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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Aug 12. 2019

인스턴트 냉면과 양파장아찌의 콜라보

반짝이던 오월의 너를 기억할게

아름다운 봄햇살이 눈부시게 내리던 지난 오월의 어느 일요일 오후, 나는 장아찌를 담았다. 햇마늘을 한 접 사 껍질을 까고, 줄기의 선명한 초록색이 열매의 윗부분에 그대로 내려앉아 있는 햇양파도 너무 크지 않은 것으로 두 망 사 씻어 두고, 남편이 좋아하는 마늘종도 두 단 사 짤막하게 잘라 준비했다. 마늘을 까느라 손이 아리고, 온종일 서서 간장물을 끓이고, 장아찌 담을 병을 씻고, 또 그 병을 더운물로 소독해 내느라 저녁에는 피곤해서 눈알이 빠질 듯하고, 어질러진 부엌을 정리할 힘이 조금도 남아있지 않았다. 너무 욕심을 내 한꺼번에 많은 것들을 만들었다. 그런데 욕심이 나는 것을 어쩌란 말인가. 나는 햇 마늘이나 햇 양파와 같이 그 해 봄, 밭에서 처음 나오는 것들을 보면 그 반짝이고 초록 초록한 것들이 참 예쁘기 그지없다. 일 년 중 단 한 때 나오는 새 순과 첫 열매. 자연이 길러낸 찬란하게 아름다운 시간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는 윤기 나는 처음. 그 처음의 아름답고 예쁜 시간을 담아내기 위해 장아찌를 만드는 게 아닌가 싶다.      


작년에 시어머님이 꿀에 재어 남편 먹이라고, 손수 농사지으신 햇마늘을 보내주셨다. 꿀병 가득 마늘을 재우고도 마늘이 남아, 작년에 처음으로 장아찌를 담았다. 반짝반짝 아기 뒤꿈치처럼 윤이나는 햇마늘을 식초에 담가 아린 맛을 빼고 간장, 식초, 설탕을 끓여 만든 물을 부어 뚜껑을 꼭 닫고 맛이 들기를 기다렸다. 기다림을 끝내고 드디어 간장물이 적당히 배어있는 마늘을 씹었더니 거짓말처럼 강한 매운맛은 사라지고, 적당히 알싸하고 향긋한 봄 마늘 향이 입안에 가득했다. 마늘장아찌 성공에 고무되어 텃밭에서 우리 식구가 채 먹지 못할 만큼 빠른 속도로 주렁주렁 달리는 고추를 따 와 고추장아찌를 만들고, 오일장에서 사 온 깻잎과 곰취로도 장아찌를 만들었다. 모두 맛이 좋았다. 특히나 고추 장아찌는 고추장 양념에 무쳐 상에 올렸더니 남편이 "이것도 엄마가 보내줬어?"라고 물을 정도였다. 나는 얼굴 가득 거만한 웃음을 띠고 이 한 접시가 상에 올라오기까지 내가 들인 정성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아직도 바람이 찬 봄날 고추를 심고, 고춧대를 세워 고추 줄기를 묶고, 풀을 뽑고, 징그러운 노린재를 잡고, 따가운 햇살을 온몸으로 받아며 따온 고추라고. 그 고추를 씻어 간장물에 담아 맛이 들기를 기다려, 고추장 양념에 깨를 솔솔 뿌려 이 밥상에 올렸다고. 말을 하다 보니 이 모든 것을 해낸 나 자신이 미치도록 대견했다.


삼시세끼 엄마가 해주는 밥을 먹을 수 있었던 시절엔 엄마가 상에 올리는 장아찌에는 젓가락이 자주 가지 않았다. 짠 음식을 원래 좋아하지 않은 터에, 엄마는 장아찌를 담으면 한 동안 계속해서 밥상에 장아찌를 올렸다. 밥상 어딘가에 거무스름하게 놓여 있는 장아찌 접시가 왠지 우울해 보였다. 차려주는 밥상에 숟가락만 들고 앉아 밥을 먹을 수 있으니 복에 겨워 그랬을 거다. 집을 떠나 도시로 나와, 먹는 것에 많은 시간과 정성을 쏟을 수 없이 바쁘게 살았던 스물의 시절엔 찬 물에 밥을 말아 그 위에 엄마의 버섯 장아찌를 하나 올려 후루룩 한 끼를 먹을 수 있으면 했었다. 그 시절엔 엄마의 음식이 그립기도 했지만, 아마도 엄마가 차려주는 밥상이 그리웠던 것 같다. 이제 매일 밥상을 차려주어야 하는 처지가 된 지금, 그 한 접시의 장아찌를 밥상에 올리기 위해 얼마나 많은 정성과 수고를 들여야 하는지 알게 된 지금, 나는 내가 만든  장아찌가 밥상 위에서 우울해 보이는 것이 싫다. 들인 정성과 수고로움만큼 화사하고 예쁘게 보였으면 싶다. 햇살 좋은 오월의 봄날, 밭에서 갓 나와 반짝이고 예뻤던  순과 첫 열매의 시간이 고스란히 드러났으면 싶다. 이제는 그 예뻤던 모습은 간장물에 맛이 드느라 어디론가 사라졌지만, 그럼에도 찬란히 아름다웠던 순간을 여전히 뽐내길 바란다. 그래서 오늘은 인스턴트 냉면을 삶아, 단촛물에 절인 초록 오이와 토마토 슬라이스와 함께, 통양파 장아찌를 얇게 썰어 절인 무 대신 냉면 위에 올렸다. 모양에 꽤 신경을 썼다. 다 만들어 식탁에 올려놓고 보니 보기에 좋다. 먹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은 둘째가 "아~예쁘다!" 하며 점심 식탁에 찰싹 붙어 앉는다. 나는 또 거만한 웃음을 얼굴 가득 퍼뜨리고 "이 양파 장아찌는 네가 생각하는 그런 장아찌가 아니야. 엄마가 봄부터 지금까지 한 땀 한 땀 맛을 들인 거야." 하며 우쭐하다.


인스턴트 냉면에 올리려고 통양파 장아찌를 얇게 썰어 놓고 보니 간장물에 갈색으로 물들어 먹음직하게 보인다. 시간을 지나면서 오월의 아름다웠던 반짝임을 잃고 깊은 맛으로 물든 나의 양파장아찌.


하루 종일 간장물을 끓이고 장아찌를 담느라 어질러진 부엌에서 지친 나의 얼굴이 문득 나이들어 보인다.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손이 많이 가고 힘이 든다. 깨끗하게 닦아놓은 장아찌 병을 보고 있으면 흐뭇해지면서 동시에 이제 이런 일도 뚝딱 해치울 수 있는 나이에 와 있구나 싶다. 이제는 반짝이던 나를 지나 간장물이 드는 장아찌 앞에서 흐뭇한 나이에 와 있다. 이제는 더 이상 반짝이지 않는다고 서글펐던 적이 있었다. 내 인생의 찬란하게 아름다웠던 시간을 이미 지나왔다고, 다시 반짝일 수 없다고. 물론 지금도 가끔씩은 여전히 서글프다. 그러나 그 시간을 그냥 아무 의미 없이 지나왔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그래, 지금이 가장 좋아."라는 느낌이 어떤 건지 조금은 알 것도 같다. 그러니 우울해 말고 우쭐하자. 반짝임을 잃은 대신 깊은 맛이 든 양파처럼 나도 어딘가 깊어져 있을 거라 믿고 우쭐하자. 들인 정성과 수고로움만큼 화사하고 예쁘자. 오월의 어느 일요일, 장아찌를 담으면서 힘들었던 나에게 고맙다. 이렇게 맛있고 예쁜 점심을 먹게 해 주어서. 그러니 우쭐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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