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편의 영화가 될 수 있을까?
어린 시절 나를 키운 것은 영상매체였다.
내 친구처럼 곁에 있었고, 꿈처럼 빛나던 세계였다.
아침 일찍 행복하게 눈을 떠서
맑은 햇살에 배신 따위는 없는 친구들
다 같은 목표를 향해 학교옥상에서 밴드연습을 한다.
내 인생도 저런 날이 올까?
교복 입는 시기는 지나가 버렸고,
학교 옥상문은 현실처럼 굳게 닫혀 있었다.
“너와 함께라면, 난 뭐든 할 수 있어.”
목숨도 걸고, 가문도 버리고, 모든 걸 다 던지는 사랑.
TV속에서 단골멘트로 나오던 그런 일도
내 인생에는 없었다.
지금은 저런 격정 멜로는 별로 하고 싶지 않지만, 한 때 꿈꿔보기는 했었다.
갑자기 하늘의 문이 열리고,
우주에서 외계인이 침략한다거나
제약회사에서 일하는 괴짜 연구원이 좀비바이러스를 퍼트린다거나
출생의 비밀이 밝혀져
대기업 회장의 숨겨진 손녀딸이 되는 전개.
내 인생에는 그런 드라마틱한 이벤트는 없었다.
그런 장면들은 언제나
나의 화면 바깥에서만 펼쳐졌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기 때문일까,
아니면 내 이야기에 주인공이 되는 법을
이제야 배우고 있는 걸까.
그저 조용한 일상.
출근 버스 안에서 이어폰으로 노래를 듣고,
봄날에 벚꽃길을 걷고,
편의점 안에서 삼각김밥으로 끼니를 해결한다.
극적인 반전도, 멋들어진 배경음악도 없지만
이 조용한 삶에서도 나만의 장면은 있으니까.
아무도 기억하지 않아도,
나는 내가 살아낸 이 이야기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