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직장
방송국을 퇴사한 후 집 근처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집에서 도보로 40분, 버스 타고 10분이 걸리는 곳이었다. 그곳은 관내 어린이집 급식을 담당하는 기관이었는데, 퇴사를 앞둔 직원 1명과 영양사라는 직책에 내 또래의 여직원이 6명 있는 곳이었다.
"곧 퇴사하는 입장이지만, 도망가시는 게 좋을 거예요."
퇴사를 앞둔 직원은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주며 말했다.
"무슨 이유로 퇴사하는지 물어봐도 될까요?"
"내가 못나서 일수도 있지만, 저 6명 똘똘 뭉쳐있어요."
그 순간엔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본 그녀들은 그저 평범한 20대 중반 여성들로 보였을 뿐이었다.
"여기서 얼마나 일 하셨어요?"
"3개월이요. 내 전에 있던 사람도 2개월 버텼을걸요?"
"그 이야기 들으니, 빠른 탈출이 답인 거 같기도 하네요."
인수인계를 받으며, 내가 첫 번째로 맡은 업무는 다음 연도 예산안을 짜는 일이었다.
"저는 오늘 처음 들어왔는데, 다음 연도 예산안을 어떻게 짜라는 거죠? 아무런 데이터가 없는데."
"그거 그냥 작년 거 그대로 붙여 넣기 한 뒤에 10만 원만 더 추가해요. 저도 그렇게 배웠어요."
이 회사 제대로 된 곳이 맞나? 국가 기관이라고 들었는데 이렇게 허술할 수가 있나 싶었다. 이 걱정이 끝나기도 전에 방안에 있던 운영국장님이 나를 불렀다.
"00 씨, 운전면허 있다고 했죠?"
"네, 있긴 한데. 제가 일 년에 딱 두 번만 운전대를 잡아서요."
"어머, 잘됐네. 00 대학교에 갈 일이 있는데 운전 좀 해요."
00 대학교에는 이 업체의 고문이자 교수님이 계셨다.
"근데, 저 업무내용에 운전은 없었던 거 같은데."
"어차피 업무시간이잖아요. 지금 뭐 바쁜 것도 없을 테고."
더 이상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내가 한 마디 거들 때마다 그녀의 표정이 일그러졌기 때문이다.
"00 대학 출신이라고 했죠?"
그녀는 나의 이력서를 슬쩍 내려다보며 이야기했다.
"3년 전에 여기서 일했던 다른 직원도 00 대학 출신이었는데 그때 그 친구가 얼마나 말을 잘 들었는지 몰라요. 그래서 그 친구 때문에 00 대학에 이미지가 참 좋은 편인데, 00 씨가 그 명성을 망치면 안 되지 않을까요?"
그녀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은근히 압박감을 주고 있었다.
"네, 운전해 보겠습니다."
"좋네요. 그 태도. 내가 사람하나는 잘 뽑은 거 같네. 00 씨한테 열쇠랑 안내받아요."
열쇠를 건네받고, 차량의 위치를 전달받았다.
"피자헛 건물 알죠? 거기 옆 공영주차장에 주차되어 있어요."
"저 혼자 가는 건가요?"
"어린애 아니잖아요. 그 정도는 혼자 가야죠."
기관명으로 도배되어 있던 차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문제는 이 차를 운전해야 하는 것인데, 한 번도 몰아본 적 없는 차량이었다.
"그래도 운전은 다 비슷하겠지."
마음을 다잡고, 운전대를 잡았다. 아주 살짝 액셀을 밟았는데도, 내가 긴장한 탓인지 차량이 '훅' 앞으로 튀어나갔다. 평일 낮 시간이라 먹자골목 쪽 주차장은 비어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고가 날 뻔했다.
"이거 보험은 들어 있는 거겠지."
아직 근로계약서도 작성하지 않은 내가 몰아도 되는 건지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