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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Jul 19. 2020

천천히 스며드는 것의 힘, 맛있기도 하고 두렵기도 한

고등어 무조림

마트에 가니 해동 고등어가 있다. 냉장고에 김치 버무리고 남겨놓은 무 반 개가 생각난다. 고등어 무조림을 해야겠다 싶어 두 마리를 "조림용으로 소금 치지 말아 주세요" 손질을 부탁하고 마트를 한 바퀴 돌아 장보기를 마치고 수산물 코너로 돌아오니 손질된 고등어를 건네준다. 그런데 둥글게 통으로 잘라진 토막이 아니라, 배를 가르고 넙적하게 손질된 고등어다. 분명 조림용으로 손질해달라고 말했는데 구이용이다. "조림용으로 부탁드렸는데......"라고 웃는 얼굴로 말끝을 흐리며 부탁한 것과 다르게 손질된 것에 대해서 한 마디 하고 싶었지만 고등어 두 마리 사면서 너무 까탈스럽게 구는 것 같아 "고맙습니다"하고 받아 들고 돌아왔다. 그래서 오늘은 구이용으로 손질된 고등어로 조림을 만든다. 고등어를 쌀뜨물에 담가 놓고 생강과 후추가 듬뿍 들어간 고춧가루 양념장에 작년에 만들어서 지금까지 잘 먹고 있는 개복숭아청을 넣어 잘 개어 둔다. 무를 납작하게 썰어 냄비 바닥에 깔고 그 위에 양념장을 숟가락으로 살살 펴 발라주고, 쌀뜨물로 비린내를 한 번 씻어낸 고등어를 반으로 잘라 무 위에 올리고 고등어 위에 양념장을 한 번 더 얹어 멸치, 양파, 파를 우려낸 밑국물을 넣고 끓인다. 끓어오르면 파와 청양고추 썬 것을 넣고 무에 맛이 들기를 기다리기만 하면 오늘 저녁 밥상의 메인인 고등어 무조림이 완성된다. 이 모든 과정은 무를 맛있게 하기 위함이다. 고등어도 고춧가루 양념도 모두 무에 좋은 맛을 들이기 위한 부재료들이다. 아마 저녁 식사가 끝나면 접시에 고등어가 남으면 남았지 무는 하나도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금요일 저녁 밥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불금스럽지 않지만 아이들도 국물에 밥을 비벼 고등어의 기름과 고춧가루 양념이 부드럽게 스민 무를 잘라 밥 한 그릇을 맛있게 비워낸다.


소박한 재료인 무가 저녁 밥상의 메인으로 등장하기 위해 깊은 바다에서 잡혀와 냉동되었던 고등어와, 일 년 전 산속에 핀 꽃에 벌이 날아들어 열매로 맺혔던 야생 개복숭아를 설탕에 절여 백일 동안 숙성시켜야 만들어지는 개복숭아청이 동원된다. 그러나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은근히 조려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약한 불에 시간을 두고 양념을 졸여 양념이 무 속으로 스며 들어가는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시간을 두고 맛을 들이는 음식을 자주 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어렸고 육아도 살림도 서툴렀던 나는 출퇴근과 맞물려 언제나 바쁘게 밥상을 차려내야 했다. 그래서 시간을 들이는 음식으로 밥상을 차려내는 일이 부담스러웠다. 이제 아이들이 커 손이 덜 가고 나도 손이 빨라져 밥상 차리는 일이 예전처럼 급하지 않게 된 지금 오래 끓여 맛을 내는 국물요리나 시간을 들이는 장아찌 같은 음식을 전보다는 부담 없이 해낸다. 어느덧 나는 그런 나이에 와 있나보다. 시간을 들이는 일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나이.


시간을 들이는 일이 소중한 만큼 시간을 들여 무언가에 스며드는 것이 참으로 조심스러워야 다는 생각도 한다. 재작년 봄 식구들과 산에 갔다 운 좋게 어린 고사리가 올라와 있는 곳을 발견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고사리를 꺾었다. 아이들도 똑똑 고사리 꺾는 재미에 빠져 산을 내려올 줄 모르고 한 움큼씩 꺾어왔다. 나는 통통한 조기를 사 와 고사리를 삶아 양념에 버무려 생고사리 조기찜을 했다. 김이 오르고 간을 보려고 양념을 떠먹었는데 독약을 먹는 듯 썼다. 깜짝 놀랐다. 너무 써서 삼키지 못하고 뱉어내고도 쓴맛이 입에 남아 찬 물로 여러 번 입을 헹궈냈다. 생고사리를 삶아 물에 하루 정도 담가 독성을 제거해야 했는데 그것을 놓친 나에게 화가 났다. 음식뿐 아니라 봄날 고사리를 꺾으며 즐거웠던 우리의 시간마저 내가 모든 걸 망쳐버린 것 같아서 화가 났다. 그 와중에 통통한 조기살은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조기살을 떼어먹어보니 그 마저도 썼다. 그 사이 쓴 맛이 스며든 것이다. 까웠지만 다 버렸다. 조리법을 모르는 음식을 하면서 꼼꼼하게 그 과정을 미리 확인하지 않았던 스스로를 자책하며 '독은 빨리도 스며드는구나'생각했다.  


나에게 독이 된다면 그것이 나도 모르는 사이 나에게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것을 늘 경계해야 한다. 그것을 경계하지 않아서 다른 이들까지 괴롭게 만드는 예는 우리 주변에 허다하다. 결혼식 청첩장까지 돌려놓고 이해할 수 없는 믿음에 스며들어 있던 여자 친구 때문에 결혼을 없던 일로 돌릴 수밖에 없었던 내 친구. 눈에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흐름을 연마하여 건강을 돌보는 것이 최선이라는 생각이 스며들어 그것  외에 다른 것은 다 소용없다고 굳게 믿는 아버지 때문에 원하지 않았지만 할 수 없이 모르는 사람들과 외딴곳에서 몇 달을 지내야 했던 몸이 약한 후배. 멀리 갈 필요도 없다. 핸드폰에 스며들다 못해 빠져 버려 "핸드폰 뺏는다"는 말에 부모 앞에서 세상을 다 잃은 듯한 표정을 하는 내 아이들까지... 스며듦을 경계해야 한다.


우리 식구가 한 주먹씩 꺾어왔던 어린 고사리.

나 역시 스며듦을 경계하지 않았던 날들이 있었다. 그때는 그에게 스며드는 게 행복했다. 결혼을 하고 나의 어떤 부분은 스스로 퇴화시키면서 그와 딱 맞는 퍼즐이 되어 그에게 스며들어 있는 것이 대체로 편안했다. 가끔 불안할 때도 있었지만 스스로 불안의 더듬이를 잘라 원래부터 불안하지 않았던 것처럼 과장된 웃음을 웃었다. 이제 그에게 스며들어 돌이킬 수 없게 된 것이 나에게 독인지 아닌지 조차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양념이 맛있게 스며든 고등어 무조림의 무를 보며 천천히 스며들어 이전과는 달라지는 것, 그것의 달콤하고도 두려운 힘을 생각한다. 여전히 남편에게 화난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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