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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Oct 26. 2019

김밥을 단 한 줄만 만들 수는 없다

나는 점점 게으른 엄마가 되는 걸까?

열한 살 작은 아이의 가을 소풍날이다. 평소보다 한 시간 먼저 일어나 열 줄의 김밥을 싸고, 열 개의 햄 치즈 롤샌드위치를 만들었다. 큰 아이와 달리 작은 아이는 먹는 것에 적극적이지 않고 많이 먹지도 않는다. 이 아이의 도시락을 채우기 위해서 많은 양의 김밥이 필요치 않다. 롤샌드위치 두 개와 채 한 줄도 안 되는 김밥으로 아이의 도시락을 가득 채웠다. 이 조그만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장을 보고, 잠을 줄이고, 딱히 필요하지도 않은 아홉 줄의 김밥과 여덟 개의 샌드위치를 더 만들었다. 그러나 김밥을 단 한 줄만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적어도 나의 상식에는 그렇다.


김밥의 밥은 짓는 방법부터 다르다. 김밥은 밥이 망하면 다 망한다. 그래서 물 조절이 중요하다. 밥이 조금 고슬고슬하지만 절대로 되지 않도록 깨끗이 씻은 쌀에 물을 평소보다는 적게 그러나 너무 적지 않게 넣어야 한다. (밥이 된밥이 되는 순간 그 김밥은 다른 재료가 아무리 맛있어도 딱딱하고 잘 씹히지 않고 먹기 힘든 음식이 된다.) 그렇게 물 양에 신경 써 안쳐놓은 밥이 뜸이 들면 큰 그릇에 주걱으로 옮겨 담아 소금, 참기름, 식초로 간을 하여 식도록 한 쪽에 두고, (반드시 밥은 식혀야 한다. 뜨거운 밥으로 김밥을 말면 김 비린내가 나서 먹을 수 없다.) 마트에서 사 온 김밥용 단무지는 물기가 빠지도록 채반에 받혀두고, 불에 시금치를 삶을 물을 올리고, 시금치를 다듬고, 당근을 다듬고, 달걀을 풀어 준비하고, 이제 물이 끓으면 굵은소금을 넣고 데쳐낸 시금치를 소금과 참기름으로 무쳐두고, 당근을 채치고, 달걀의 지단을 두껍게 부쳐 식게 놓아두고, 달걀을 부쳐낸 팬에 채친 당근을 볶아내고, 마트에서 사 온 김밥햄을 표시된 금대로 잘라 준비해 놓고, 양손에 투명 비닐장갑을 끼고, 김 위에 적당히 식은 양념한 밥을 납작하게 깔고 준비된 시금치, 단무지, 햄, 식은 후 길게 자른 달걀, 그리고 안 움큼의 당근 채 볶음을 넣고 말아 내는 것, 이것이 내가 한 줄의 김밥을 만드는 방법이다.


이렇듯 들어가는 재료가 많고 각각의 재료를 따로 준비해야 해서 나는 김밥을 만들면 늘 열 줄을 만든다. 마트에서 파는 김밥용 김 봉지에 김이 딱 열 장씩 들어가 있는 것도 내가 열 줄의 김밥을 만드는 이유이기도 한다. 뜯어 놓은 김은 눅눅해져 다시 먹기가 쉽지 않고, 냉동실에 돌아다니다 결국 냉장고 청소할 때 버려지게 된다. 그리고 나는 손이 큰 사람, 음식을 많이 하는 사람이다. 남아서 버릴 정도로 많이 하지는 않지만 두 개 하기는 많고 한 개 하기는 적을 것 같으면 한 개 반을 하지 않고 두 개를 할 정도로만 손이 크다. 그러나 아무리 적당량의 음식을 잘하는 사람도 단 한 줄의 김밥을 말기 위해 김밥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다. 보통 단 한 줄의 김밥이 필요한 경우에는 김밥을 김밥집에 가서 산다.


그러나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사 온 김밥으로 싸줄 수는 없다. 소풍 가기 전날 다음날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과 설렘으로 쉽게 잠들지 못하다 일찍 일어나면 부엌에는 참기름 냄새가 가득하고, 참기름으로 반질반질 윤이 나는 둥근 통 김밥을 칼로 써는 엄마 옆에 찰싹 붙어 앉아 김밥 다리를 얻어먹었던 기억으로 말미암아 소풍날 김밥은 온 집안에 참기름 냄새를 퍼뜨리면서 엄마가 직접 만들어 주는 것으로 나는 알고 있다. 지금은 길거리마다 넘쳐나는 게 김밥집이고 예전만큼 김밥이 어쩌다 오랜만에 먹는 반가운 음식도 아니어서 아이들 도시락에서는 오히려 김밥이 찬 밥 신세다. 그러나 "아무거나 사서 보내"라고 말하는 남편도 정말 내가 김밥을 사서 아이 손에 들려 보내면 섭섭할 것이다. 그래서 아이 소풍날이 다가오면 전 날부터 장을 보고 알람을 다시 맞춘다. 매일 하는 고생은 아니지만 그 작은 도시락을 만들기 위해 일찍 시작된 나의 아침이, 그 아침으로 말미암은 나의 출근길이 피곤한 것은 사실이다. 어서 일어나서 가방 챙기라는 내게 아이가 가방 타령을 한다. "이 가방에다 넣어가면 되잖아!"라고 했더니 "엄마 마음대로 하세요"라며 삐진 얼굴을 한다. "엄마가 네 도시락 싸느라고 일찍부터 일어나서 힘든데 왜 아침부터 삐지고 그래!" 나도 짜증이 난다. 아이를 위해서 직접 김밥을 만들어 도시락을 싸주기로 한 것인데 정작 아이에게는 김밥 만드는 피곤함 때문에 짜증을 내고 만다. 그렇다면 차라리 김밥을 사 주고 피곤하지 않은 다정한 엄마가 되는 게 나을까? 내가 가진 소풍날 김밥 도시락에 대한 고정관념 따위 버리고 친절한 엄마가 되었어야 맞을까?


얼마 전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가 소풍을 갔다. 현장학습비에 점심값까지 포함되어 있어서 나는 도시락을 쌀 필요가 없었다. 속으로 '정말 편하구나' 참으로 홀가분하고 기뻤다. 흡사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어 더 이상 유치원에 식판 도시락을 씻어 보낼 필요가 없게 되었을 때의 기쁨과 같았다. 퇴근해 돌아와 아이 유치원 가방에서 꺼내 고무 패킹까지 분리해 내서 씻고 말려 다음 날 또다시 아이 가방에 넣어주어서 보냈던 식판 도시락. 그 도시락에서 해방되었을 때의 자유로움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그 아이가 초등학교 일 학년 첫 소풍을 갈 때 도시락을 싸면서 기쁘고 즐거웠던 나도 생각났다. 나는 점점 게으른 엄마가 되고 있는 것일까?

작은 아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첫 소풍에 싸주었던 도시락. 애쓰고 싶었고 그 애씀이 즐거웠는데 이제는 애써야 함이 부담스럽다. 나는 점점 게으른 엄마가 되고 있는 걸까?


4학년이 되어서야 저 혼자 잘 수 있게 된 작은 아이는 아직도 가끔씩 한 밤중에 일어나 엄마를 찾는다. "엄마!"하고 부르는 아이의 목소리가 거실 어둠을 타고 안방으로 들어온다. 남편이 깰까 봐 얼른 아이방으로 갔다. 잠결에 침대에 앉아있는 아이가 "상어가 있어요" 한다. "꿈에 상어가 나왔어?" 아이를 눕혀 꼭 안고 물었더니 다시 잠에 빠져 눈을 감고도 고개를 끄덕인다. 어제 저녁 식탁에서 소풍 가서 재밌었냐는 물음에 해양박물관에서 본 상어와 거북의 모형이 눈만 빼고 다 진짜라는 말을 하더니 꿈에 상어가 나오는 나쁜 꿈을 꾼 모양이다. 아직도 이렇게 어린양을 하는 걸 보니 아이가 컸어도 여전히 엄마 손이 많이 필요한가 싶어 미안해진다.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애쓰지 말고, 나쁜 엄마가 되지 않기 위해 애써야겠다고 생각하며 오랜만에 작은 아이 침대에서 함께 잠을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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