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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May 02. 2019

우리는 참 서툰 부모였다

시험기간 아들에게 차려주는 돈가스

올해 고등학생이 된 큰 아이의 중간고사 기간이다. 시험기간에는 자율학습을 하지 않아 아들이 나보다 더 일찍 집에 돌아와 있다. 나는 평소보다 늦은 퇴근에 저녁이 늦어질까 빠르게 움직인다. 감자를 냄비에 올려놓고, 양배추를 얇게 썰어 찬물에 담가 채에 받히고, 스테이크 소스와 케첩, 꿀, 간장, 후추를 물과 함께 부어 불에 올리고, 기름을 끓여 마트에서 사 온 냉동 돈가스를 튀겨낸다. 아침에 남은 두반장 볶음밥을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감자를 으깨 소금과 마요네즈를 넣어 섞어놓은 다음 돈가스를 한 번 더 튀긴다. 접시를 꺼내 준비한 음식을 나누어 담고, 커트러리를 놓고 물 컵에 물을 따른다. 이것이 시험 보는 아들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다. 대신 공부를 해 줄 수 없고, 대신 시험을 봐줄 수도 없는 나는 이렇게 밥상을 차려주고, 교복을 빨아 다려주고, 잘 다녀오라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하지 않으면 더 좋은 잔소리도 한다.


저녁을 다 먹고 언제나 그렇듯 누군가 문을 부수고 쳐들어 오기라도 할까 봐 방문을 굳게 닫고 자기 방에 들어 가 있다. 그 꼭 닫힌 방문을 노크하고 들어가 (노크를 반드시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무척 싫어한다) 시험공부하는 아이에게 묻는다.

"엄마가 어떻게 도와줄까?"

"...... 방치?"

신경 쓰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겠다는 건지, 그냥 내버려 두라는 건지 어쨌든 어서 나가라는 말인 줄 알고 섭섭하고 염려되는 마음을 숨기고 장난처럼 양손으로 목 언저리를 안마하듯 주무르며 "어이구!!!" 한다. 아들은 아프고 간지럽다고 몸을 비튼다. 그 순간 아이의 얼굴에서 웃음기를 확인하고 조금은 안심이 되어 방을 나온다.


나를 비로소 엄마라고 불리게 해 준 아이, 부모로서 느끼는 모든 처음을 가져다준 아이, 남편과 나를 '우리'라고 더 튼튼히 묶어준 아이. 바로 나의 첫 아이. 이 아이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이 아이로 미암아 부모로서 겪는 모든 처음을 맞이하고 있다. 처음이었기에 감동적이고 기뻤던 적도 많았지만, 처음이어서 서툴렀. 아이를 낳고 사 개월 만에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집에서 세 시간 떨어진 친정에 아이를 맡기고 일을 했다. 당시엔 일을 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나의 몸과 마음에서는 모성 호르몬이 넘쳐나고 있었으나 그것을 쏟아부을 대상이 없어, 깊은 상실감과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주말마다 아이를 보러 갔지만 아이를 두고 떠나 올 때마다 몹시 슬펐다. 그래서 아이의 첫 돌이 지나자마자 일을 그만두고 아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남편과 나는 아이를 데려온 것에만 기뻐하고 아이와 함께 살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조차도 몰랐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자식을 갖는다는 의미가 내 인생을 송두리째 리셋해야 한다는 것이라는 걸 자식을 갖기 전에 알았더라면, 나는 다른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아무 준비 없이 첫 아이를 낳고 그 아이를 맞이 했다. 집안의 서랍이란 서랍은 다 열어젖히고, 눈에 보이는 모든 물건을 만져보고, 잠을 자고 있지 않는 동안에는 내 시야에 늘 붙들어 두어야 하는 돌쟁이를 돌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동안 아이를 떨어뜨려 놓았다는 죄책감에 아이에게 무엇이든 최고로 좋은 것을 주고 싶었던 나는 천기저귀를 삶아 쓰고,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고, 수 없이 많은 책을 읽어 주었다. 의사소통을 제대로 할 수 없는 돌쟁이와 하루 종일 지내는 것은 나를 매우 지치게 했다. 남편이 퇴근하고 돌아와 이제 제대로 된 대화를 할 수 있는 상대를 앞에 두고도 아이를 씻겨 재우면 나도 녹초가 되어 곯아떨어졌다. 그런 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나는 그 와중에도 교대 근무하는 남편의 도시락을 아침마다 싸서 들려 보내고 퇴근하여 돌아오는 남편을 위해 식탁을 맛있게 차렸다. 이제 아이와 함께 있으니 우리는 누구보다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우리의 완벽한 행복을 위해서 애쓰고 싶었고, 그동안 아이와 떨어져 지내면서 우리 식구 모두가 겪었던 결핍을 없었던 것처럼 닦아내고 싶었다. 그래서 뭐든지 다 잘 해내고 싶었다. 그 날이 성탄절이었던가 아무튼 특별한 날이었나 보다. 퇴근하는 남편을 위해 돈가스를 튀기고 와인잔에 와인도 채워 거실 앉은뱅이 상에 차렸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다가와 상위의 음식을 막 만지려 했다. 남편이 놀라서 음식을 모두 식탁으로 옮겼다. 나는 아이를 안고 남편 맞은편에 앉았는데 또 아이가 손으로 상 위를 휘젓는 바람에 와인 잔이 넘어졌다. 남편이 갑자기 "도대체 밥을 먹을 수가 없어!!!" 라며 큰소리로 화를 냈다.


남편이 화를 낸 대상이 누구였을까? 아이였을까? 하필 아이를 안고 식탁 앞에 앉아 있던 나였을까? 돌쟁이 앞에 차려진 가당찮은 와인잔이었을까? 아니면 그 모든 상황이었을까?


우리는 참으로 서툰 부모였다.

우리는 여전히 서툰 부모이고, 그 돌쟁이는 중학교 일 학년이 되어 열네 번째 생일을 며칠 남겨두지 않은 때였다. 나는 이문열의 삼국지 열 권 전집을 생일 선물로 사주었다. 좀 더 기다려 그 책을 권했어야 했는데, 아이가 꼭 그 책을 읽기를 바라는 마음이 너무 커 "이건 꼭 읽어야 해!"라고 강요하는 선물이 되었다. 책을 받고 무척 기뻐하며 순식간에 앉은자리에서 열 권을 모두 읽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나의 바람은 역시나 나의 바람일 뿐이었고, 닌텐도를 선물 받고 싶었던 아이는 무척 실망했다. 실망한 아이를 데리고 캠핑을 떠났다. 늦가을 투명한 햇볕에 앉아 있는 아이에게 종이 열 장에 엄마 아빠에게 생일선물로 받고 싶은 것 열 가지를 마음대로 쓰라고 했다. 그리고 그 종이를 가까운 곳에 숨겼다. 십 분의 시간을 주고 그 시간 동안 아이가 찾는 모든 종이에 적힌 것을 생일선물로 주겠다고 했다. 아이는 진심이냐고, 정말로 다 사 줄 거냐고 거듭 확인하고 흥분해서 캠핑장 여기저기를 마구 뒤졌다. 십 분이 거의 끝나 갈 때쯤 드디어 하나의 종이를 찾아 내 닌텐도가 적혀있는 것을 보고는 펄쩍펄쩍 뛰면서 좋아했다.


그 모습을 모면서 남편도 나도 무척 좋았다. 십 분이 끝나도록 하나의 종이도 못 찾아서 또 실망하면 어떻게 하나 걱정도 살짝 했던 터라 아이의 좋아하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무척 기뻤다. 그리고 속으로 말했다.


'아들아, 너를 얻고 엄마 아빠도 그렇게 기뻤단다.'


우연인지 오늘 저녁 메뉴가 돈가스다. 첫 아이를 기르며 서툴기만 했던 우리 부부의 모습이 떠오른다. 말하지는 못했지만 말해주고 싶었다. 네가 공부를 못해도, 시험을 망쳐도, 너는 우리를 부모로 만들어 준 귀한 아이라고. 엄마 아빠도 더 좋은 엄마 아빠가 되려고 노력한다고. 아마 말로 내뱉었으면 갑작스러운 고백에 멋쩍어하며 "에이, 어머니 왜 이러세요? 공부하고 있잖아요" 그랬을 것 같다.


아들아, 늘 너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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