사말에 휩싸여 거리를 걸었다. 호기심이든 상술이든 나의 착각이든, 어쨌든 당분간은 이 관심을 좀 더 즐겨보려 한다. 내가 깨벗고 돌아다녀도 누구 하나 눈 두지 않는 서울 땅에서 그동안 나도 모르게 쌓인 설움이 컸었나 보다.
숙소에 돌아와 씻었다. 물은 이미 저녁이라 찬물밖에 안 나오고 왠지 벌레까지 줄줄이 나올 것 같은 분위기라 두려웠다. 첫날이라 그렇겠지. 앞으로 이런 환경에도 익숙해져야 했다. 이미 도망가긴 글렀으니 잘 지내는 법을 찾아야 한다며 나 스스로를 다독였다. 공포의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선영이는 이미 세상 편한 복장으로 침대에 누워있었다. 그러나 나의 잠옷은... 나의 잠옷은 안타깝게도 그렇지 못했다. 네팔에 있는 내내 나는, 자는 동안 마치 갑옷처럼 나를 꽁꽁 싸매 두었다. 벌레의 접근을 막기 위함이었다. 어느 정도로 철저히 방어했냐면, 기억나는 것만 해도 다리 붓기 방지용 스타킹, 양말, 면 추리닝 바지, 긴팔 티에 고어텍스 잠바는 모자까지 덮어썼다. 이러고 꼭 선영이를 바라보며 잤다. 자면서 스토킹 당하는 것 같다고 선영이는 무서워했다. 응, 맞아. 내 곁에서 떠나지 말아요, 나 무서워.
여하튼 설렘과 혼란과 즐거움과 걱정이 가득했던 네팔에서의 첫 밤이 이렇게 지고 있었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