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토 한 알

방울토마토가 가장 맛있을 시간

by 해다니

그의 방에는 나의 흔적이 있다. 우리가 함께 사온 화분에, 함께 심은 방울토마토 씨앗. 그가 신선한 야채를 먹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일이었는데, 어느새 우리 둘의 소중한 일과가 되어버렸다.


씨앗이 발아되는 순간부터, 작은 떡잎이 고개를 내밀 때, 첫 번째 본잎이 나올 때, 노란 꽃이 피었을 때.

매일밤 전화로 그 작은 변화들을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일과였다.

밤마다 토마토를 핑계로 통화를 했다.


줄기가 굵어지고, 잎이 커질수록 풍성하게 열릴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초보 식집사에게는 너무 어려운 일이었을까? 방울토마토는 단 하나만 열렸다. 하나뿐인 방울토마토 그래서 더 귀하고 소중했다.

작은 알갱이가 어느덧 크기를 키워가고, 초록에서 노랑으로, 노랑에서 주황으로, 주황에서 붉은색으로 완전한 방울토마토의 모양이 되어가는 과정을 확인했다.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는 토마토를 보며 나를 생각했고, 나는 그가 보내준 사진을 보며 애정의 크기도 자라 갔다.


"오늘은 어때? 더 자랐어?"

"응, 어제보다 확실히 색이 변한 거 같아. 정말 예쁘게 익어가고 있어."


그 짧은 대화 속에 얼마나 많은 설렘에 담겨 있었는지. 토마토의 색깔이 변화를 말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는 서로의 마음이 익어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건 아닐까.


방울토마토 하나를 어떻게 먹어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얇게 썰어서 샌드위치에 넣어 먹을까?"

"그러면 온전히 느끼지 못할 거야."

"그럼 내가 양보할게! 한입에 와앙- 하고 먹어줘."

"그러지 말고 반으로 잘라서 한입에 먹자."

"그럼! 반으로 갈라서 단면이 혀에 닿게 넣자."


우린 서로 기대감이 가득했다. 하나뿐인 토마토를 어떻게 먹을지 계획하는 우리의 모습이 얼마나 우리만의 세상에 갇히게 하는지.


오늘 점심, 울린 전화벨.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조금 더 높았다.


"내일, 몇 시에 만날 거야?"

"내일? 글쎄."

"빨리 와야 해."

그는 횡설수설하며 말하기 시작했다.

"토마토가 맛있게 익어가는 알맞은 시간에 같이 먹고 싶어. 일찍 와."


그는 보고 싶다는 말 대신 토마토가 맛있게 익어가니 일찍 오라고 말하는 사람이었다.

아마도 수화기 너머의 그는 그 말을 하고 얼굴이 토마토처럼 붉어졌겠지.


그는 늘 돌려서 표현하는 사람이었다. 감정을 숨기려 할수록 더 투명해지는, 그런 사람.

하지만 그게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이제는 안다.


우리가 함께 키운 토마토 하나. 그 작은 열매 안에는 우리가 함께 보낸 시간들이 모두 들어 있었다.

우리가 나눈 그 수많은 대화와 날들. 토마토가 익어가듯 천천히 익어가는 마음이 들었다는 걸.


아마, 그 토마토가 완전히 익지 않았어도. 아무런 맛이 나지 않아도 우린 아마 맛있게 먹을 것이다.

그 시간들이 설탕처럼 뿌려질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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