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단팥 인생 이야기) - 두리안 스케가와
앞으로 당신은 당신다운 인생을 보낼 것입니다. 분명 언젠가는 이것이 나의 인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만 울어버렸습니다.
누군가의 꾸밈없는 선의나 맑은 눈, 원망 없는 미소를 마주할 때면
늘 이렇게 눈물이 납니다.
세상의 편견 속에서도 세상의 소리를 들으려 했던 도쿠에
자포자기의 상태에서 희망을 발견하며 단단해지는 센타로
이들이 만들어 낸
달콤한 도라야키를 한입 베어물고
저는 오늘 또 그만 울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아무튼 팥을 소중히 여긴다. 손가락의 불편함은 다 잊고 작업 하나하나 정성껏 소화한다. 늘 팥에 얼굴을 가까이 댄 채.
오로지 빚을 갚기 위해
좋아하지도 않는 도라야키를 구우며 하루하루 살아가는 센타로.
그의 앞에 어느 날 몸이 불편한 초로의 도쿠에가 찾아와 일을 구합니다.
그런 그녀가 탐탁치 않은 센타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받아들이게 되고
그때부터 두 사람은 함께 도라야키를 만들기 시작해요.
센타로에게는 번거롭기만 했던 팥을 삶아 고물을 만드는 일이지만
도쿠에는 되려 팥 한알 한알을 소중히 여기며 맛있는 팥을 만들어 냅니다.
비결을 묻는 센타로에게 도쿠에는 대답하죠.
"할 수 있는 걸 하는 것뿐이야."
도쿠에 덕분에 가게는 번성하기 시작합니다.
한산했던 센타로의 가게에 사람들이 모여들고 도라야키를 베어물며 웃음을 머금죠.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보며 센타로와 도쿠에의 마음도 행복이 깃듭니다.
"무슨 운명? 사장님, 운명이라는 단어, 쉽게 입에 담을 게 아니야." "운명이라니, 젊은 사람이 해선 안 되는 말이야."
하지만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사실 도쿠에에게는 병이 있어요.
나병,이라 불리는 한센병이 그것입니다.
"천형병이라고도 했지. 전생에 나쁜 짓을 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어."
한센병은 아주 오랜 시간 불치의 병으로 여겨졌어요.
사실 한센병은 쉽게 감염되지 않는데 말이에요.
대신 그 병을 앓으면 극심한 통증과 후유증이 남습니다.
한센병 환자들은 누구보다 치료와 보호와 사랑이 필요했던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나 사람들의 오해와 무지 속에 한센병은 전염성이 강한 병으로 여겨졌어요.
그리하여 그들은 가족과 떨어져 호적도 바뀐 채 격리되어 살아갑니다.
살아있지만 살아있지 않은 무(無)의 존재인 거죠.
"세상은 원래 그런 거라고...... 남 일처럼 말했지만, 이번 일을 생각하면 세상보다 더 나빴던 건...... 나 자신이었어."
결국 도쿠에는 가게를 관두게 됩니다.
40년도 전에 완치된 한센병이 그 이유였어요.
그리고 그런 도쿠에를 보내며 센타로는 별다를 것 없는 자신을 자책합니다.
도쿠에가 떠난 후 센타로는 방황합니다.
가게는 다시 한산해지고
센타로는 술로 하루하루를 보내게 되죠.
그러나
한센병 요양소에 있는 도쿠에를 찾아 만남을 이어가면서
센타로의 도라야키에 대한 열정이 다시 살아나기 시작합니다.
그런 센타로에게 도쿠에는 말합니다.
팥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세상의 이야기를 들으라고.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존재는 언어를 갖고 있다고 나는 믿습니다. 상점가를 지나는 사람들은 물론 살아 있는 생물이라면, 아니, 햇살이나 바람 같은 존재에도 귀를 기울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이런 말도 해요.
내 잘못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살아도 세상의 싸늘한 시선에 짓밟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일수록 지혜롭게 대처해야 합니다. 그런 내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열네살 어린 나이에 가족과 떨어져 홀로 격리된 삶을 살아야 했던 도쿠에.
아마 누구보다 불행했어야 할지도 모릅니다.
세상이 그녀를 가두었으니, 그녀 역시 세상의 소리에 귀를 막으면 될 일이었어요.
괴로운 일뿐이었다, 물론 이렇게 말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곳에서의 세월을 사는 중에 내게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무엇을 얼마만큼 잃었든, 그 어떤 심한 취급을 당했든, 우리가 인간이라는 사실. 설사 사지를 잃는다 해도 이 병은 죽을병이 아니기에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무리 몸부림을 쳐도 이길 가망이 없는 암흑 속의 이 투쟁 속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사실, 그저 이 하나에 매달려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들으려고 했는지도 모릅니다. 인간은 그런 힘을 지닌 생물입니다.
이것이 그녀의 대답이에요.
살아있는 한, 인간이라는 나의 존재에 대해 자부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
내가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더욱 들어야 한다는 것.
힘든 일이 닥치고 시련을 마주할 때에도
그것이 살아갈 의미를 잃어야 할 이유는 되지 못한다는 것.
세상을 보는 것, 듣는 것만으로도 세상에 태어난 충분한 이유가 된다는 것.
도쿠에는 끊임없이 보고, 들으며, 열심히 최선을 다해 살아냈어요.
그리고 그녀를 만나
센타로는 더이상 흔들리지 않는 법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런 도쿠에에게
오늘 밤,
저 역시 와카나처럼 하얀 블라우스를 전하고 싶습니다.
부디, 우리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볼 수 있기를
들리지 않는 것들을 들을 수 있기를
그리하여
오래도록 행복하기를
어떤 꿈을 지녔든 추구하던 것을 언젠가는 발견하게 될 때가 온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언제 어떤 목소리가 그 계기가 될지 모릅니다. 사람의 일생은 결코 한 가지 색깔이 아닙니다. 색조가 확 바뀔 때가 옵니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