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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Mar 22. 2018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삶의 한 막이 닫히는 날들에

 생각해야 할 일이 있을 때는 버스를 타요. 버스 차창 밖으로 한없이 펼쳐지는 풍경들을 바라보며 멍하니 음악에 귀 기울이다 보면 생각이 정리된달까, 안개에 가려져 깊은 곳에 숨겨져 있던 진심이 보인달까. 어쨌든 마음이 좀 풀리거든요.

 그럴 때 자주 찾던 노래가 남수림의 '나도 그럴 수 있을까'였어요. 언젠가 엄마가 될 거라는 기대와 두려움의 감정을 담담하고 솔직하게 담아낸 곡인데요. 가사 하나하나가 참 공감돼서, 들을 때마다 자꾸만 마음이 먹먹해지고 뿌옇게 시야가 흐려지곤 했어요.


창밖의 놀이터에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릴 때면
조금은 우습고 남부끄럽게도 기분이 괜히 센치해져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 그 누군가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따뜻한 보금자리를 꾸리고 그 속에서 아이를 가질 수 있을까

지나온 날에 저지른 실수들이 그 아이에게까지 닿진 않을까
미숙한 인간인 나의 안에 다른 하나의 삶을 담을 수 있을까

어느 날 단 하나 빼고는 모자람이 없다고 느껴질 때면
웃음과 축복 속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어

허나 뜻하지 않은 날에 나 홀로 감당해야 하는 그런 아이라도 난 사랑할 수 있을까
지치거나 고된 상황 속에도 난 찬란한 거울이 될 수 있을까

언젠가는 나도 언젠가는 그 누군가의 엄마가 될 수 있을까
미숙한 인간인 나의 안에 다른 하나의 삶이 열릴 수 있을까

나도 그럴 수 있을까

- 남수림, '나도 그럴 수 있을까'


 노래처럼, 미숙한 인간인 제 안에 다른 하나의 새 삶이 열릴 수 있을까 고민하며 꿈꾸던 일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하늘이 이대로 이 선물을 허락한다면 10월에는 저도 한 아이의 엄마가 돼요. 그런데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제로는 전혀 실감 나지 않아 종종 잊어버리곤 해요. 아마 그래서 입덧이라는 알림을 통해 홀몸이 아님을 확인시켜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아이가 생긴다는 것. 그것은 감당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기쁨의 파도가 몰려오는 것임과 동시에 그러나, 한편으론 확연하게 내 인생의 한 단원이 끝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지금껏 삶의 여러 장을 넘어왔어요. 학교나 직장을 통과했고 절체절명의 고비도 있었고요. 사랑도 하고 아파도 하고 그러다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기도 했지요. 그렇게 스물을 지나 서른의 고개를 넘어 어느새 곧 마흔을 바라보는 동안 '아, 이제 어른이 됐구나' 싶기도 했고, '진짜 나이 들었네' 깨닫기도 했는대요. 그런데 아이를 품는 건 그런 느낌과도 전혀 다른, 정말 청춘의 한 막이 닫히는 기분이에요. 요즘은 자꾸만 그런 생각에 지난 시간들을 돌이켜보고 조금은 아쉬워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이렇게 기쁜 순간에 왜 그런 걸까 고민 고민하다가 그런 결론에 다다랐어요. 나 혼자만 생각하고, 나 개인으로 서는 날들은 이제 오랫동안 없을 거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라는 거요. 지금까지도 물론 가족이 있고 친구가 있고 또 남편도 있었지만, 마음 한 구석에서는 그럼에도 언제든 나 개인으로서의 욕심을 앞세워 선택할 수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답답하거나 힘들거나 혹은 내가 원한다면 언제든 모든 걸 훌훌 털고 떠날 수도 있는 사람이라고 말이에요.

 물론 그런 저라는 존재는 영원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작디작은 생명이 태어난다는 것은, 내가 그에게 제 몸의 한 공간을 내주어 탄생을 준비하게 하는 것은, 그에 대한 책임을 진다는 것이기도 하잖아요. 홀로 걸음마를 하고 달리기를 하고 말을 하고 감정을 드러내고 홀로서기를 할 수 있을 때까지, 아니, 둥지를 떠나 자신의 공간을 꾸린 이후에도 어쩌면 아주 오래도록 그를 마음으로나마 돌보기를 멈출 수 없는 삶이 시작되는 것이니까요. 아마도 그러니 나를 앞세운 선택들을 긴 시간 미뤄둬야 하기에 마음 한쪽에 시린 바람 한 줄기가 살짝 부는지도 모르겠어요.


 슬프기도 하고 우울 하달 수도 있는 지금 이 순간의 제 마음들을 찬찬히 곱씹고 맛보아, 인생의 한 막이 잘 닫히도록 해야겠어요. 미숙한 제 안에서 다른 하나의 삶이 열린다는 것은, 그야말로 제게 새로운 인생의 한 막이 펼쳐지는 것이니까요. 잊히지 않게 구겨지지 않게 상처 나지 않게, 그간의 기록들을 잘 소화하고 삼켜 새로운 날들의 뒤편으로 고이 넣어야겠습니다. 한 인간의 삶이 태어나 자라고 젊어 꽃핀 후 또 열매를 맺어 시들어가는 것이라면, 저는 지금 그저 주어진 제 삶의 선을 잘 그어가고 있는 것뿐이니.


 지는 청춘의 한가운데서, 조금은 씁쓸하지만 한없는 감사를 담아 가만히 배를 쓸어 아이에게 말을 걸어봅니다. 그럼에도 참 잘 와주었다고, 고맙다고.



매일 조금씩 그러나 쑥쑥 자라고 있는 튼튼이 :)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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