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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Apr 26. 2019

결국 이런 걸 하는구나

방어 조림

식탁을 깔끔하게 차리면 기분이 좋다. 나는 결혼하고 단 한 번도 반찬통에 담겨 있는 반찬을 그대로 상에 올린 적이 없다. 깨끗한 접시에 먹을 만큼 밑반찬을 들어 놓고, 따뜻한 김이 오르는 방금 만든 오늘의 주 메뉴를 큰 접시에 담아 오밀조밀 예쁘게 차려낸 저녁 밥상을 보고 있으면 흐뭇하다. 물론 라면도 끓여 고, 치킨도 시켜 먹지만, 그런 때라도 콩나물을 듬뿍 넣어 끓인 라면을 속이 깊은 면기에 먹음직스럽게 담아내고, 치킨을 기다리는 식구들 모두의 앞접시 옆에 길고 투명한 유리컵을 놓콜라를 따라 놓는다. 내가 식탁을 차리는 일이 괴로울 때는 남편과 사이가 좋지 않을 때다. 남편에게 화그의 못난 모습에 좌절할 때는 아예 밥상을 차려주고 싶지도 않다. 남편이 미울 때 그는 내게 내가 정성 들여 차린 식탁 앞에 앉을 자격이 없는 사람이다. 그러나 밥상은 차려준다. 그래서 몹시 괴롭다. 가락을 홱 던져버리고 싶지만 남편 국그릇 옆에 가지런히 놓는다. 도종환의 시 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 몹시도 괴로웠다 /어깨 위로 별들이 뜨고/ 그 별들이 다 질 때까지 마음이 아팠다'로 시작하는 "사랑하는 사람이 미워지는 밤에는"이라는 시가 있다. 미운 남편의 밥상을 차릴 때 이 시가 떠오른다.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고 밥상을 차리는 게 괴롭다. 하지만 그래도 밥상을 차린다. 늘 그렇듯 가지런하고 깔끔하게.


남편이 꼴도 보기 싫지만 밥상은 예쁘게 차리고 싶은 나도 음식하고 상 차리는 일이 늘 좋기만 하지는 않다. 그 좋기만 하지 않는 일 중에 생선을 맨 손으로 만지는 일은 더군다나 유쾌한 일이 아니다. 유쾌하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나 혼자 살았더라면 결코 생선을 맨손으로 만지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만을 위한 밥상이라면 직접 생선을 손질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하느니 냉장고에서 생선이 썩어나도록 두고 차라리 한 끼 건너뛰었을 것이다.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부모가 되면서, 하고 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일이 어디 생선 손질뿐이겠는가. 그러나 생선 손질은 할 때마다 하고 싶지 않은 일이다.


소읍의 군청 공무원이었던 친정아버지는 따로 약속이 없으면 늘 집에 와서 점심을 드셨다. 나의 고향은 바닷가 근처라 남편이 새벽에 바다에 나가 잡아온 생선을 머리에 이고, 오전에 이 집 저 집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다. 친정아버지가 회를 좋아해서 엄마는 그런 아주머니들 중 한 분의 단골이 되어, 우리 집에는 늘 오시는 아주머니가 계셨다. 엄마는 이 아주머니에게 물 좋은 생선을 사 솜씨 좋게 손질해 아버지의 점심상을 차렸다. 싱싱한 오징어를 투명하도록 얇게 썰어 초록 쪽파와 곁들이고, 아직도 아가미를 뻐끔거리는 가자미의 껍질을 벗겨내 뼈째 썰어 물미역과 함께 내놓고, 칼 등으로 껍질을 깨 오돌오돌 쫄깃한 소라살을 회로 상에 올렸다. 아버지는 초고추장에 그 신선한 회를 참 잘도 드셨다. 그래서 나는 어렸을 때 회가 특별하고 비싼 음식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그냥 일상적으로 상에 오르는 음식인 줄 알았다. 그리고 생선 손질도 누구나 다 잘하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결혼을 하고 막상 생선을 만지려고 하니 그 물컹하고, 다른 유기체의 죽은 살을 만진다는 느낌이 너무 싫어서 처음에는 고무장갑을 끼지 않고서는 살 때 손질해 준 생선을 씻기도 어려웠다. 처음 혼자 김장을 했을 때는 '내가 이제 이런 것도 해내는구나' 스스로가 참 대견하고 자랑스러웠지만, 처음 우럭을 손질해 내장을 제거하고 우럭 탕수를 했을 때 참 잘했다는 생각보다는 '이제 나는 이런 것도 하는구나' 내가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런데 무슨 이상한 결벽증인 줄은 모르겠지만 나는 내가 하는 음식의 재료 손질은 내가 직접 하고 싶다. 특히나 내장이 중요한 생선인 대구나 아를 살 때 다른 사람 손에 손질을 맡기기 싫어서 그냥 집으로 가져온다. 그러나 그 생선을 직접 손질할 때 여전히 입에서 '너무 싫어!'라고 하는 신음소리가 나온다. 한 번은 캠핑에 가서 구워 먹으려고 돌문어를 사 와 아일랜드에 얹어 놓고 뒤돌아 다른 일을 하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돌아 보니 문어의 피부가 물결처럼 흐르며 색이 변하고 있었다. 소스라치게 놀랐다. 살아있는 생명체가 나를 노려보는 섬뜩한 느낌에 그 문어를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결국 다음 날 문어가 완전히 죽기를 기다려 눈을 꾹 감고 머리에 있는 내장을 제거하고 빨판을 깨끗이 씻어 손질해 갔다. 정말 억지로 했다. 나에게 생선 손질은 그런 것이다. 하기 싫지만 해야 하는 것. 아버지가 좋아하는 생선회를 별 일 아닌 듯 차려내는 친정 엄마도 시집오기 전에는 회를 입에도 안 댔다고 한다. 비위가 약했던 엄마는 비린내 나는 음식은 쳐다도 보지 않았는데, 결혼을 하고 해야 하는 일이 되고 보니 잘하게 되었다고.


그런 게 안쓰럽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내가 위해야 할 사람들을 위해서 싫은 것도 해야 하는 처지.


몇 해 전 겨울 마트에 갔는데 싱싱한 방어가 있다. 방어가 내가 사는 동네의 마트까지 오는 일은 거의 없는데 심지어 싱싱하기까지 하다. 유심히 살펴 잘생긴 놈으로 골라 "이것 주세요"하니 "손질은 어떻게 해드릴까요?" 묻는다. 나는 "그냥 주세요"라고 대답하고 집으로 가져와 빠르게 손질하여 조림을 해 식탁에 올렸다.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잘 먹는다. 나도 잘 먹었다. 잘 차려진 식탁에서 식구들 모두 맛있게 먹어서, 내가 꾹 참고 방어를 손질하면서 느꼈던 거북함은 어딘가로 다 사라지고 없다.


이렇게 안쓰러운 처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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