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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Sep 30. 2016

결혼_Ⅱ: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소소한 일상을 나누고 싶어졌을 때

좋아하는 책 중에 '결혼하고 연애 시작'이라는 책이 있는데요.

거기에 이런 구절이 나와요.


"결혼은 현실이 아니라 사랑을 실현하는 거예요!"


정말 마음에 와 닿는 말이었어요.


결혼은 사랑을 실현하는 것.

그리하여,

결혼 후에 새로운 연애를 시작하는 것.


이십 대 때는 결혼에 대한 환상이 있었어요.

왜, 그림 같은 집에 로맨틱한 멋진 남편이랑 귀여운 아이 낳고 알콩달콩 사는 거요.

정말 드라마나 책에서 배운 결혼이죠.

그러니까 그만큼 아무 생각 없었던 것 같아요.

결혼에 대해 관심도 없었고 참 무지했어요.


사실 연애를 좀 늦게 시작한 편이에요.

스물일곱에 첫 남자 친구를 사귀었거든요. (헙!)

그러니 연애에 대한 환상이 어마어마하지 않았겠어요?


연애는 1도 모르는 스물일곱 여자랑 연애를 엄청 많이 했던 스물일곱 남자.

결과는 아주 처참했죠.


그때는 괜찮다고 털어버린 줄 알았는데요.

이제 생각하면 상처가 꽤 컸나 봐요.

첫 연애 이후에 고정된 남자 친구에 대한 생각이 오래도록 이어졌거든요.

아주 나쁜 이미지요.


어차피 잘 안될 거라는 생각을 늘 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더 성격도 취향도 아무것도 안 보고 조금만 괜찮다 싶으면 만난 것 같아요.

여기서 좋다는 건 외형적인 거였고요.


결코 상처받지 않겠다 다짐했어요.

그때 제가 뭐라고 했냐면요.

사랑은 가족이 해주고, 돈은 제가 일해서 벌면 되는 거고, 노는 건 친구들이 더 재밌으니까.

연애는 그 나머지, 얼마 안 되는 부분만 채우면 된다고요.


바라거나 의지하면 헤어진 후에 너무 고통스럽잖아요.

그러니까 남자 친구한테는 아무것도 바라지 말아야지, 했어요.

바란다는 게 물질적인 것만이 아니니까요.

나를 걱정해주거나 배려해주거나, 심지어 사랑해주는 것까지.

아무것도 원하지 않았어요.


그저 같이 다니면 오-, 멋있다- 할만한 사람.

외로워 보이지 않도록요.

말 그대로 SNS에 '연애 중'을 띄워놓을 수 있으면 되는 거였죠.


말은 이렇게 하지만요.

사실 만나다 보면 사람 마음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잖아요.

더 좋아하게 되기도 하고, 어쩔 수 없이 떠올리고 기대하기도 하고요.

그래서 저렇게나 많은 안전장치를 두고도, 끝에서는 항상 마음을 다쳤어요.

심하게 앓았죠.


그런데 상대방을 탓할 수만은 없어요.

이제와 생각하면 제 잘못도 엄청났죠.

그땐 참, 지금보다도 더 많이 모자라고 부족하고 현명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의도치 않게 연애 얘기가 길어졌는데요.

그렇게 환상과 전쟁터를 오락가락하다 서른둘이 됐어요.

그때가 2013년이었거든요.

어느 순간부턴가 원치 않아도 자꾸 제 앞에 '현실'이라는 상자가 놓이더라고요.

열어보고 싶지 않아도 투명한 상자에 담겨 있어서 속이 다 보이는 거예요.


결혼과 끈으로 엮인 것들.

예를 들면,

혼수, 스드메, 결혼 평균 비용 2억 7천, 시집살이, 처가살이, 경제력······

결혼을 하려면 격이 맞아야 한다는 둥,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라는 둥.

요즘 세상에 저런 게 어딨어?라고 말했던 그 진부한 언어들이 모두 현재진행형이더라고요.


당시에, 여행을 좋아하게 되고 얼마 안 되었을 때였는데요.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나는 그냥 떠돌이로 살아야겠다.


세상에서 말하는 그게 결혼이라면 하고 싶지도 않지만요.

설령 하고 싶다고 해도 나를 포용해줄 사람은 없겠다 싶었어요.

그리고 그해 겨울에 유유를 만난 거죠.


유유랑은 서로 결혼에 대한 전제를 조금도 안 하고 만남을 시작했어요.

나이 차이도 있으니까 더 생각 안 했던 것 같아요.

그냥 서로 좋은 마음밖에 없었죠.

실례가 될까 봐 학교니 직업이니 회사니 묻지도 않았어요.

사귀고 나서 한 달이 지나도록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몰랐다니까요.

이런 대화만 나눴죠.


헤아야. 나는, 지방에 있는 공장 다녀.
······ 아, 그래? 유유야, 난 프리랜서라는 백수야.


서로 이게 전부였어요.


그러다 남자 친구가 뭐 하는 사람인지 알고는 있어야 할 것 같더라고요.

한 달쯤 지나서 무슨 공장이냐고 물었어요.

알고 보니, 큰 공장이더라고요.


유유 말이, 아직 자기 친구들 중에는 취업 못한 친구들도 제법 있어서 회사 얘기는 잘 안 한대요.

그리고 얘기하면 연봉이 얼마니, 복지가 어떻니 하면서 뒤에 질문이 줄줄이 이어지니까요.

간단하게 사실만 말하려고 한대요.

그래서 그렇구나, 했죠. 뭐.


이 얘기를 굳이 하는 이유는요.

유유가 그렇게 겉치레나 포장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이야기를 드리려고요.


처음에는 나를 좋아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좀 덤덤했어요.

만난 지 50일쯤 지나서 장난 삼아 프로필에 제 사진을 올리면 어떻냐고 했을 때도요.

너무 이르니까 좀 더 시간이 흐른 후에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때는 너무 서운해서 눈물까지 펑펑 났어요.


그런데 이 사람이, 참 한결같아요.

이벤트도 못하고, 생일 선물 같은 것도 로맨틱하기보다는 리얼리틱에 가까운데요.

대신 제가 언뜻 흘린 말 하나도 기억해주는 거예요.


그리고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이는가는 크게 신경 안 써요.

그 보다는 제 마음, 제 몸이 편한 걸 더 중요하게 생각해줍니다.

그래서 유유를 만나고 저는,

화장대가 가벼워진 대신 책장이 풍성해졌어요.

힐에서 내려온 대신 산책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무엇보다 제 꿈을 지지해 준 사람이에요.

제가 현실적으로 안정된 직장을 구해야 하지 않을까? 하고 말할 때마다,

그냥 원하는 일을 하라, 고 늘 등을 밀어줬어요.


연애 초기에 제가 쓴 글을 보고 싶다고 하길래 부끄럽지만 보여줬거든요.

나중에 보니까 글의 문구를 외우더라고요.


그리고 그 마음이, 그 모습이, 그 말이 한 번도 변하지 않았어요.

3년이 지나는 동안.


그래서 함께 있고 싶어 졌어요.


하루 종일 머리 안 감고 떡진 채로 누워서 배를 긁는 모습도 보고 싶고요.

같이 늦은 밤에 통닭 시켜서 먹고 서로 치우라고 미루기도 하고요.

또 어떤 날은 싸워서 토라져 누워 있을 때 엉덩이를 빵- 차주 기도 하고요. ㅎㅎ


그렇게 달콤하거나 예쁘지만은 않은 일상까지 함께 하고 싶어 졌어요.

물론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을 테고, 서로 실망도 하겠지만요.

그래도 그런 모습까지 같이 겪어내고 싶어 졌어요.


그리고 그렇게 지내는 것이 결혼이라면,

결혼을 하자!

그렇게 생각하게 된 거예요.


함께 소소한 일상을 살아가는 것.


이게 바로 저희의 결혼입니다.


그러려면 함께 있을 공간이 필요하고요.

공간이 있으니 세간살이도 필요할 테죠.

가족과 가까운 분들께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리는 날이 하루 있었으면 좋겠고요.

여행을 많이 다니지 못한 유유에게 제가 봤던 멋진 풍경을 공유하는 여행도 며칠쯤 다녀왔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넓고 화려한 집은 필요 없을 것 같아요.

같이 있으면 되거든요.

세트로 맞춘 가구도 필요 없어요.

살면서 필요한 걸 하나씩 사모으는 재미가 있겠죠.

반지도 괜찮아요.

유유라는 큰 보석이 제 옆에 있으니까요.

이렇게 큰 보석을 낀 여자는 세상에 저밖에 없을 걸요?


그냥, 좋아서 연애한 것처럼요.

함께 있고 싶어서 결혼하고 싶어 졌어요.

그리고 그 결혼은요,

함께 하기 위한 최소한의 의식과 최소한의 절차, 거기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할 예정(혹은 목표, 또는 꿈?!!!)입니다.


쓰면 정리가 될 줄 알았는데 여전히 두서없네요.

앞으로 유유와의 지난 이야기를 쓰면서, 또 결혼을 준비하면서 좀 더 잘 제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되길 바라봅니다.


결혼.

결국은 혼자인 것.

인 줄 알았는데


결국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혼자가 아닌 우리를 위해, 한 밤 지나면 조금 더 현명한 제가 되기를.

응원해주세요, 아자잣!!



예고: 병아리 유유를 매처럼 낚아챈 헤아의 '연애의 시작', coming soon!




2016.07.09. 대학로에서 '고목나무에 매미' 실사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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