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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May 16. 2017

일요일엔 낚시를 했어요

언젠가, 같이 흐르기를

 연애 때는 종종 같이 낚시를 하곤 했어요. 사랑스러운 저의 유유는 연애 1주년 기념 이벤트로 꽃도 아니요, 선물도 아니요, 무려 빙어낚시를 준비했던 어마어마한 남자거든요. 덕분에 저, 코트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으로 콧물을 줄줄 흘리며 빙어낚시를 했었죠. 겨우 잡은 피라미를 빙어라고 박박 우겼죠. 그땐 그랬죠.


 토요일에 비가 와서인지 일요일 아침엔 빨래를 너는데 하늘이 맑았어요. 전날 늦게까지 영화를 보고 일어나 아침을 먹고 다시 낮잠까지 푹 자고 일어난 유유. 머리에 까치집을 여의도만큼 지은 유유에게 한없이 환하게 웃으며 멱살잡이를 했답니다. 이눔아! 나가자, 나가자고!!! >.<//


 그렇게 나와 둘이서 짜장면과 짬뽕과 탕수육을 흡입한 후, 아이스크림까지 먹고 이제 뭘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요. 차에서 잠깐 기다리라며 어디론가 달려간 유유가 양손에 뭘 잔뜩 사 왔어요. 어머나, 지렁이랑 떡밥이군요. 그렇게 눈뜨고 코베이듯 낚시를 하러 갔어요. 결혼하고는 처음 하는 낚시예요. 그리고 저는 새로 산 치렁치렁 긴 스커트에 얇은 반팔을 입었지만 뭐, 어때요. 감기 좀 걸리고 치마에 흙 좀 묻을 뿐인데요. 그치, 유유느므...


 여기서 질문! 유유는 왜 제가 예쁜 블라우스를 입었을 때나 똥꼬 치마를 입었을 때나 힐을 신었을 때나 등등 낚시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차림을 했을 때를 고르고 골라 낚시를 가는 걸까요? 너, 나 만만하냐? 이 유유느므...


 수심이 너무 얕다, 오늘은 바람이 너무 세다, 낚싯대가 짧다, 못하는 이유를 대자면 밤을 세도 모자라지만 결코 자신의 실력은 탓하지 않는 우리 유유. 결국 한 마리도 못 낚고 세월만 낚다가 해가 질 때쯤 자리에서 일어섰네요. 돌아오는 길에는 동네에서 맨날 구경만 하던 핫도그를 줄 서서 사 먹고요, 집에 와서는 수박도 먹었어요. 한 입 베어 무니 수박에서 국물이 츄르르- 흐르는 게 속까지 달콤해지네요.


 모든 게 흘러요. 물도 바람도 시간도. 오직 유유와 저만 가만히 멈춰있는 것 같아요. 언젠가 지금 단단히 서 있는 서로의 자리에서 벗어나야 하는 날도 오겠지요. 그걸 막을 수는 없겠죠. 다만 그렇다면 우리 그땐 부디, 함께 흐르기를. 서로의 손을 꼬옥 잡고.


 5월의 어느 따스한 날에.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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