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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07. 2016

작은 결혼식을 하고 싶은데요

스몰이라 쓰고 라지라 읽습니다

이상하게도 저는요.

아주 어렸을 적부터 사람들이 올리는 결혼식에 마음이 가지 않았어요.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은 꼬맹이였을 때도요.

결혼식에 가서 누가 신랑인지 누가 신부 인지도 모르고 오는 게 이상하다 생각했어요.


왜, 동화를 봐도 만화를 봐도 그렇잖아요.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가 주인공!


신부가 드레스 입고 짠- 하고 등장하면요.

사람들이 와- 하며 박수치고요.

그럼 신랑이 환하게 웃으며 신부 손을 잡죠.

그리고 춤도 추고 뽀뽀도 하고, 꺄아-!!

그런 두 사람을 둘러싸고 사람들이 다 함께 축복해주잖아요.


근데 우리나라 결혼식은 뭐랄까.

신랑 신부는 정작 뒤로 밀리는 느낌이 있었어요.

뭐, 아무래도 우리나라가 개인보다는 가족 중심이기도 하고요.

나고 자라서 다 크고 어른이 돼도 어른들의 영향을 크게 받잖아요.

그러니까 본인들뿐만 아니라 가족들과 친분이 있으신 분들도 다 오시는 거죠.


그게 어떻게 생각하면, 참 감사할 일이긴 해요.

내 자식도 아닌데,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인데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걸음해 주시는 거니까요.

하지만 솔직히 결혼식 치러지는 걸 보면 좀 속상하더라고요.

결혼식인데 신랑 신부는 안중에도 없고요.

뒤에서 식권 찾고, 막 떠들고, 먼저 밥 먹고 떠나고 그런 게 너무 슬펐어요.

예식이 빽빽이 정해져 있어서, 시간에 쫓겨 정신없이 입장하고 퇴장하고 사진 찍고 그것도 싫고요.


나이가 들수록 이런 생각이 더 강해지더라고요.

내가 결혼을 할까?

이런 의문은 항상 있었지만......

한다면 결혼식의 중심은 꼭 내가 되어야겠다, 결심했죠.

다행히 부모님을 비롯한 가족들도 예전부터 제 생각에 흔쾌히 동의해주셨어요.

뭐, 제가 결혼 안(못?!) 할 거라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고요.




벌써 10년도 더 된 영화가 있는데요.

'웨딩 데이트'요.

여동생의 결혼식에 예전 남친도 온다는 걸 안 언니가 가짜 남친을 데리고 가는데.....

뭐, 대충 이런 내용이거든요.



근데 여기서 제가 굉장히 좋았던 게요.

양가 가족과 친한 친구들이 결혼 일주일 전부터 모여요.

그래서 결혼하는 날까지 함께 얘기도 하고 게임도 하고 그러면서 서로 알아가죠.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다 모두의 축복 속에 결혼을 하는 거예요.


사실 결혼을 한다 해도 서로를 잘 알 뿐이지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는 모르잖아요.

결혼하면 제가 시가의 식구들을, 남편이 친가의 식구들을 알게 되겠지만요.

저희가 사랑하는 두 가족들은 서로를 잘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고요.

두 사람의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해준 친구들에 대해서도 잘 알 기회가 별로 없죠.


그래서 영화에서 이런 모습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서로 알지 못하던 때에 두 사람은 어땠는지도 알아가고요.

에쿠니 가오리의 말처럼, 서로가 쌓아온 배경들을 알게 되니까요.

두 사람의 만남으로 인해 커어다란 공동체가 생기는 거죠.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근데 나이가 들면서 이런 말을 하면요.

헛꿈이다, 현실을 모른다, 큰일 날 소리하네......

이런 말을 많이 듣게 되더라고요.


뭐, 그 영화에서 보면 일단 다 같이 모일 수 있는 성 같은 집(별장?)이 있어요.

주변엔 푸르른 대지가 끝없이 펼쳐지죠.

들러리들은 초록색 드레스를 입고요.


저희 집이 성도 아니고, 대지는커녕 주변에 잔디밭도 없잖아요.

그렇다고 보성 녹차밭에서 초록 한복을 입고 막 어기여차 디여차~;;;;;;


그보다 서로 안 좋은 모습들이 많이 보일 수 있다고 하대요.

자칫하면 결혼 전에 싸움날 수도 있다고 하기도 하고요.

하도 많이서 구박을 듣다 보니 영 일리 없는 말도 아니고......

그래서 기가 좀 꺾였어요.


그런데요.

일주일 전부터 합숙 훈련까지는 아니더라도요.

결혼은 진짜 저희를 축하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거든요.

그들과 함께 행복과 감사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시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은 여전했거든요.

제게는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영역이에요.


근데 이제 제가 정말 결혼을 하잖아요.

크으- 35년 동안 꿈꿔왔던 꿈의 결혼식을 짜자잔- 할 차례죠.


유유도 제 의견에 동의해 주고요.

어머님, 아버님께는 유유가 일단 말씀드렸는데, 다행히 크게 반대하지는 않으세요.

다음 주에 찾아뵐 때 더 잘 말씀드리려고요.


음, 애교 작전 어때?

하고 유유에게 물어봤는데 더 역효과가 날 거라고......

그래서 제가

역효과가 나기 전에 일단 유유가 오늘 사단이 날 거라고......


뭐, 제 이런 의지도 있지만요.

현실적으로도 양가 도움을 안 받는 덕분에!!!

라기보다 저희가 하루살이처럼 살면서 저금을 안 한 덕분에!!!

결혼에 돈을 크게 쓸 수가 없습니다.

어이구, 잘한다! 오예!!!!


그래서 이제 제가 조금씩 결혼식을 준비하지 않았겠습니까?

허허, 그런데 말입니다.

정말 큰일은 따로 있었어요.




몇 년 전부터 스몰 웨딩, 하우스 웨딩이 우리나라도 시작되고요.

요즘은 조금씩 그 수요도 많아졌잖아요.

그런데 알아가다 보니까 이 스몰 웨딩이요.

돈은 스몰 웨딩이 아닌 거예요.

가까운 사람만 모아 소박하게 결혼하겠다 해서 스몰 웨딩인 거잖아요.

그런데 말이 스몰이지, 돈은 라지나 그랜드.

거의 그렇더라고요.


일단 장소가 마땅치 않아요.

스몰 웨딩 전문 식장이나 레스토랑이 있기는 한데요.

대관료가 꽤 들어요.

100명이냐 150명이냐 이런 차이 하나에도 값은 더 뛰죠.


대관료는 그렇다 칩시다.

진짜 딱 장소만 빌려주는 거예요.

장식, 예를 들면 꽃이나 조명 같은 건 저희가 준비하든지 옵션인데요.

요거요거 가격이 만만치 않더라고요.

지금부터 베란다에 꽃씨를 뿌려야 하겠더라고요.


거기다 식비도 인당 미니멈 5만 원?

코스로 들어가면 막 8만 원, 9만 원, 10만 원 넘어가기도 하고요.

그럼 식비만 계산해도 5만 원에 100명이면 500만 원이잖아요.

제가 인생 헛살아서 그런지 몰라도요.

저 여기서 코피 뿜었잖아요.

500이라니!!!


그런데 그나마도 장소가 없어요.

나라에서 무료로 대여해주는 곳은 2016년 이미 마감.

1월에 신청을 하는데 구구절절 사연을 써야 하더라고요.

그것도 뽑혀야 되는 거죠.


제가 이쯤 얘기했을 때, 유유가 잠시 제 입을 막았어요.

그리고 묻더군요.


스몰 웨딩 하자매?


제가 대답했죠.


응.


유유 왈,


근데 그냥 결혼이랑 다른 게 뭔데?

야, 임뫄!!!

그러니까 내가 고민하는 거잖아!!!


우리 유유는 이렇게 가끔 제 속을 만져줘요.

제 마음이 평안하면 기분이 안 좋은가 봐요.

진짜, 확 콧구멍을 찔러버릴까부다!!


자, 그럼 여기서 잠시 비교를 해보겠습니다.

그냥 제가 생각나는 대로 적어볼게요.


1. 결혼에 드는 비용

결혼식장비(축포, DVD 빔, 예도, 특수 연출 등), 생화 장식, 식비(평균 3~4만 원, 술, 음료 포함 유무), 주례비, 사회비, 연주비, 축가비, 폐백실 사용료, 폐백 의상비, 청첩장비, 웨딩 촬영비, 스튜디오비, 본식 스냅 촬영비, 액자비, 앨범비, 본식 DVD비, 단체 버스(타 지역에서 오시는 분들), 교통비, 답례품, 플래너 비용(있을 경우), 혼구용품(케이크, 샴페인, 결혼 선언문 등), 메이크업, 헤어, 혼주 메이크업, 혼주 헤어, 웨딩드레스(티아라나 베일, 웨딩슈즈 등등), 부케비, 턱시도, 한복, 웨딩카, 결혼반지, 예단 및 예물, 뒤풀이, 함 및 이바지비, 신혼여행비 등등


2. 스몰 웨딩 시 가장 차이나는 부분

- 결혼식장 대관료가 더 높아질 수 있으나, 수용 인원은 더 적음

- 생화 장식 및 조명 등 데코 비용 평균 500~600만 원

- 식비 평균 5만 원 이상 6만 원에서 10만 원

*기사에서 본 바에 따르면, 강남권 호텔 일반 예식의 평균 비용은 1775만 원, 강남권 웨딩홀 일반 예식은 676만 원, 스몰 웨딩은 초대객 150명 기준 평균 720만 원이 든다고 합니다. 허라-!!


3. 헤아와 유유 웨딩에 필요한 것

- 결혼식장: 100~150명 내외, 장식은 최소화

- 대접할 음식

- 주례 없이, 연주는 친구가!

- 청첩장은 저희가 오시는 분들에 한해 손편지를 드릴 거예요.

- 웨딩 촬영 없이 본식 촬영은 친구가! 그리고 신혼여행 가서 저희끼리 셀프 웨딩 사진 찍으려고요.

- 평소에 화장을 잘 안 해서 메이크업이나 헤어는 그냥 친구에게 간단히~

- 웨딩드레스는 10~20만 원대로 구입해서 결혼식 때도 입고, 신혼여행 가서 셀프 웨딩 사진 찍을 때도 입고, 매년 결혼기념일마다 입으려고요. (비루한 몸뚱이가 늘어나지 않는다면요 ㅡㅡ;;)

- 부케는 플로리스트 친구에게, 케이크는 컵케이크 만드는 친구에게(친구 찬스!)

- 턱시도 대신 평소에도 입을 수 있는 예쁜 정장

- 결혼반지 저 없어도 됩니다.

- 예단, 예물, 함, 이바지, 폐백 패스!

- 웨딩카 패스! 전 저의 튼튼한 다리와 대한민국의 훌륭한 대중교통을 믿습니다!!

- 신혼여행은 아무래도 제 전문이 여행이다 보니 패키지 없이 특가 찬스를 마구 이용하여 자유여행으로 저렴하고 즐겁게!!


4. 정 힘들다면...

- 식 없이 부모님 모시고 점심에 식사! 저녁에 친구들과 식사!로 끝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 아니면, 신혼여행 가서 저희끼리 촛불 켜고 '잘 살자, 아자아자!' 해도 좋고요.

- 뭐, 혼인 신고서에 도장만 찍어도 돼요.


4번의 경우에는, 부모님들과 상의 하에 정하려고요.

저희가 결혼에서 중심을 잡고 진행해가는 건 맞다고 생각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부모님이 너무 소외되고 의견이 무시된다고 생각하시면, 결혼 전부터 속상하실 것 같아서요.

유유랑 잘 준비해나가되, 계속 그 상황들에 대해 부모님들과 소통하려고요.

저희가 지혜롭게 잘 하면, 부모님들께서는 충분히 저희 마음을 헤아려 주실 분들이니까요.


아, 참.

저는 솔직히 축의금 안 받고 싶거든요.

정말 저희를 축하해주러 오시는 분들이니까요.

돈 대신에 편지나 축하의 마음으로 대신해 주시면 좋겠어요.

그냥 정말 따뜻한 밥 한 끼, 차 한잔 대접하고요.

저희 결혼합니다. 잘 살겠습니다! 하고 싶어요.


그렇잖아도 유유한테 이 이야기를 하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도 원빈, 이나영처럼 갈대밭에서 국수 해 먹을까? 110만 원 들었대.

그러니까 우리 유유,


가마솥에서 국수 자기가 삶을 거야?
그리고 자긴 이나영이 아니라서...... (퍽)


유유, 느드 운븐 으니그든......




결혼, 중요하긴 한대요.

단 하루, 저랑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까지 잘 보이기 위해 무리하고 싶지 않아요.

그 시간, 그 노력, 그 비용으로 저희가 감사해야 할 분들께 진심으로 인사드리고요.

앞으로 저희가 좋은 가정 만들겠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서로의 소중한 사람들 한 분 한 분을 마음에 새기는 귀한 날로 만들고 싶습니다.


어쨌든 지금은 식장 구하는 것만으로도 참 만만치 않아요.

아직 저 역시도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더 많은 경우의 수를 놓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좀 더 고민하고 알아보려고요.


혹시 저 같은 고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실 것 같아서요.

주저리주저리 써봤어요.

아직 딱히 좋은 정보는 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생각이 나면 함께 나눌게요.

오늘은 투덜이, 어리광 좀 부리고 갑니다.


불금 불금, 행복 가득한 즐거운 날 되세요!!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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