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척척척
과일이 먹고 싶어 마트에 갔더니 통로를 가로막고 탑처럼 쌓여있는 빼빼로!
그걸 보며 11월을 깨닫는 요즘입니다.
그만큼 정신없이 보낸 지난 한 달이었어요.
저희, 집 구했어요.
많이 낡은 아파트긴 한데요.
도배랑 장판도 깨끗이 되어 있고 인테리어도 새로 싹 한 곳이에요.
무엇보다 제가 그토록 바라던 꼭대기층!!
제가 소리에 정말 민감해서 무조건 꼭대기층을 바랐거든요.
소원을 이뤘어요. 오예!!
결혼하면서 어른들 도움 안 받겠다고 했을 때요.
거기엔 여러 복잡한 서류 작업 같은 것도 포함되어 있었거든요.
그런데 유유도 유유지만, 저는 이 나이 먹도록 제 손으로 뭐 하나 한 게 없어요.
진짜 그런 쪽으로 무지렁이인 인간이라서요.
예전에 회사 다닐 때, 연말 정산하잖아요.
서류를 냈는데 총무부에서 그러는 거예요.
헤아 씨, 보험 안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그랬게요?
어? 의료보험......
네, 저 보험 같은 거 잘 몰랐어요.
여태껏 모르고 삽니다. 엉엉.
아, 지난번에 핸드폰 바꿀 때는요.
강여사랑 같이 갔거든요.
그런데 뭐, 핸드폰 바꾸면서 카드 새로 가입하고 그런 게 있더라고요.
직원 분이 그러시대요.
지금 카드 혜택 뭐 받고 계세요?
그래서 제가 뭐라고 그랬게요?
파리바케트 적립요. 아, 배스킨라빈스도......
결국은 그 날 모든 걸 강여사가 대신 알아봐 줬다는 슬픈 이야기가......
제가 그렇게 세상 물정을 모르고 살았어요.
그런데 이제 그러면 안되잖아요.
두 사람 다 똑 부러져도 모자라는 세상이라고 하잖아요.
그런데 저흰 둘 다 맹탕이라서요.
막상 하려니 겁이 덜컥 나더라고요.
답이 뭐 있나요.
공부해야죠.
이미 말씀드렸지만 저희, 돈이 없어서요.
올 빚이에요.
그런 저희를 위해 세상이 마련한 선물.
전세자금 대출, 신혼부부 대출, 신용대출.
그 선물을 잘 받기 위해 수능 때보다 피 터지게 공부했다니까요.
그런 제가 한심해 보였나 봐요.
엄마가 저보고 그러시는 거예요.
야, 니들끼리 알아서 해보겠다더니 올 빚이냐? 대체 그런 배짱은 누구 생각이니?
제가 어떻게 했게요?
엄마한테 엄지 척하며 윙크 뿅뿅-!
그리고 뭐......
아시죠?
맞았죠, 등짝을.
씨게, 겁나 씨게. 흐읍!
대출 알아보면서 집을 같이 알아보는데요.
저는 정말 원룸도 상관없었거든요.
빚 많이 지는 것보다 깔끔하게 있는 돈으로 해결하면 마음이 편하잖아요.
뭐, 없이 시작하는데 원룸이면 어때요?
둘이 같이 있고 싶어서 하는 건데.
근데 유유가 원룸은 싫다고 싫다고.
굳이 자기 방이 있어야 한다는 거예요.
기가 막혀서.
제가 화장실 주겠다고 했거든요.
혼자 있고 싶을 땐 화장실을 기꺼이 내어주겠다 했어요.
그런데 고개를 강하게 내젓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제가 화장실을 쓰겠다 했는데 그것도 싫대요.
참, 나.
사실 말은 그렇게 해도요.
제가 프리랜서라 집에 있는 시간이 많기도 하고요.
아무래도 원룸은 내키지 않았나 봐요.
제 생각해주는 거였어요.
이쁘죠, 우리 유유?
(고슴도치라 죄송합니다)
결국 발품 팔아 여기저기 다녔죠.
그랬더니 선택지가 몇 군데 생기더라고요.
첫 번째는 빌라냐 아파트냐였는데요.
저희가 살 지역은 기존 빌라에 신축까지 빌라 매물이 엄청 많아요.
거기에 풀 옵션이거든요.
평수도 넓고요.
대신 주변이 휑하고 외지거나 마트나 역이 멀거나 하죠.
이것도 저는 상관이 없었는데요.
유유도 그렇지만 어른들이 너무 걱정하시더라고요.
사는 내내 염려 끼칠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아파트로 결정!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오래되긴 했는데요.
마트나 은행 같은 주변 인프라가 잘 되어 있어요.
그리 넓진 않지만요.
주변에서 신혼부부 둘이 생활하긴 좋다고 다들 추천하시더라고요.
하지만 가전과 가구를 다 마련해야 해요.
써야 할 돈과 조사해야 할 품목과 할 일이 늘어난 슬픔이란.
그다음에는요.
전세냐 월세냐를 두고 대출 이자와 월세 사이에서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렸죠.
제가 중학교 때부터 수학을 놨거든요.
피타고라스 정리 이후였던 것 같아요.
그다음은 기억이 없어요.
그런데 이번에 알았답니다.
돈 계산은 쫌 하는 것 같아요.
올-!
결국 최종적으로 전세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어요.
그래서 이번엔 전세 계약을 가지고 엄청 공부를 했어요.
그런데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니 근저당이 잡혀 있더라고요.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전 지금 제가 너무 놀라워요.
제가 제 입으로 등기부니 근저당이니 하고 있다니요.
역시 세상은 오래 살아봐야 해요.
여하튼 그것 때문에 또 전세 계약 전까지 근저당 말소하는 걸로 특약을 넣고......
와, 저 진짜 멋있지 않습니까?
(다시 한번 죄송합니다)
사실 저희 부모님 두 분 다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가지고 계세요.
이 험한 세상에 잘 알아야 얻지는 못하더라도 잃지는 않는다고요.
덕분에 들은 가락이 있어서 조금 이해가 빨랐던 것 같아요.
서당개 삼 년이면 풍월을 읊는다잖아요.
저도 저희 엄마 딸 삼십오 년이면 조금은 똑똑해질......
아, 그건 무리인가 싶기도 하고요.
니들 알아서 하라며 지켜보시던 부모님이 결국 부동산에 같이 가셨어요.
그래서 다시 꼼꼼히 알아보시고 조언도 해주시고요.
제 잘난 듯 계속 얘기했지만요.
결국 엄마, 아빠 덕분이죠.
저는 언제 제대로 된 어른이 될라는 지요.
주름진 피터팬???
그래서 여하튼 다음 달에 이사해요.
결혼식은 4월이지만 일단 12월 말부터 같이 사는 걸로!
왜 애들 넘어지면 어른들이 "우르르 까꿍" 하면서 호들갑을 떨잖아요.
그럼 애들이 아파서 울려다가 멍- 해서 울지도 못하고 결국 웃듯이요.
제 결혼이 그렇습니다.
제가 계속 막 정신없이 밀어붙였다 웃겼다 수선을 피웠다 해서요.
유유를 포함, 양가 부모님 등등 다들 멍- 하게 있다가 정신 차려보면 헉! 하는 상황.
그래서 그런지 다들 한숨이......
웃는 건 저뿐인 듯......
뭐, 저만 웃으면 돼요.
아, 그 사이에 상견례도 하고요.
이건 앞 글 보고 알고 계시죠?
그리고 또 유유 할머님이 돌아가셔서요.
부모님과 같이 찾아뵈면서 친척분들 다 인사드리고요.
이렇게 된 거 빨리 날을 잡자 해서 잡아버렸어요.
4월 1일, 확정입니다.
만우절날 거짓말처럼 결혼합니다.
커컥.
그래서 여하튼 요즘 너무 바빠요.
1. 결혼식장 예약을 비롯한 결혼식 준비
- 원래 양가 식사만 하고 끝내고 싶었는데요.
유유 부모님께서 결혼식은 제대로 했으면 하셔서 급하게 준비하게 됐어요.
하지만 결혼식은 하되, 형식에 구애 없이 제 멋대로 신나는 축제를 벌여보려고요.
진짜 적은 돈으로 재미나게 하려고 이리 뛰고 저리 뛰고 있어요.
2. 가전 가구 구입 및 인테리어 구상
- 이렇게 말하니 너무 거창하지만요.
좋은 놈을 착한 가격에 데려와 예쁘게 놓고 싶은 거죠.
이것도 역시 발로 뛰는 게 생명!
3. 신혼여행 비행기 티켓 예약
- 제가 나름 여행 전문가 아닙니까?
여행이란 모름지기 빨리 예약할수록 돈이 절약되니까요.
즐거운 신혼여행을 위해선 지금부터 움직여야죠.
4월 결혼을 고집한 것도 오직 신혼여행에서의 날씨를 생각해서 그런 것뿐인 걸요.
아, 모르셨습니까?
네, 4월 결혼의 이유는 오직 그뿐입니다. 오홍홍.
그래서 지금 발에 불이 나요.
특히 결혼식은요.
견적도 너무 차이가 나고요.
옵션이니 뭐니......
어휴, 집 구하는 것보다 더 힘들더라고요.
제가 오죽하면 테이블 대여부터 음향 대여까지 다 알아본다니까요.
이러다 진짜 결혼식날 신부가 드레스 입고 무대 쌓게 생겼어요. 휴.
이런 고생을 다른 분들은 좀 덜하셨으면 해서요.
모든 정보를 엑셀에 꼼꼼하게 정리하고 있어요.
마치 족보처럼.
뭐, 풍족하게 결혼하시는 분들이라면 굳이 이런 게 필요 없겠지만요.
저처럼 적(다고도 할 수 없는 무일푼)은 예산으로 결혼하시는 분들한테는요.
조금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서요.
정말 이 결혼이 끝나면 무슨 결혼의 달인 같은 거 되어 있을 것 같아요.
여하튼 정신없고 몸도 피곤한 날들이지만 신나게 신나게 고고!!
다음 주엔 계약도 하고 미팅도 하고 할 일이 많네요.
주말에 잘 먹고 기운 충전해둬야겠어요.
아자아자!!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그리고 담뿍, 담뿍 행복하셔야 해요!!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