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을때마다 꺼내 볼 나의 선언문
나의 긴 연애는 맞춰주는 연애였다.
지금도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명확하게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기에,
연애를 처음 시작하던 20대의 초입엔 더더욱 나에 대한 정체성이 불분명했다.
성숙했던 그에게 맞춰 살아가는 건, 당연한 듯 느껴졌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나의 시절을 통째로 놓쳐버린 것 같다.
그는 여름을 싫어했다.
뜨거운 햇살에 몸이 녹아내리는 기분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바닷가에 나란히 앉아 본 적도,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차가워진 수박을 먹어 본 적도 없었다.
여름날, 한강의 보랏빛 야경을 보며 치맥을 마시던 친구들의 사진을 보며
'언젠가 나도'라고 생각했다.
새벽 드라이브, 별빛 캠핑, 스키장, 꽃놀이.
다들 겪는다던 청춘의 순간들이
나에게 언제나, 조금 먼 이야기였다.
그는 낚시를 좋아했지만,
겨울에 함께 빙어 낚시를 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걸 좋아했던 그는
봄에는 2박 3일 낚시 여행을 떠났고,
여름에는 당구장에서 시간을 보냈고,
가을에는 모임에 나가 술을 마셨고,
겨울에는 따뜻한 영화관을 찾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그에게 맞춰주던 나에게서는,
20대라는 시절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내가 꿈꾸던 청춘과 낭만의 순간들은
이미 지나가버린 뒤였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레 나에게도 올 줄 알았다.
당연히 찾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낭만은 계속 미뤄졌고,
나는 추억을 놓쳤다.
이 글은 그 사람을 원망하는 글은 아니다.
그도 자기만의 방식으로 나를 아껴주었고,
나 역시 그땐, 그게 사랑이라 믿었다.
그저, 나를 너무 빨리 어른으로 만들어 버린 그 시절이
지금 와서 안타깝게 느껴질 뿐이다.
그의 잘못이라기보다는,
그때 내가 나의 바람을 말할 줄 몰랐다.
지금이라도 나는,
나의 낭만을 찾고 싶은 사람이다.
그때 나는, 나로 살지 못했다.
누군가에게 맞춰주는 걸 사랑이라 믿었던 그 시절의 나를,
지금은 조금 더 다정하게 안아주고 싶다.
그래서 이제는,
내 시절의 중심에 나 자신을 앉히는 연습을 하려 한다.
물론, 청춘과 낭만이라는 순간들이
꼭 누군가와의 연애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부족해도, 서툴러도
스스로 선택하고, 도전하는 지금이 내가
오히려 더 낭만적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살아가는 순간순간이
비로소 내 청춘이 되어줄 것이다.
청춘은 나이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가고 있느냐로 결정된다.
선택하고 나아가는 지금,
나는 가장 푸른 계절을 지나가고 있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