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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제 길

오, 나의 네팔!

열셋. 오, 나의 패러 글라이딩!

by hearida

(2012년 4월 네팔 여행 당시 쓴 일기를 바탕으로 쓴 글과 사진이오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패러 글라이딩 하러 갑니다!


느긋한 아침 시간을 보내고, 드디어 11시다. 패러 글라이딩 업체에서 픽업 차량을 보내주었다. 그 차를 타고 일단 사무실로 가서 간단한 서류 작업을 마쳤다. 그리고 얼마의 시간이 흘러... 아자, 출발이다!!



패러 글라이딩을 할 포인트는 사랑곳이다. 이곳에 와서 하루하루 지날수록 네팔을 지나쳐 간 여행자들의 체력에 의문이 새록새록 올라온다. 아니, 도대체 사랑곳까지 걸어갈만하다고 한 사람은 누구냐고! 차를 타고 가도 가도 끝이 없구만 뭘 걸어가도 된단 말인가. 그래, 걸어가면 패러 글라이딩을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지. 다리가 풀려서 걸어 내려올 수가 없을 테니. 잠시나마 사랑곳까지 걸어갈까 생각했던 내가 바보다, 바보야. 사랑곳은 정말 높고 먼 곳이란 말이지(이건 순전히 제 기준이긴 합니다만;;).


엄마는 여전히 컨디션이 안 좋지만 여기까지 온 이상 죽어도 해보겠다 하신다. 그래도 엄마가 아프시다 하니 futureway 게스트 하우스 주인집 할아버지 할머니께서 따로 부탁드린 것도 아닌데 약도 주시고 죽도 손수 끓여다 주셨다. 산촌 다람쥐에서도 약을 주시면서 전해질 물을 마시면 좀 나아질 거라고 알려 주셨다. 모두 어쩜 이렇게 감사할 수가 있는지, 감사하다는 말만으로는 표현할 길이 없어 부끄럽기만 하다. 이곳에 와서 과거의 유물이 되어 버린 줄로만 알았던 정(情)이라는 것이 아직 살아있음을 뼈저리게 느낀다. 나도 다른 이들에게 따스함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돌이켜보면 난 늘 행동보다는 말이 앞서는 사람이었다. 아직 한없이 모자라기만 한 나. 부디 높기보다는 깊고 넓은 사람, 인간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다짐해본다.


사랑곳에 도착하자 각자 한 명씩 파트너가 주어졌다. 선영이는 착하게 생긴 세바스찬이라는 총각, 엄마는 통통이 총각, 아빠는 뽀글 머리 귀요미 총각 그리고 나는 러시아 용병 같은 외모의 총각이었다. 우리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어 몹시 들뜬 목소리로 계속 떠들었다. 뭐, 사실 사랑곳을 오를 때만 해도 난 별 걱정이 없었다. 고소공포증도 없고 무서운 놀이기구도 워낙 잘 타는 편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선영이는 잔뜩 겁을 먹고 있었다. 그래서 내가 계속 선영이 등을 토닥이며 재밌을 거라 안심시켰다. 마침내 장비를 모두 차려 입고 절벽을 바라보며 우뚝 섰다. 아빠가 날고, 엄마가 날고, 선영이까지. 이제 내 차례다. 신난다, 하하!!!



하나 둘, 하나 둘 하고 절벽을 향해 힘차게 걸으니 어느새 몸이 붕- 떠오른다. 아름다운 포카라의 풍경이 내 발 밑에 그림처럼 펼쳐진다. 나와 지구를 이어주던 중력이라는 사슬이 풀어진 듯 나는 자유롭다. 하늘은 이제 나와 눈높이를 맞추고 모든 것은 점처럼 작아져 멀어진다. 와- 와 아아 아ㅇㅏㅇㅏ... 우읍! 처음에는 정말 미칠 듯 좋았는데 곧바로 정말 미칠 듯 거대한 멀미가 파도처럼 철썩, 하고 밀려온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파트너는 내 다리를 쭉 벌려 쩍벌녀로 만들고 만다. 금방이라도 아침에 먹은 각종 음식물들이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식도를 거슬러 오를 것만 같다. 나는 내 발밑을 지나는 수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나의 토사물을 비처럼 맞게 하지 않기 위해 그저 명상하듯 가만히 있었다. 30분이 너무 길었다.



옆에서 불현듯 선영이가 나타난다. 그렇게 겁을 내더니 신나게 "언니~"를 외치며 빙글빙글 돌며 급 하강하다 다시 급상승하고 온갖 묘기를 부린다. 내 파트너가 너도 하겠냐고 묻는다. 정색을 할 기운도 없어서 그저 "노 땡큐. 아임 쏘 해피. 베리 굿."이라 들릴 듯 말듯 속삭인다. 카메라 셔터를 몇 번 눌러본다. 아, 난 여기 와서 왜 이런 시트콤 같은 상황만 계속되는지... 비루한 몸뚱이가 맞는구먼, 맞아. 흑흑.

시간이 느리게 흐르고 흘러 겨우 30분을 채우고 내려온다. 땅에 다리가 닿자마자 화장실로 달려간다. 그래, 내 몸의 연어들아. 거슬러 올라라, 올라! 으어어. 그렇게 아침에 내가 얼마나 포식을 했는지 새삼 확인한 후, 찬물로 세수를 하고 나온다. 그런데 내 눈에 들어온 선영이가 팔에 무언가를 들고 있다. 한 발씩 가까이 갈수록 정체를 드러내는 그것은 바로, 독수리! 도대체 이 아가씨의 정체는 뭐지? 아직 나는 선영이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허허.



엄마의 상태가 갈수록 더 안 좋아져서 우리는 카트만두로의 이동을 늦추고 포카라에서 하루 더 머물기로 한다. 선영이랑 스위스 버스에 가서 예약 날짜를 변경하고, 리비 아저씨께 전화를 드려 상황을 말씀드렸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 허기가 져서 믹스드 프룻 무슬리 커드를 시켜 먹었다. 단돈 150루피에 쟁반만 한 그릇 가득 망고랑 파인애플, 파파야랑 바나나가 쌓인다. 그리고 그 위를 덮은 무슬리랑 요구르트까지, 정말 먹다가 배 터져 죽을 뻔했다. 그런데 숙소에 가니 아빠가 밥 먹으러 가자셔서 다시 소비따네로 갔다. 아빠는 제육덮밥을 드시고 우리는 감자전 하나를 시켜서 나눠먹었다. 뱃살에도 양심이 있다면 내 배는 사이코패스급이다. 부른 배를 퉁퉁 두드리며 각자 침대에 눕는다. 열어둔 문 사이로 시원하게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책을 읽는다. 뭐라 형언할 수 없는 행복이다. 엄마 건강만 회복되면, 정말 더 바랄게 없을 텐데...



저녁 6시가 되자 정전. 익숙한 일이다. 불도 안 들어오니 슬슬 산책이나 하자며 밖으로 나선다. 가게마다 가득 진열되어 있는 옷들을 구경하다 길거리 작은 포장마차에서 파는 꼬치를 먹기로 한다. 그런데 선영이도 나도 단신인지라 계단 위에 세워진 포장마차 안이 보이지 않아서 있는 힘껏 까치발을 했다. 그러자 주변 계단에 앉아있던 외국인들이 귀여운 애들 보듯 우리를 보며 웃는다. 꼭 어린 조카를 보는 자애로운 표정이라 어찌할 수도 없는데, 그래서 더 울컥한다. 그렇게 웃지마라고- 내가 니 이모 뻘이라고- 꺼이꺼이.



서러운 마음을 풀기 위해 소비따네로 향한다. 스쿠티와 닭볶음탕을 안주로 네팔의 막걸리인 창을 시킨다. 사실 창을 마시고 싶어 핑계를 찾았는지도.. 하하. 그렇게 한창 선영이와 수다를 떨며 먹고 있는데 먹고 있는데, 옆 자리에 있던 청년들이 말을 걸어왔다. 독일, 영국, 프랑스 국적의 청년들은 이곳에 와서 알게 되었는데, 마음이 맞아 함께 다니게 되었다고 한다. 여기에서는 이렇게 여행자라는 이름 하나로 닫혔던 마음의 빗장이 쉬이 열린다. 덕분에 우리도 좋은 친구들을 얻었다. 그리고 이렇게 아름다운 또 하나의 밤이 지나간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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