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며들어도 돌아왔다.
꽤나 여러 회사를 다녔다.
각 회사마다 분위기도, 드나드는 사람들도 모두 달랐다.
그 곳들에서 나는, 동료들의 영향을 유난히 많이 받는 사람이었다.
작게는 옷 스타일, 크게는 말투조차 바뀌어갔다.
적응하거나 살아남기 위한 전략을 익힌 건 아니었다.
다만, 내 자아가 사라진 듯
그들의 말투가 자연스레 내 언어가 되었고,
공작새 같은 옷차림을 비교하며 내 옷차림도 변해갔다.
어떤 곳에서는 운동복 차림으로 출근했고,
어떤 곳에서는 원피스와 구두만 신었다.
그렇게 모은 옷들로 내 옷장은 숨 쉴 틈이 없었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각자의 관심사를 한 마디씩 들을 때,
나만 몰랐던 새로운 세계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에 흥미를 느낀 건 아니었다.
관심 없는 연예인 가십이나,
당장 내가 투자하지 않을 주식이야기.
그 외 정치, 경제, 종교의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에 반응하지 못하는 내가,
때로는 덜 자란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변화를 먼저 알아차린 건 나의 연인이었다.
"자기는 회사 갈 때마다 새로운 사람이 되는 듯해,
전혀 다른 사람 같아."
그때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자아가 없는 걸까?
너무 쉽게 주변에 휘둘리는 건 아닐까?'
걱정만 가득한 나에게 친구 A는 이렇게 말했다.
"자아가 없는 게 아니라,
네가 스펀지 같은 사람이라 그런 거야.
잘 스며들고, 잘 어울리는 사람.
기업은 그런 사람을 원하지."
그 말이 조금 위로가 되긴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들과 멀어지게 되면
나는 다시 자연스럽게 본래의 나로 돌아왔다.
외모에 신경쓰는 시간이 줄어들고,
관심없는 연예인들의 이야기를 끊어냈다.
계속 쏟아지는 트렌드를 따라가는 사람이 아닌
불편한 옷과 구두를 벗고,
청바지에 운동화를 신는 사람이 되었다.
뭐, 건강을 챙기던 사람들 덕분에
나는 내 건강을 돌아 볼 수 있었던건 좋은 점이었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 다시 나로 되돌아왔다.
기업에서 원하는 삶.
그게 나의 삶이었을까?
그 힘이 사라지고 나면, 나는 다시 본래의 나로 되돌아왔다.
나를 지키면서 살고 싶어서
자꾸만 사회에서 튕겨져 나오는 건 아닐까.
아무 힘 없이도, 나는 나일 수 있었다.
그게, 나만의 관성의 법칙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