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초록의 엽록소가 뚝뚝 떨어지는 이파리가 좋다. 호박잎, 배춧잎, 양배추 잎, 상추, 봄동, 부추, 미역, 이런 초록 초록한 이파리들에 애정이 있다. 어린잎이었을 때부터 온 몸으로 햇살을 받아내 그 햇살을 널찍한 잎 가득 가둬 놓은 초록. 그 이파리를 입에 넣으면 쨍쨍한 햇볕을 내 입에 넣는 듯하다. 몸으로 느끼는 햇살과는 다른 입으로 느껴지는 햇살, 햇볕.
지난봄 처음 해 본 머위잎 쌈. 살짝 데쳐내서 찬 물에 헹궈낸 이파리를 씹어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로 쓴 맛이었다. 입 속이 죄여 오고 침이 마구 마구 솟아났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찬 물에 담가서 쓴 맛을 빼내야 한단다. 밤새 찬 물에 담가 두었다 아침에 물을 갈아주고 출근했다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은 저녁 상에 초록의 이파리를 올렸다. 쓴 맛이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쌉쌀한 맛이 남아있는 머위잎은 씹는 식감도 적당히 질기고 슴슴한 쌈장과 참 잘 어울린다. 무를 많이 넣은 된장과 함께 먹으니 봄날의 밥상으로 꽤 만족스럽다.
그런 만족스러운 밥상 앞에서 중간고사 시험을 앞둔 중학생 첫째는 시험공부가 짜증스럽단다. 식탁에서는 될 수 있으면 즐거운 이야기만 나누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또 어쩔 수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뻔한 말을 해야 할 때가 또 지금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아이가 쏟아내는 불평과 짜증을 순하게 들어주어야 할 때이다. 그러나 그렇게 다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부를 막 열심히 하고 싶지 않고 적당히 하고 싶다는 이 아이에게 조금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 또 엄마 입장이다. 그러나 그 화를 꾹 참는다.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앞으로 네 인생에 얼마나 많은지 알기냐 하냐고, 지금 이 시간은 앞으로 네가 만나야 하는 짜증 나고 괴로운 상황 중에서 가장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정색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만 이 또한 참는다. 그리고 머위 잎쌈을 예쁘게 말아서 건넨다.
대신 공부를 해 줄 수도 없고, 대신 괴로운 순간을 견뎌 줄 수도 없는 엄마는 그저 밥상을 열심히 차려줄 뿐이다. 그러나 괴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쓰디쓴 머위잎이 말간 물에 쓴 맛을 털어내고 소박하지만 봄 햇살을 뜸뿍 담은 정갈한 맛으로 오롯이 접시에 담기는 것처럼 그렇게 괴로운 시간이 완전한 순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아이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 것을 알기엔 아직 어린가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 아이가 이러는 건 아닌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나. 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둔 터널 속에서 손으로 더듬더듬 짚어가며 이 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은 이 순간. 자식 기르는 일의 힘겨움. 이런 나에게도 머위 잎 쌈을 동그랗게 말아 준다. 처음엔 쓰지만 나중엔 좋을 거야 위로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