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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 길

오, 나의 네팔!

넷. 드디어 포카라다.

by hearida

(2012년 4월 네팔 여행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쓴 글이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드디어 포카라다.


포카라는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하려는 여행자들로 늘 붐비는, 네팔에서 가장 번화한 도시 중 하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SNS에서도 배낭 여행자들의 천국, 배낭 여행자에게 친절한 도시로 종종 거론되는 곳이다. 하지만 솔직히 카트만두의 착잡한 풍경을 지나쳐 온 나로서는 포카라에서의 시간을 도무지 기대할 수가 없었다. 수도 카트만두가 그럴 때 포카라는 오죽하겠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뭐든 늦은 것은 없다. 나 역시, 돌아가기 늦은 것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내 옆에서 잔뜩 들떠 있는 부모님과 선영이를 보고 있자니 입도 발도 떼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딱히 착해서는 아니고, 이 먼 타국에서 나에게 생명을 주신 어머니가 생명을 거둬가시는 기적을 경험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조용히 입을 꾸욱 다물고 눈도 꼬옥 감았다. 누가 뭐래도 나는 정비된 도시, 도시가 좋다고!!!


비행기에서 내려 바로 택시 정류장으로 향했다. 택시를 잡을 때는 민첩하고 카리스마 넘게, 자칫 어리버리하면 그 이름도 멋진 호9님이 되기 쉽다. 360도 파노라마로 접근하여 우리를 호9의 길로 유혹하는 수많은 손들을 제치고, 택시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고 계신 쿨하기 그지없는 아저씨와 택시비 교섭에 성공했다. 레이크 사이드까지 200루피. 딱 적정한 금액이었다.


포카라는 크게 페와 호수 근처의 레이크 사이드와 댐 주변 지역인 댐 사이드로 나뉜다. 우리가 갈 곳은 레이크 사이드. 여행자 거리가 조성되어 있는데다 많은 숙소와 식당, 편의시설이 모여있다 보니 도보로 30분 이상 차이나는 댐 사이드보다 더 괜찮을 것 같았다. 열심히 달려 울퉁불퉁 길을 따라 레이크 사이드에 내리니 오밀조밀 가게들이 가지런히 늘어선 깨끗한 거리가 눈에 확 들어왔다. 카트만두와는 확연히 다른 분위기였다. 조금 오래된 시골길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뭐랄까, 밝은 에너지가 넘치는 따뜻한 느낌이 마음에 쏙 들었다.


당장이라도 구경하고 싶었지만, 일단 급한 건 숙소를 정하는 일이었다. 우선 산촌 다람쥐에 가서 정보를 얻기로 했다. 산촌 다람쥐는 포카라를 통해 안나푸르나를 넘는 한국 사람들에게는 인심 좋은 사랑방 같은 곳이다. 골목골목을 걸어 들어가 찾은 산촌 다람쥐. 벽에 있는 알록달록 다람쥐 그림이 귀여웠다. 안으로 들어가니 마치 한국 인사동에 있는 전통 찻집 같은 분위기였는데, 이미 긴 시간 지구를 단단히 걸어온 장기 여행자들이 곳곳에 앉아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고 있었다. 타지에서 한국 음식과 한국 사람들을 만나는 게 그다지 신기할 것 없는 세상이 되었지만, 한국보다 더 한국스런 멋과 정이 흐르는 그러면서도 이국적인 여행자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산촌 다람쥐는 조금 신선하게 다가왔다.


IMG_1943.JPG 산촌 다람쥐 특유의 느긋한 분위기와 그곳에 모여 있던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은, 우리뿐 아니라 여행길에서 지치고 아팠던 여행자들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으리라.


잠시 가게에서 머뭇거리다 염치 불구하고 숙소를 구하려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니, 마침 산촌 다람쥐에 놀러와 계시던 한국 아주머니께서 본인도 싸게 방을 얻었다며 함께 가보자고 하셨다. 쫄랑쫄랑 아주머니 뒤를 쫓아가니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은 새 게스트 하우스가 보였다. 새 건물이니 깔끔하고 넓기도 했지만 방 하나에 에누리 없는 800루피를 끝까지 고집하길래 미련 없이 뒤를 돌아 나왔다. 그 옆집 역시 새로 지어진 터라 상황은 다를 것 없었다. 우리가 알아보고 적정선이라 정했던 가격보다 비싸기도 한데다, 굳이 새 건물을 고집할 이유도 없을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여기가 어딘가! 여행자를 위한 숙소가 차고 넘친다는 포카라 아닌가!! 첫 술에 배부를 수 없다 했다. 아마 발품만 조금 팔면 금방 마음에 드는 숙소를 구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발품의 정도에 따라 내 종아리에 피어나는 부레옥잠의 크기와 만개도가 달라지겠지만 까짓, 이미 버린 종아리니 연골이 닳을 때까지 돌아다녀보리라.


엄마와 아빠는 산촌 다람쥐에서 쉬시라 하고, 나와 선영이가 숙소를 알아보기로 했다. 단신 둘이서 짧은 다리로 총총거리며 여기저기 돌아다니는데, 어디선가 동백기름을 머리에 잔뜩 바른 듯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머리에 앞머리를 포인트로 쉼표처럼 틀어 올린 남자 한 명이 자기 숙소를 소개해 주겠다며 나타났다. 혹시 사기가 아닐까 납치당하는 건 아닐까 걱정하다가, 문득 체구를 보니 저쪽이 우리를 무서워해야 할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을 가득 담아 남자를 따라갔다. 그런데 그곳에는 우리에게 맞는 방이 없었다. 다 설명해서 알았다고 해놓고 와보니 없다니, 아침 드라마 여주인공처럼 농락당한 기분이었다. 미간에 짙은 주름이 지어지려는 찰나, 방 하나에서 앞으로 계속 등장할 이번 여행 오빠 시리즈 중 한 명, '혼자 오빠'가 나왔다. 혼자 오빠는 선영이와 카트만두에서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머문 탓에 몇 번 함께 다녔다고 했다. 그 인연으로 우리도 인사하고 지내긴 했는데, 뭐랄까... 의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아직 젊은 사람이 무슨 큰 인생의 변고가 있었던 건지 말의 행간과 조사 하나에도 의심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 때문인지 혼자 있는 걸 너무 좋아하여 우리가 '혼자 오빠'라 부르기로 했던 것이다. 어쨌든, 혼자 오빠와 인사를 나누고 나오자 숙소를 안내했던 남자가 이번엔 자기 친구의 숙소를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바로 옆 골목에 있는, 그 이름도 New Futureway!! 가보니 입구부터 예쁘게 꽃이 피었있었는데 방을 보니 깔끔한데다 더블 룸도 두 개여서 우리에겐 딱 이었다. 가격은 방 하나당 450루피. 생각할 필요도 없이 숙소를 결정했다. 심지어 와이파이도 터졌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이 와이파이님, 본인 컨디션에 따라 터졌다 안 터졌다를 시도 때도 없이 반복하며 밀당하시는 요망한 분이셨다. 하하-;;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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