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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Feb 10. 2019

초라하고 쓸쓸한

신경숙 "오래전 집을 떠날 때"

91년 시인 김지하는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는 제목의 논설을 조선일보에 실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가 변했다고 비난했다. 92년 김영삼은 국민투표로 뽑힌 두 번째 대통령이 되었다. 이제 운동의 모습은 더 이상 과격해서는 안될 것 같았다. 94년 1월과 2월 목사 문익환과 시인 김남주가 세상을 떠났. 한 시대가 끝나고 있었고, 나는 94학번 새내기가 되었다.  
 
94년도 최고의 히트상품 서태지. 그의 노래 "컴백홈"을 듣고 가출 청소년이 집으로 돌아왔다는 기사에 우리의 글쓰기는 과연 세상을 얼마나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는 글을 동아리 일지에 쓴 사람은 은경 언니였다.  
 
나는 매일매일 그에게 편지를 쓰고 있었다. 그가 헤어지자는 말을 남기고 강원도로 떠난 뒤에도 그의 변심을 나 스스로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또다시 그에게 편지를 썼다. 그에게 쓰는 편지에 신경숙의 소설을 많이도 적어 보냈다. 그를 사랑한 내 마음이, 그를 잃은 내 마음이 그녀의 소설에 활자로 인쇄되어 나를 이해하고 있었다.

글을 쓰는 사람이 된다면 그녀처럼 글을 쓰고 싶다고도 생각을 했던 것 같다. 실천이 담보된 진정성 있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고, 나의 글쓰기가 그 삶의 도구가 되었으면 싶었다.
 
어젯밤에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신경숙이 표절이라니 믿기지 않았지만 신경숙의 표절을 토로한 이응준의 글에서 그의 말처럼 한국 문단에 대한 깊은 슬픔이 느껴졌다. 무릎이 푹 꺾이고 마음 한 켠이 얼어서 떨어져 나가는 듯 참 아리고 슬펐다. 왜 그랬냐고 멱살잡이를 할 의욕도 없이 마음이 힘을 잃고 툭 떨어졌다. 그리고 화가 났다. 뭐 하나는 제발 좀 그냥 그대로 아름답게 있어주면 안 되는 거야? 책꽂이에 먼지를 쓰고 있는 그녀의 소설을 다시 읽었다. 이렇게 아름다운 글을 쓰는 신경숙이, 자신이 미국에서 유학을 하는 사이 민주화로 나아간 우리 사회에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는 백낙청 교수가 어떻게 이럴 수가~~~ 나는 아직도 마음에 '분란'이 인다.
 
신경숙의 단편 '전설'이 발표된 해가 1994년이다.
초라해진다.
슬픔이 외딴 방에서 저 혼자 깊어지는 밤이다.

(2015.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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