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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dache Aug 11. 2020

프라이팬 바꾼 날, 기분 좋은 날

결국엔 남편 험담

나는 손이 헐거운 사람이다. 자주 물건을 놓치거나 떨어뜨린다. 남편은 내가 물건을 주고받을 때 끝까지 물건을 보며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툭 던지거나 건성으로 받아서 자주 물건을 놓친다고 비난하듯 말한다.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유심히 관찰했을 사람이 한 말이니 어디 정말 그런가 하고 나를 지켜보니 과연 남편의 말대로다. 고치려고 하지만 수십 년 습관이 한 번에 고쳐질 리 만무한데 남편이 내가 물건을 주거나 받을 때 "이것 봐, 또 그러잖아. 끝까지 보라고!" 한다. 남편은 근검절약이 몸에 밴 부모님 밑에서 자라 물건을 아껴 쓰고 소중히 다루는 사람이라 물건이 깨지고 망가지는 것을 무척 싫어한다. 나는 그런 남편의 태도가 섭섭하다. 까짓 물건이 얼마나 중요하단 말인가. 저의 비난에 깨지고 망가지는 내 마음은 안중에도 없이 자기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알려줬는데도 왜 자기 말을 안 듣느냐고 화를 내는 남편의 태도에 나는 정말 할말하않이 된다. 요즘은 입을 열었다 하면 남편 험담이고 글을 썼다 하면 남편 디스다. 내가 이 남자를 사랑했던 일은 전생의 일인 듯 참으로 아득하다.


나를 비난하는 남편의 태도에 분한 마음을 안고 설거지를 하게 되면 애꿎은 그릇에 분풀이를 하다 그만 그릇을 깨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나는 손이 헐거운 사람일 뿐 아니라 그릇에 분풀이를 하며 설거지를 하는 사람이라서 비싼 그릇을 사지 않는다. 내 부엌에는 오천 원을 넘는 그릇이 없다. 그러나 비싸지 않다고 해서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십 년도 더 전에 신용카드를 만들고 받은 노랑과 초록의 접시 세트와 역시 산지 십 년도 넘은 가장자리에 줄무늬가 둘러진 다이소에서 산 오천 원짜리 디너 접시는 내가 가장 아끼는 그릇이다. 물건의 가치란 가격표에 의해서 결정되는 게 아니라 내가 그 물건을 애정하게 되는 순간 결정된다. 아무리 싼 물건이라고 해도 내가 소중하게 여기면 나에게 소중한 그 무엇이 된다. 그래서 오래 간직하고 싶고 망가지고 부서지면 속이 상한다. 하물며 물건이 그러한데 사람은 오죽하겠는가. 나의 부주의함을 비난하기보다 부주의한 사람일지라도 마음이 다칠라 소중히 여겨주어야 할 텐데 부족한 모습만 비난하고 있는 남편은 정말 남의 편인가 보다.   


부엌살림 중에 내가 좋아한다고 해서 계속 간직할 수 없는 것도 있다. 코팅된 프라이팬은 코팅이 벗겨지면 금속성분이 우러나온다니 코팅이 벗겨지면 어서 새 것으로 바꾸어야 한다. 그런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내 손에 익은 물건이라 버리기를 주저하다 타이밍을 놓치는 경우도 있다. 오래 사용해서 너무 익숙해져 이것을 대체할 다른 무언가가 없다고 주저하는 시간. 너무 오래 사용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해 버리려고 내놓은 물건을 보면 어딘가 마음이 짠하다. 어제까지도 내 집에서 내가 사용하던 물건이 있던 자리에 있지 못하고 한데서 있는 것을 보면 낯설고 마음이 좋지 않다. 그러나 그런 마음은 잠시일 뿐 새 것은 역시 좋다. 두껍게 코팅된 프라이팬에 달걀 프라이를 매끈하게 부쳐내니 기분이 이렇게 좋을 수가 없다. 버리기를 주저했던 나의 마음은 어느새 구질구질한 살림살이는 모두 내다 버리고 다 새 것으로 바꾸고 싶다. 살림살이뿐 아니라 내 맘에 안 드는 것은 모두 싹 다 바꿔버리고 싶다.


    

남편은 대패삼겹살을 좋아하지 않는다. 육즙이 다 빠져나간 듯 바삭하게 구워진 식감이 싫단다. 아이들은 그런 걸 좋아하는데 남편이 싫어해서 오늘은 새로 산 움푹한 팬으로 굴소스를 넣고 대패삼겹살 숙주볶음을 했다. 남편이 잘 먹는다. 또 잘 먹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다. 이 타이밍에서 유지태의 대사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가 떠오른다. 사랑은 변하지 않는다. 다만 구질구질해질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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