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드디어, 오르다!!!
(2012년 4월 네팔 여행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쓴 글과 사진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선검이의 모닝콜로 네 시에 일어났다.
씻는다고 할 것도 없이 물티슈로 대충 쓱-하고 닦은 것뿐이지만 양심적으로 침 자국은 없앴으니 됐지, 뭐. 새벽이라 추울 것에 대비해 든든히 옷을 입고 손에는 헤드랜턴을 든 채 드디어 이번 트래킹의 최종 목적지, 푼힐 전망대로 출발이다.
칠흑 같다는 말이 더없이 잘 어울리는 바깥은 아직 하늘과 땅의 경계가 불분명한 어둡고 어두운 세상이다. 하지만 이미 헤드랜턴을 머리에 맨 수많은 사람들의 행렬이 은하수처럼 끝없이 위로 위로 이어지고 있었다. 우리도 하나의 별이 되어 행렬에 동참했다. 하지만 헤드랜턴을 선검이 쓰고 있어 발밑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미처 몰랐던 사실인데, 밝은 산길을 걸을 때는 나름 호흡을 가다듬으며 갔기 때문에 그럭저럭 오를만했던 것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암흑 속에서는 그나마 페이스 조절마저 실패한 탓에, 고지의 3분의 1도 못가 이미 나는 괴로움의 절정에 다다르고 말았다. 고도 400m를 30분 만에 오르는 코스이다 보니 나뿐 아니라 모두들 죽을힘을 다해 오르는 것 같았다. 엄마 아빠도, 심지어 선영이까지 힘들다고 할 정도니 나는 정말 죽어도 일억천만 번 죽고 남을 일이다. 뭐, 이 정도 되니 발 밑에 똥 걱정 따위는 이미 쓰레기통에 분리수거해서 버린 지 오래다.
아무래도 도저히 푼힐 전망대까지 오를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택도 없지. 고도가 갑자기 높아져서 숨이 가빠진데다, 너무 힘들어 구역질도 나고 울고만 싶어 졌다. 아니, 왜!! 우리 집에서도 보이고 뒷산에서도 볼 수 있는 일출 따위를 보러 이렇게 고되게 올라가야만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는 나의 근원적 물음이 저 아래 단전부터 다시 꿀렁꿀렁 치밀어 올랐다. 진짜 백번도 넘게 쉬고 또 쉬면서 올라갔다. 솔직히 그냥 뒤돌아 내려가버릴까 싶기도 했다. 하지만... 내 뒤로 헤드랜턴 빛을 별처럼 반짝이며 올라오는 수많은 사람들... 국적도 성별도 나이도 생김새도 다른 그 사람들이 주저앉은 나를 보며 힘내라고 한 마디씩 응원의 말을 건네고 있었다. 자신들도 힘든 걸음을 옮기면서 내 어깨를 두드리고, 미소를 건네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양심 없는 나라도, 그런 사람들 앞에서 나몰라라 도망갈 수는 없는 일이다. 엄마 아빠와 선영이도 몇 걸음 앞에서 뒤쳐진 나를 인내심 있게 기다려주고 있었다. 하- 그래, 그래요. 가보자, 가봅시다. 살면서 세포 구석구석에 쟁여놓은 모든 힘을 알뜰 살뜰히 모으고 모아 천신만고 끝에 드디어! 올랐다! 40분 만에! 진짜 겨우겨우 올랐다고!! 울었다. 얼굴로 울었다. 눈물도 나올 힘이 없어서 얼굴로 대신 울었다. 40분 만에 40년은 늙어버린 기분이었다. 진짜 진짜 진심으로 나는, 진짜 힘들었다.
목표로 했던 푼힐 전망대에 올랐지만, 얼마간은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떤 풍경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이제 다 올랐다는, 그리하여 더 올라갈 일 없다는 안도뿐. 학창 시절 오래 달리기 한 번 완주해보지 못했던 내 인생에 첫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이 비루한 몸에게는 제법 충격이었던 듯, 나는 한동안 정신줄을 놓고 말았다. 그 사이 선영이는 신나서 총총-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엄마 아빠는 벅찬 표정으로 감탄을 거듭하고... 아, 나만 빼고 모두 파라다이스를 맛보고 있군요.
조금씩 시간이 지나면서 내 눈에도 안나푸르나와 마차푸차레의 설산이 보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아빠가 정성 들여 타 주신 대한민국의 맥심 모카 믹스가 제 약효를 발휘하면서 드디어 정신이 돌아왔다. 세상에! 그제야 주위를 돌아보니 푸르스름한 새벽빛 사이로 높이 솟아오른 봉우리들과 그들 위를 부드럽게 덮은 하얀 눈, 신비롭게 우리 주위를 맴도는 구름... 그리고 저마다의 방법으로 이 아름다움을 느끼고 있는 사람들까지. 뭐라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뒤늦게 찾아왔다. 맙소사, 내가 온 것이다. 푼힐 전망대 3,210m 라 쓰여 있는 표시판이 우뚝 서 있었다. 키도 작고 마음도 작은 내가 진짜 이 높은 곳까지 오고야 말았구나.
곧 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붉은 해가 검푸른 새벽을 뚫고, 희뿌연 구름을 지나, 하얀 눈 덮인 봉우리를 물들이며 떠오르고 있었다. 아까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일출이란 말은 취소다. 해는 물론 어디서나 뜬다. 우리 집 위로도 뜨고, 뒷산 위로도 뜨지. 그렇지만, 이렇게 뜨는 해를 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몇 날 며칠을 걸어 본 적은 없었으니까. 오늘 본 해는 진짜 나의 것이었다. 그동안 한 번이라도 온전한 나만의 아침을 마주한 적이 있었나, 이 햇빛이 오롯이 나를 비추도록 노력한 적이 있던가. 반성하는 내 머리 위로 축복 같은 햇살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멀리 구겨뒀던 내 영혼을 탁탁 털어 햇살 아래 바짝 말리니 보송보송해진 기분이다. 곁에 엄마를 돌아보니 햇살을 받은 엄마의 눈이 촉촉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엄마를 꼭 안아주었다. 못난 딸이라 미안, 그런 나라도 사랑해줘서 고마워요, 엄마. 이곳까지 나를 이끌어줘서,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한참을 머무르다 겨우 발걸음을 돌려 내려왔다. 올라갈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그저 올라가는 것만 생각했는데, 내려오는 길에는 온통 아름다운 것들 뿐이었다. 아름다운 하늘과 아름다운 산과 아름다운 꽃과 아름다운 나무, 아름다운 길... 올라가는 길에는 미처 알지 못하던 것들이다. 모든 것과 등지고 내려가는 길에야 비로소 이 아름다운 것들과 마주할 수 있다니, 우리는 미련한 걸까 아니면 그나마 다행인 걸까? 앞으로 살아가는 나의 길은 한순간 순간을 그저 스쳐 지나가는 일이 없도록, 조금 천천히 느리더라도 단단히 디디며 나아가고 싶어 졌다.
일찍 일어나 산행을 마친 덕에 식욕이 폭발했다. 토마토 어니언 치즈 피자 두 판과 팬케이크 위드 허니, 핫초코까지 남김없이 맛나게 먹었다. 그런데 아빠는 피자 한판을 깨끗이 비우시고는 별로라고 말씀... 네? 그나저나 우리 아빠는 랄리그라스도 라미그라스, 난리그라스, 타다파니도 파라파니, 선검이는 선김, 신검, 선심, 선썸... 과연 이 여행이 끝나는 날까지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주실 수 있을지, 우리 모두 아빠의 남다른 언어 능력에 감탄과 폭소를 연발하는 중이다.
8시가 되어 다시 출발이다.
이젠 내리막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웬걸, 또 오르막이다. 그래도 오늘은 이 오르막을 대하는 마음이 한결 가볍다. 올라봤자 또 얼마나 오르겠나 싶은 거지. 하하. 나무 한 점 없는 널찍한 능선을 오르는데 마치 수행하러는 가는 길 같다. 멀리 안나푸르나 south랑 마차푸차레가 보인다. 아침에 마주한 절경이 떠올라 다시 마음이 몽글몽글 뭉클해진다.
조금 오르다가 곧 내리막이 이어진다. 근데 이 길, 정글처럼 험난하다. 우리는 다리를 덜덜 떨며 폴대로 앞을 찍고 뒤를 찍으며 난리를 떠는데, 산사내 선검은 샥샥- 잘도 내려간다. 우리 선검이는 이상하게 평평한 길은 놔두고 꼭 험한 길로만 걷는데, 중간중간 예쁜 꽃까지 꺾어 들고 평지처럼 가볍게 간다. 이곳저곳 구경도 잘하는데 그래도 우리를 놓치는 법이 없고, 빙그레 웃긴 하는데 말수는 굉장히 적다. 그리고 앞서 가다가 꼭 맞은편 1m 떨어진 곳에서 발 하나를 바위 위에 척 올려놓고는 우릴 바라보는데, 걱정스러운 눈으로 보다가 아빠가 "노 프라블럼" 하고 외쳐주면 환하게 웃으며 굉장히 좋아한다. 이 청년, 유머 코드가 독특해. 그래도 우리는 모두 선검이가 좋다. 우리의 트래킹은 좋은 포터 선검이 덕에 백만 배 더 즐거워지는 것만 같다.
잠시 쉬면서 점심으로 신라면을 먹고, 휴- 또 핫초코를 마셨다. 현재 혈중 초코 농도 100%. 호호.
다시 내려가고 올라가고 내려가고를 반복하다 오늘의 목적지인 타다파니에 닿았다. 아침에 고라파니 마을 아주머니께 타다파니까지 얼마나 걸리냐고 여쭤봤을 때 30분 걸린다고 하셨는데, 선검이한테 말했더니 힘들 거라고 했었다. 응, 힘드네. 불가능했어. 사실 우리는 트래킹이랍시고 온갖 등산복에 트래킹화에 폴대에 모자에 선글라스까지 풀 착장하고 심지어 짐은 포터한테 맡긴 채로 걷기밖에 안 하면서 헉헉대는데, 그 길 옆으로 아무렇지 않게 쪼리를 신고 통학하는 학생들이며 마을을 오가는 동네분들과 마주할 때마다 민망하기 그지없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일상이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도전이라니, 너무 앓는 소리를 내면 안 되겠다 싶으면서도 가장 앓는 소리를 냈던 게 나라는 걸 생각하면 어후- 나 좀 맞아야겠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우박이 내렸다. 조금만 늦었어도 후드려 맞을 뻔했지만 역시 나는 태양의 여자이므로, 짜잔-. 허허. 오늘 숙소는 양철로 되어 있어서 누워 있으면 바람에 흔들리는 양철 소리랑 옆 방의 말소리 때문에 마치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다. 방에 있으니 추워서 선영이랑 난로를 찾아 내려갔는데 우리 숙소에는 아무도 없고 난로도 안 켜져 있었다. 우리는 다른 롯지를 찾아 나섰다. 조금 걷자 카페를 겸하고 있는 롯지 하나가 나타났다. 커다랗고 따뜻한 난로 주위로 책을 읽거나 식사를 하거나 함께 카드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우리는 난로 한쪽에 자리를 잡고 핫초코랑 진저 티를 시켰다. 큰 잔 가득 따뜻한 음료가 나왔다. 심지어 선영이의 진저 티는 아무리 마셔도 수저로 저으면 새로운 생강 조각들이 새록새록 올라왔다. 요술 차인가요. 헤헤.
아빠가 찾으러 오셔서 숙소로 돌아갔다. 저녁 식사로 아빠가 그토록 바라시던 백숙은 못 먹었지만 대신 치킨 카레와 신라면을 배불리 먹었다. 집에 있을 땐 라면은 질색하던 엄마였는데, 여기서는 국물까지 냠냠 맛나게 드신다. 저녁 식사 후 이야기 꽃을 피우다 올라와 일기를 쓰려는데 빛을 보면 격렬히 날개춤을 추어대는 나방 덕분에 불을 꺼야만 했다. 더구나 이 양철 롯지는 옆방 하고 침대가 붙어 있고 위로는 구멍이 뚫려 있어서 불편, 하기는 커녕! 눕자마자 모두 곯아떨어지고 말았다는 이야기.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