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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Oct 28. 2016

엄마와 나, 다른 우주에 사는 우리가

상견례를 마치고


헤아의 글



우리 엄마는 유유를 '범버리'라고 부른다.

유유도 알고는 있다.

자신이 '범버리'라 불리고 있다는 것을.

그러나 그 의미는 잘 모른다.

명색이 떡집 아들이지만 개떡 앞에 '범버리'라는 말이 고명처럼 붙는 건 모르는 눈치다.

참 다행이다.


모든 딸이 그렇듯, 나 역시 우리 엄마에게는 소중한 딸이다.

하지만 우리 관계는 좀 색다르다고 해야 할까?


엄마는 내가 아직 작디작은 아기였을 때 친아빠와 헤어졌다.

그 후로 아빠가 내 세상에 존재한 적은 없다.

지금의 아빠가 가족이 되기 전까지는.


스물여섯이었다, 나의 엄마.


그때도 작고 말랐던 그 등에 엄마는 기꺼이 나라는 짐을 얹었다.

그리고 세상이라는 전쟁터에서 전사로 살았다.


삼십오 년.

엄마가 피 흘리며 싸워온 세월은 그렇게 나와 함께 나이 들었다.


엄마에게 나는 아마도 딸이자, 남편이자, 친구이자, 자매이자, 보물이자, 원수이자, 짐일 것이다.

사랑하지만 버거운, 버리고 싶어도 버릴 수 없는.


나에게 엄마는 엄마이자, 친구이자, 언니이자, 선생님이자, 멘토이자, 교관이자, 벽이자, 산이다.

사랑하지만 가끔은 견디기 힘든, 넘을 수 없는.


그런 우리는 긴 시간 서로를 의지하고 싸우고 믿고 미워했다.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하고 또 사랑해왔다.


엄마, 나의 엄마.

다시없을 모진 말로 사람 속을 헤집어놓고도, 내가 기침이라도 하면 얼굴이 사색이 되어 달려오는 엄마.

네 입에 들어가는 거 아깝다면서도, 좋은 것이 있으면 내가 들어올 때까지 기다렸다가 한 입이라도 넣어주려는 엄마.

네 맘대로 살라고 하면서도, 늦게 들어올 때면 내 걱정에 잠도 못 이루고 거실에 앉아있는 엄마.

귀찮다고 하면서도, 집에 있으면 하루에 백번도 넘게 불러내 유난히 말이 많아지는 엄마.

너 없으면 내 인생이 홀가분하겠다고 하면서도, 밖에서 전화하면 빨리 들어오라고 호통치는 엄마.


언젠가 많이 아팠던 날, 응급실에 실려가 링거를 맞았다.

약에 취해 눈을 감고 있던 내 손을 잡고 엄마는 믿지도 않는 신에게 기도를 했다.


착하게 살게요. 나쁜 마음 안 먹을게요. 그러니 우리 딸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그 기도를 들으며 까무룩 잠들었던 나는, 다음 날 더 이상 아프지 않았다.

엄마의 마른 등은 그제야 조금 편안해졌다.


첫 남자 친구에게 뻥 차이고, 전화로 붙잡다 욕까지 들었던 날.

방에서 울며 불며 매달리다 거실로 나갔을 때, 엄마는 밖에서 조용히 내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계셨다.

나는 엄마 품에 안겨 세상이 무너진 듯 펑펑 울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상처받은 건 나 혼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별은 두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다.

한 사람은 나,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나의 엄마.


곱게 키운 딸이 나이가 한참 들어 처음으로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고 했던 날.

그때 우리 엄마 얼굴도 들뜬 나와 함께 붉어졌다.

엄마는 딸과 함께 연애를 한 것이다.

그런데 그 사랑이 무참이 짓밟혔을 때, 엄마 안의 분홍빛 꿈도 깨진 것만 같았다.

자라면서 수없이 반항하고 속 없는 말로 엄마를 속 썩였지만 그건 조금 달랐다.

밖에서 엄마를 때린 게 아니라 엄마 속을 헤집고 들어가 찌른 것만 같은 느낌이랄까.


나는 그 후로 두 번 다시, 내 연애를 엄마에게 밝히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상처는 엄마에게 두 번 다시 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생각해보니 나, 하고 싶다는 건 뭐든지 하고 자랐다.

입고 싶은 것 먹고 깊은 것 가지고 싶은 것은 다 손에 쥐었다.

대학에 가고 유학하는 동안에도 엄마는 나에게 모든 것을 다 해줬다.

그래도 나는 늘 엄마에게 투정을 했다.

외롭다고, 나를 이해해주지 않는다고, 믿어주지 않는다고.

온갖 이유로 엄마를 질타하고 비난하고 상처 주었다.

그리고 그걸 핑계로 엄마에게 많은 것을 바랐다.

그렇게 나는 스스로 엄마의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로 영원히 머물려했다.


그런데 이제 내가 결혼을 한다.


모든 부모가 그렇지만 우리 엄마에게 나는 너무도 아까운 딸이다.

가진 걸 모두 주고 싶은 딸.

빚을 져서라도 바리바리 다 해줘도 모자랄 것 같았는데, 나는 아무것도 받지 않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솔직히 엄마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유유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

유유의 자존심, 유유와 엄마와의 대등한 관계, 그 모든 것들을 위해 나는 엄마의 도움을 애초에 막았다.

엄마의 서운함을 알면서도 엄마 앞에서 유유에의 애정도 숨기지 않았다.

그리고 멋대로 결혼 날짜를 정하고 준비하고 상견례도 통보했다.

하고 싶은 대로 하라고 짐짓 쿨한 척했지만, 그 속이 마냥 편하지만은 않으리란 걸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모른 척했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참 나쁜 딸이다.


상견례 날.

장수가 갑옷을 입듯, 새 원피스에 양 손에는 평소 하지 않던 보석 반지를 줄줄이 낀 엄마.

상대가 덤비면 금방이라도 해치울 기세로 약속 장소에 나갔다.


그런데, 막상 상견례장에 가니 달랐다.

엄마는 내내 우리 엄마 답지 않았다.

품위 있고 우아하게 그리고 겸손하게 아버님과 어머님을 맞이했다.

나는, 상견례 내내 아버님과 어머님 마음에 들려고 안절부절이었다.

신경이 온통 테이블 건너에 있었다.

그래서 옆에 있는 엄마 얼굴은 보이지 않아 헤아리지도 못했다.

내 엄마는 어떻게든 날 사랑할 테니까.

하지만 유유 부모님은 내 작은 행동 하나에도 서운해하실지 모르니까.

그렇게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상견례를 마치고야 조금 화가 났다.


아버님이 우셨다.

유유는 아버님께 특별한 아들이다.

착한 아들이고 애틋한 아들이다.

하지만 우리 엄마에게 나도 그런데.

우리 엄마도 울고 싶었을 텐데.

우리 엄마도 내 자랑하고 싶었을 텐데.

우리 엄마가 날 어떻게 키웠는데.


엄마는 그저 유유가 참 잘 자랐다고.

사돈어른이 대단하시다고.

우리 아이가 모자라다고.

엄마 답지 않은 말만 계속했다.

그렇게 잘 따지고 잘 싸우고 똑똑한 엄만데.

가끔은 그런 모습이 답답하고 화도 났는데.

식사에는 손도 못 대고 물만 물만 마시면서 엄마는 내 딸이 부족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또 화를 냈다.


엄마도 좀 울지.
엄마도 내 자랑 좀 하지.


하지만 안다.

결국 엄마는 날 위해 스스로 작아졌다.

나를 위해 절대 강자가 되었던 엄마는 나 때문에 한없는 약자가 되었다.


엄마는 내가 외계인 같다고 한다.

어쩌면 나는 정말 외계인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 다른 우주에서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서로 다른 언어로 말을 하고 있을지도.

하지만 나는 끊임없이 내 언어로 신호를 보내고 있다.


사랑한다고.

나의 어머니, 당신을.

내가 많이 사랑한다고.


언젠가 우리의 우주를 잇는 웜홀을 발견할 때까지.

나는 엄마에게 걸어갈 것이다.


다만 너무 늦지 않기를.

엄마의 우주에 곧 닿기를.


나는 아직 외계인이다.

엄마도 외계인이다.

우리는 아직 다른 우주에 있다.

서로를 지독히도 사랑하면서.




엄마의 글


나에게는 동생 같고, 친구 같은 예쁜 딸이 하나 있다.

그러나 가끔씩 예쁜 딸이 생뚱맞게 외계어를 방출하는 외계인같이 느껴질 때가 있다.

같은 말도 삐딱하게 받아들이고, 충고도 간섭이며, 바득바득 대들 때면 나는 외계인 취급을 하며 다친 내 마음을 다독인다.


그런 딸이 연애를 하고 뜻 맞는 남자를 만나 결혼을 하겠단다.

나 역시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러하듯이 잘난 내 딸만 보이고, 딸의 남자 친구는 성에 차지 않아 이름 대신 '범버리'라 부른다.

(범버리 개떡 같은 흔한, 서민적인, 특출하지 않은, 의 의미다)


딸은 그런 엄마 마음을 헤아리는 대신 범버리라는 말에 혹여 남자 친구가 마음 상할까 질색팔색, 전전긍긍, 얼굴은 똥빛이다.

그런 모습을 보는 나는 시원섭섭해 딸에게 독설을 날린다.

허나 어쩌겠나.


상견례를 하잔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는 나는 떨떠름한 마음에 주저주저 나서며 혹여 상대가 도발하면 가차 없이 응징하리라고 전의를 불태우며 나갔다.


그러나 대단하다고 믿었던 내 딸은 생소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가.

그저 안절부절, 조아리고, 굽실굽실, 눈가에 주름지으며 웃고, 온몸으로 하트 뿅뿅 날리며......

그 모습도 기가 막히는데 그보다 더한 것은 바깥사돈 될 분이 아들 결혼 얘기에 눈물이 그렁그렁.

이건 또 뭐란 말인가.

이런 상황은 듣도 보도 못한 상상불가의 장면이라 나는 어이없게 전의 상실.


할 말도 못 하고 좋게 좋게 마무리하고 돌아서 오려니 내 마음은 외계로 떠돈다.

언제나 나는 지구라는 행성에서 딸과 만날 수 있을까?








로마에서, 사랑하는 나의 엄마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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