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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Feb 01. 2019

처음엔 쓰지만 나중엔 좋을 거야

아들에게 차려주는 초록 이파리

나는 초록의 엽록소가 뚝뚝 떨어지는 이파리가 좋다.  호박잎, 배춧잎, 양배추 잎, 상추, 봄동, 부추, 미역, 이런 초록 초록한 이파리들에 애정이 있다. 어린잎이었을 때부터 온 몸으로 햇살을 받아내 그 햇살을 널찍한 잎 가득 가둬 놓은 초록. 그 이파리를 입에 넣으면 쨍쨍한 햇볕을 내 입에 넣는 듯하다. 몸으로 느끼는 햇살과는 다른 입으로 느껴지는 햇살, 햇볕.
 
지난봄 처음 해 본 머위잎 쌈. 살짝 데쳐내서 찬 물에 헹궈낸 이파리를 씹어보고 깜짝 놀랐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것 중에 최고로 쓴 맛이었다. 입 속이 죄여 오고 침이 마구 마구 솟아났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찬 물에 담가서 쓴 맛을 빼내야 한단다. 밤새 찬 물에 담가 두었다 아침에 물을 갈아주고 출근했다 돌아와 아이들과 함께 둘러앉은 저녁 상에 초록의 이파리를 올렸다. 쓴 맛이 많이 빠졌지만 아직도 쌉쌀한 맛이 남아있는 머위잎은 씹는 식감도 적당히 질기고 슴슴한 쌈장과 참 잘 어울린다. 무를 많이 넣은 된장과 함께 먹으니 봄날의 밥상으로 꽤 만족스럽다.


그런 만족스러운 밥상 앞에서 중간고사 시험을 앞둔 중학생 첫째는 시험공부가 짜증스럽단다. 식탁에서는 될 수 있으면 즐거운 이야기만 나누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또 어쩔 수 없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하라는 뻔한 말을 해야 할 때가 또 지금이다.  그리고 지금은 이 아이가 쏟아내는 불평과 짜증을 순하게 들어주어야 할 때이다. 그러나 그렇게 다 받아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부를 막 열심히 하고 싶지 않고 적당히 하고 싶다는 이 아이에게 조금 화가 나기도 하는 것이 또 엄마 입장이다. 그러나 그 화를 꾹 참는다. 하기 싫지만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앞으로 네 인생에 얼마나 많은지 알기냐 하냐고, 지금 이 시간은 앞으로 네가 만나야 하는 짜증 나고 괴로운 상황 중에서 가장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시간이라고 정색하고 큰 소리로 말하고 싶지만 이 또한 참는다. 그리고 머위 잎쌈을 예쁘게 말아서 건넨다.


대신 공부를 해 줄 수도 없고, 대신 괴로운 순간을 견뎌 줄 수도 없는 엄마는 그저 밥상을 열심히 차려줄 뿐이다. 그러나 괴롭지만은 않다는 것을, 쓰디쓴 머위잎이 말간 물에 쓴 맛을 털어내고 소박하지만 봄 햇살을 뜸뿍 담은 정갈한 맛으로 오롯이 접시에 담기는 것처럼 그렇게 괴로운 시간이 완전한 순간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내 아이가 알아주기를 바란다. 그런 것을 알기엔 아직 어린가 생각이 들다가도, 내가 뭔가 잘못해서 이 아이가 이러는 건 아닌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나. 아~~~ 앞이 보이지 않는 어둔 터널 속에서 손으로 더듬더듬 짚어가며 이 길이 맞는지 확신할 수 없는 발걸음을 옮기는 것 같은 이 순간. 자식 기르는 일의 힘겨움. 이런 나에게도 머위 잎 쌈을 동그랗게 말아 준다. 처음엔 쓰지만 나중엔 좋을 거야 위로하며.


아들아, 이 밥상이 너에게 힘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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