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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rida May 19. 2023

사랑하는 나의 몸을 증오한다

먹토 혹은 과식증 그 두 번째 이야기

마음에 욕망이 차오르면, 그만큼 욕망 아래 그림자도 깊고 검게 드리운다.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이 강할수록, 그렇지 못한 나에 대한 미움도 짙어졌다. 나는 내가 미웠다.


오래도록 나는 나의 몸을 좋아했다. 의자에 앉아있으면 볼록 튀어나오는 배는 과일인 배와 이름도 모양도 꼭 닮아서 보고 있으면 늘 귀엽다고 생각했다. 지쳐서 멍하니 있을 때 팔뚝 안쪽 살을 만지면 마음이 편해지면서 그리운 느낌이 들었다. 말랑말랑한 느낌이 어릴 때 누워 더듬대던 엄마의 맨살과 닮았기 때문이다. 통통하게 볼살이 오른 얼굴은 매끈하게 동그래서 스스로 복이 많은 관상이라며 우쭐대기도 했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내 몸을 떠올리면 나보다는 타인의 표정과 말이 더 선명하게 떠올랐다. 다른 사람의 평가를 통해 나는 내 몸을 있는 그대로가 아닌 굴절된 렌즈로 바라보게 돼버렸다.

대학 때 복도에서 마주친 선배가 문득 내 손목을 잡아들고는 “내 손목이랑 두께가 똑같네”한 일이나, 웃을 때 입을 가리는 손을 보고 소시지 같다며 웃었던 것. 덕분에 이후로 나는 웃을 때는 주먹을 쥐는 습관이 생겼다.

엄청 좋아하던 남자애가 넌 배만 좀 빼면 나쁘진 않다며 점수로 치면 10점 만점에 7.5점이라고 바란 적 없던 평가를 한 적도 있고, 이상하게 나를 맘에 들지 않아 하던 한 언니는 전신거울을 샀다는 말에 '니 몸이 다 비치긴 하니?' 하며 비웃기도 했다.

들었던 당시에는 그 말들이 한 귀로 들어와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낯선 타국에서 혼자 며칠씩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먹고 멍하니 있으면서, 나는 그 말들이 내 몸 곳곳에 고여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모진 말들은 조용히 숨어 있다가 내가 가장 약해진 틈을 타서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그때 나는 내 몸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럴수록 방 안에 더 처박혀 있었다. 작은 기숙사 방에 늘 쳐져 있던 초록색 커튼. 그 뒤로 봄이면 새싹이 돋고 여름이면 하얀 꽃이 만발하고 가을이면 잎이 곱게 물들고 겨울이면 눈꽃이 쌓이는 풍경이 있다는 걸 그곳을 떠난 뒤에야 알게 되었다.

작은 침대에 누우면 보이던 하얀 천장과 덩그러니 걸려있던 전등을 기억한다. 끈을 한 번 당기면 밝은 빛, 또 한 번 당기면 붉고 잔잔한 빛, 또 한 번 더 당기면 불이 꺼지는 그 등. 밤이 되면 붉은빛으로 해두고는, 근처 한인가게에서 빌려온 한국드라마 비디오를 TV로 틀어두었다. 드라마 여주인공들은 또 왜 그리 예쁘고 날씬한지. 설움이나 아픔, 외로움보다 더 크게 솟구치던 예뻐지고 싶다는 욕망과 그렇지 못한 나에 대한 증오를 나는 여전히 기억한다.

어두운 방에서 옷을 다 벗고 거울 앞에 섰을 때 눈앞에 보이는 내 몸이 소름 돋게 싫었다. 살을 다 도려내고 뼈만 남기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길을 걸을 때면 앞에 있는 여자보다 내 허리가 더 굵은지, 다리가 더 두꺼운지, 내 몸매가 누구와 닮았는지 내내 가늠하느라 바빴다. 음식을 앞에 두고 먹기 전에 칼로리를 계산했고, 아침저녁으로 체중을 쟀다. 언젠가의 나는 날씬하고 예뻐질 것이므로 지금의 나에게는 어떤 투자도 하지 않겠다며 꾸미는 것을 완전히 놓아버렸다.


물론 나는 나를 사랑했다. 하지만 그만큼 내 몸이 정말 싫었다. 나를 사랑하지만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 그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었다. 그 끝에서 만난 '먹토'는 또 얼마나 나를 파괴시켰는지.

넋을 잃고 먹고서는 왜 먹었을까 스스로를 혐오하고, 없던 일로 만들기 위해 의도적으로 토했다. 잘 토해지지 않거나 외식을 해서 토할 때를 놓치면 변비약을 한 움큼 먹을 때도 있었다. 먹토는 먹은 만큼 토하기 때문에 겉보기에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서 주위에서 눈치채기 어렵다. 거기다 나는 혼자였으니까 더 거리낄 게 없었다.

점차 토하는 것에 익숙해지니 많이 먹어도 된다는 생각에 더 과식이 심해졌다. 이게 일상이 되니 목구멍이 아파오고 얼굴, 특히 침샘이 자주 부어올랐다. 수분이 부족해서인지 손도 자주 부었고, 손을 넣어 억지로 토하다 보니 손가락에 굳은살도 잡혔다. 잇몸에서는 피가 났고 머리카락도 많이 빠지고 피부도 거칠어졌다.

음식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종일 먹는 것만을 생각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먹고 토했고, 그리고 나면 죄책감과 스트레스로 다시 괴로웠다. 누군가 혹시 이 비밀을 알아 채릴까 싶어 나는 더 음침해졌고, 조용한 내 동굴에 숨어 점점 가라앉았다.


어디선가 "모기에 물린 곳을 긁으면 점점 가려워진다. 긁어도 가려움은 멈추지 않고, 계속 긁으면 피가 난다. 가려움을 멈추기 위해 긁는 것인데 반대로 가려움을 강화시켜 상처를 만든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그 말대로였다. 살찌는 게 두려워 토하기 시작했는데 토하는 게 오히려 먹는 걸 더 강화시켜 버렸다.

TV에서 기아로 힘들어하는 아프리카 아이들이 나오면 채널을 돌리게 되었다. 마음이 아파서가 아니었다. 수치, 그건 수치였다.


이제, 꽃을 보듯 나를 본다





헤아리.다 / 3개의 언어 / 4개의 전공 / 8번의 전직 / 20개국 100여 개 도시 여행 빈곤 생활자 / 위대한 먹보 / 유쾌한 장난꾸러기 /  행복한 또라이 / 꽤 많은 도전과 무수한 실패 / 손에 꼽을 수 있는 내 사람들 / 단 하나의 사랑 / 끝없이 이어지는 삶 / 마음과 글과 사진과 세상을 헤아리고픈 소박한 욕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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