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고라파니에서 새해를!
(2012년 4월 네팔 여행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쓴 글과 사진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추운 산 속 마을의 새벽, 선영이랑 핫초코 한 잔을 시켜 호호 불어 나눠마시니 정말 달고 맛있다. 하지만 또다시 오믈렛을 먹으려니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흑. 거기에 엄마는 삶은 계란, 아빠는 스크램블 에그. 아, 우리는 양계 가족인가. 왠지 산행 끝나면 몸에서 닭털이 솟아날 것만 같은 두려운 예감이 든다.
어제 주인 언니와 얘기하던 계룡산 도사의 기운을 가득 품은 남자는 네덜란드 사람이었다. 그는 대학을 휴학하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는 중인데, 지금은 안나푸르나 트래킹을 마치고 하산하는 길이라 했다. 그런데 ABC(*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 우리가 도전하는 푼힐 전망대는 3,210m이며 ABC는 그 보다 더 높은 4,130m를 오른다)에서 아빠와 형과 함께 등산하던 어린아이가 자는 사이에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는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생각이 복잡해졌다. 아이와 그 가족을 생각하니 마음도 너무 아프고, 또 마냥 성가시게만 생각하던 이 트래킹이 그리 만만하게 볼 게 아니구나 싶어 괜스레 걱정도 들기 시작했다. 부디 조심 또 조심. 다소 고되기야 하겠지만 모두가 건강하고 행복한 트래킹이 될 수 있기를.
마음은 무겁고 배는 가벼운 상태로 오늘의 등산을 시작했다.
어제의 피로에 더하여, 아침이라 몸이 안 풀린 것까지 겹쳤는지 몸살처럼 앓기 시작했다. 어김없이 나타난 돌계단은 과연 끝이 있을까 싶게 이어지는데, 나는 서 있는 것조차 괴로울 만큼 아팠다. 몸이 떨리고 어지럽고 구토가 날 것 같은데다 두통에 손마저 저려오니, 대체 내가 왜 여기 서있나 싶은 마음... 이 원래부터 있었지만, 정말 당장이라도 뛰어 내려가고 싶을 뿐이었다. 도저히 움직일 수 있을법한 컨디션이 아니었는데 그래도 꾸역꾸역 오른 걸 보면 아무래도 산신령이 불쌍해서 옛다, 하고 등을 밀어 주신건가 싶기도 하다. 어쨌든 중간중간 끊임없이 쉬면서 살겠다고 쉼 없이 육포와 초콜릿과 칼로리바 등을 먹으며 버텼다. 선영이가 이런 나를 위해 세 시간이나 홀로 가방을 지고 갔다. 정말 고맙고 미안했다. 어떻게든 빨리 컨디션을 회복해야만 했다. 이제 와서 내려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이왕 온 건데 투덜대기만 하고 아프다며 민폐나 끼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욕을 해도 나중에 해야지. 지금은 몸을 추슬러 내 몫의 짐을 지고 어떻게든 이 길을 올라가야만 했다.
선검이가 걸으면서 오늘은 어제보다 덜 힘들 거라고 했다. 도대체 이 녀석, 누구한테 거짓말을 배웠는지 아주 착한 얼굴을 하고 거짓말을 술술 하고 있다. 물론 어제의 그 계단 지옥보단 덜 힘들었지. 만! 울창한 열대림 같은 숲을 다니며 올랐다 평지였다를 꾸준히 반복했다. 심지어 중간에 비도 잠깐 왔는데, 이것도 하필이면 정말 잠깐 오고 말았다. 이게 왜 문제냐? 비가 온다고 무거운 판초를 입었다가, 더우니까 땀이 폴폴 나는데, 비가 개서 그 무거운 걸 벗어서 다시 접느라 힘이 다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올 거면 팍팍 내리던가, 쯧. 뭐, 그래도 어제 하늘 끝까지 이어진 듯했던 죽음의 돌계단이 최악의 고비였다는 생각은 든다. 하늘은 푸르고 숲은 울창하고 계곡은 맑고 사람들은 행복해 보인다. 그래, 나도 행복해질 것 같다. 이 트래킹이 끝나면 말이다. 어쨌든 지금은 아니야. 노노.
세 시간 정도 지나면서 아팠던 게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내가 나아지니까 이번엔 급격하게 용솟음치는 대장 활동 때문에 선영이의 컨디션이 바닥을 쳤다. 마치 링 위에서 하이파이브한 것처럼 아픈 선수 교체. 젊은 두 처자가 땀 뽈뽈 흘리며 빌빌 댈 때, 우리 부모님은 이 곳에서 나고 자란 분들처럼 가볍게 펄펄 날아다니셨다. 특히 엄마는 정말 행복해 보였다. 하긴, 엄마는 그렇게 바라던 엄마 마음속 위시 리스트에 지금 줄 하나를 그어가는 중이니까. 트래킹은 싫지만 엄마의 꿈이 이루어지는 자리에 함께 있는 건 나에게도 기쁜 일이다. 앞으로 더 많은 엄마의 위시 리스트가 이루어지기를. 그리고 그 자리에 나도 함께 할 수 있기를.
건강을 되찾은 내가 이런 감상에 젖어있을 즈음, 선영이의 안색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리 힘들면 자연 속에서 일을 치르라 권했지만 수줍은 아가씨는 너무 허허 들판이라며 거부했다. 대신 변을 배에 찬 채 무소의 뿔처럼 앞으로 앞으로 걸어갔다. 보은의 의미로 이번엔 내가 배낭을 메었다. 좀 더 지나 결국 화장실을 발견하고 (선검에게) 부끄럼을 무릅쓰며 총알같이 달려간 선영이는, 인생 최대의 변량을 선보이며 변비에서 탈출했다. 그리고 바로 컨디션을 회복했다.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오전의 트래킹. 오늘이 네팔의 새해인지라 오며 가며 마주치는 사람마다 랄리그라스라는 네팔의 꽃을 건네주었다. 빨간 랄리그라스가 온 세상에 만발했다. 사이사이 목련을 닮은 탐스런 하얀 꽃도 가득 피었다. 정말 다행히도 잠깐 비를 맞은 것 외엔, 날씨가 내내 좋았다. 물론, 이것은 다 내 덕분이다. 앞서 말했듯 나는 태양의 여자니까. 하하. 하얀 구름이 그림처럼 떠 있는 하늘은 눈부시게 파랗고, 그 뒤로 설산이 합성처럼 현실감없이 서 있었다. 참, 무당벌레도 진짜 많았다. 살면서 그렇게 날아다니는 무당벌레들을 처음 봤다. 조그마하니 귀엽게 생겼지만 굳이 가까이 오길 원한 건 아니어서(곤충이 무섭습니다) 한 발 떨어져서 바라봤다. 지금 내가 보는 이 모든 풍경이 아무래도 현실감 없는 동화 같기만 하다.
12시 30분쯤 고라파니에 도착했다.
울레리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숙소가 정말 좋았다. 우리가 상상에서 그리던 딱 그 숙소였다. 깨끗하고, 전망도 좋고, 아래층 로비에는 맛있는 음식 냄새가 흐르고, 거대한 난로 주위로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책도 읽고 기타도 치는... 마치 엽서에 그려진 그림 같은 모습이었다. 세상에. 거듭 말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특별히 더 좋았다. 안나푸르나의 절경이 선명하게 펼쳐져서, 손을 뻗으면 솜사탕처럼 손끝에 눈이 묻어날 것만 같았다. 너무너무 좋았다. 이 아름다운 곳한 가운데 내가 있다니! 있는 대로 투덜거려놓고 좋은 건 결국 다 나한테 오는구나. 그동안 심통만 부린 게 새삼 미안했다, 산에게도 모두에게도. 못나게 굴어 죄송합니다!!
우선 시장한 탓에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사실 숙소 올라오는 길에 한 외국인 여자가 프링글스를 정말 맛나게도 먹고 있어서, 선영이와 나는 영혼이라도 팔 듯 프링글스 생각이 간절했다. 밥 먹고 달려가겠다 다짐하면서, 이제는 식사에 빠질 수 없는 핫초코에 냄새가 끝내주는 카레를 시켰다. 그리고, 그리고 이 곳에 신라면이 있었다. 매콤하고 얼큰한 신라면이라니, 오예! 고라파니 산장의 주인아주머니 음식 솜씨는 정말 엄지 손가락이 열 개면 열 개 다 들어드릴 만큼 최고였다. 카레도 입에서 살살 녹고, 신라면도 면이 탱글탱글한 게 국물이 끝내줬다. 그런데 남 먹는 거 훔쳐보는 걸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옆 테이블 사람들이 먹는 화덕 피자에 자꾸 눈이 갔다. 다행히 나뿐 아니라 엄마 아빠도, 선영이도 그랬던지 다음 식사에는 꼭 피자를 시켜먹기로 했다. 아, 지금 이 순간에 이름을 붙인다면 행복밖에 없을 것 같다. 울레리는 이만 기억에서 떠나 줬음 싶다. 아, 프링글스도 미안. 우리는 간사한 인간인지라 배부르니 네가 안 보이는구나. 허허.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일단 내려가서 가볍게 동네 구경을 하기로 했다. 오늘 새해를 맞이하여 고라파니 마을에서는 축제 겸 전통 행사가 열린다고 했다. 마을 곳곳에 알록달록 깃발이 펄럭이고, 전통 옷을 입은 사람들이 춤도 추며 흥겨운 행사가 이어졌다. 말도 통하지 않고 잘 알 수도 없지만 그냥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즐거웠다. 어쩌면 평생 어딘지조차 알 수 없었을지 모를 이 곳에도, 이렇게 사람들은 아름답게 살아있구나. 그 당연한 사실이 감동으로 다가와, 이상하게도 나는 마음이 벅차올랐다. 엄마도 아빠도 선영이도 각자 나름대로 이 축제를 즐기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는 계단에 앉아 한참을 구경하다, 천천히 발길을 돌려 숙소로 올라왔다. 그리고는 선영이랑 침낭에 누워서 수다를 떨었다. 일과 사랑과 네팔과 미래... 육포 하나에 추억이 하나, 초콜릿 한 알에 꿈이 하나... 그렇게 끊임없이 이야기가 펼쳐졌다. 그러다 엄마가 와서 물티슈로 누워서 세수를 했다. 아, 이곳은 천국인가. 허허. 뭐, 설마! 우리가 더러워서 세수를 안 한 게 정말 결코 절대로 아니다. 이곳은 깊은 산 속이라 온도 변화도 급격해서, 함부로 머리를 감거나 세수를 하면 크게 아프기 쉽기 때문에 산행하는 동안은 되도록 씻지 않는다. 그러니까 우리는 어, 음... 건강하기 위해 적당한 세균을 몸에 두기로 큰 결심을 한 것이다. 호호.
그렇게 쉬다 로비로 내려가서 난로에 앉아 쉬었다. 비록 네팔 오기 전 그렇게 바라던 잘생긴 이탈리아 남자들도 없고 섹시한 프랑스 남자도 없지만 더없이 평화로운 풍경이었다. 오기 전에는 책이든 핸드폰이든 잡고 있어야 안심이 됐다. 멍하니 가만있는 시간을 견딜 수 없었는데, 이 곳에 온 후로 지금 이 순간을 오롯이 즐기는 법을 배우고 있다. 책에서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달리다 종종 가만히 멈추어 선다는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뒤쳐진 자신의 영혼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함께 가기 위함이라는데, 그렇다면 나는 지금 아주 오랫동안 멀찍이 떨어져 있던 내 영혼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리라. 아무렇게나 내어둔 내 영혼의 손을 참 오랜만에 잡아보는 것 같아 나에게 미안해졌다. 앞으로는 너무 뒤쳐지는 일이 없도록 자주 쉬어가야겠다.
7시가 되자 저녁 식사를 했다.
점심에 찜해둔 토마토 어니언 치즈 피자랑 신라면이랑 팬케이크 위드 허니랑 핫초코를 먹었다. 허, 이거 참 대박 맛있군. 피자 진짜 짱 맛있다. 짱 한 번으로는 부족하니까, 짱짱짱짱짱을 백번 곱하고 또 백번 곱할 만큼 완전 짱짱 맛있다. 피자뿐인가, 다 맛있다. 심지어 여기 꿀도 맛있다. 에라, 이렇게 된 거 다이어트 따위 개나 줘야겠다. 우린 많이 걸으니까 괜찮...겠지? 까짓 거 간식 먹고 밥 먹고 바로 자도 돼. 그게 트래킹의 매력이야. 아무 근거 없지만 난 그렇게 믿기로 했다고. 그래, 그렇게 먹고 우린 8시에 잤단 말이지.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