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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Sep 30. 2016

결혼_Ⅰ: 결국 혼자인 것

이라고 생각했던 날들

저는 형제가 없는 외딸이에요.

집안에서는 첫 손주이자 첫 조카이고요.

제가 태어나고 여섯 살이 되어서야 겨우 첫 사촌 동생이 생겼어요.


어려서는 대가족이었어요.

외가에서 자랐는데요.

옛날 김수현 작가님 드라마처럼, 한 건물에서 살았어요.

1층은 저희 집, 2층은 외할아버지 할머니, 3층은 큰외삼촌 외숙모에 두 사촌 동생, 4층은 아직 미혼이었던 작은 외삼촌까지.

지금은 직장 등등을 이유로 흩어졌지만, 저 스무 살 되도록 함께 살았어요.


어린 제 기억에는 마냥 좋았었는데요.

이제 생각하면 어른들께는 아마 마냥 좋은 환경은 아니지 않았을까(?!) 싶어요.

뭐, 대놓고 그런 표현을 하신 적은 없지만요.

아무래도 가족이 많아서 좋은 것만큼, 서로 배려하고 양보해야 할 일도 많으셨을 거예요.

그래서 그런지 가족들 다 저에게 똑같은 말씀을 하셨어요.


"결혼 일찍 할 필요 없다."
"결혼 안 해도 된다."
"너하고 싶은 대로 자유롭게 살아라."


다른 집 보면 그래도 나이 들어서는 어른들 말씀이 그래도 해야 하지 않니, 로 바뀌신다는데요.

저희 집은 한결같았어요.


"결혼을 굳이 의무로 생각하지 말아라."


정말 이 나이 먹도록 결혼 재촉 같은 걸 받은 적이 없어요.

오죽하면 제가, 가족들이 너무 무관심하다고 툴툴대기까지 했다니까요.

흔하디 흔하다는 선도 한 번 못 봤습니다.

그래서 저는 나이가 찼으니까 결혼을 서둘러야겠다, 이런 조급함은 없이 살았던 것 같아요.

오히려 덕분에 결혼이 뭘까, 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게 됐던 것 같아요.


나이가 들면서 굳이 가족이 아니더라도 결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듣게 되잖아요.

좋은 경우도 있지만 안타까운 결과도 보게 되니까요.

시간이 지날수록 나라면 어떨까,에 대해서 고민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한 가지 결론을 내렸던 게 있어요.


결혼,
결국 혼자인 것.


좀 씁쓸하죠?


아무래도 과거의 힘들었던 연애들이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아무리 마음을 주어도 외롭고, 아무리 열심히 사랑해도 아팠거든요.

그럴 땐 주변의 어떤 위로도 마음에 닿지 않잖아요.

그러니 결국 나를 보듬고 위로하는 건 나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결혼도 연애랑 다를 바 없다.

사랑이란 불타는 감정도 언젠가 사그라들고, 상대방이 식상해질 때가 올 텐데......

그러면 결국 인간은 혼자라는 것만 확인하는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했었어요.


또 결혼을 한다, 하면 그 뒤로 워낙 많잖아요.

결혼은 가족끼리 만나는 거고, 현실인 거고, 집도 있어야 하고, 혼수며, 스드메......

그런 걸 제가 도저히 제대로 해낼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어요.


이렇다 보니 결혼을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되더라고요.

독신주의는 아니었지만 결혼을 한 제 모습이 상상되지 않았어요.


처음 유유를 만났을 때는 당연히 결혼 생각이 없었어요.

그래서 저는 정말 고민하지 않았어요.

스물여섯인 유유와 서른두 살인 저의 연애요.

그냥 유유가 좋으니까, 그럼 만나야지 했거든요.


그런데 유유는 저한테 묻더라고요.

자기는 당분간 결혼 생각이 없는데 괜찮겠냐고요.


뭐 그런 걸 고민해? 나도 결혼 생각 없어. 우리 집도 결혼 얘기 안 해.


저는 정말 심플하게 이랬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제가 아무리 저렇게 대답했어도 유유는 한편으로 부담이 좀 되지 않았을까 싶어요.

그리고 뭐, 결국 제가 거짓말을 한 게 됐잖아요.

3년 후에 엄청나게 프러포즈를 해댔으니까요.


결혼은 결국 혼자인 것, 이라고 생각했던 제가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지 참 신기해요.

뒤돌아보면 그 마음은 아주 자연스럽게 피어난 것 같아요.


그래서,

내일은 결혼에 대한 글을 이어서 써보려고 해요.

결혼을 어떻게 결심하게 되었는지.

또 지금의 제가 생각하는 결혼은 어떤 건지.


하고 싶은 얘기는 탱탱볼처럼 여기저기 튀어 다니며 머릿속을 잔뜩 흐트러놓는대요.

글로 쓰다 보면 조금은 정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참, 오늘은 백화점 세일이라 예쁜 세라믹 냄비를 하나 샀어요.

국이나 찌개, 조림, 떡볶이 등등 다용도로 쓸 수 있어요.

부모님이랑 함께 냄비를 사서 집에 오는데 조금 실감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유유는 농담반 해서 뭐하러 샀냐고 하대요.


맞아요.

저......

할 줄 아는 요리가 하나도 없어요.


그러니까 이 냄비는......

사랑하는

유유에게 바칩니다. 크하하하하하!



2013년 유유를 알기 전의 헤아
2013년 헤아를 알기 전의 유유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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