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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내 말 좀 들어봐 봐. 내가 겁도 없이 시간을 낭비하긴 했어. 경력은 단절되었고, 나이도 먹었어. 친구들은 벌써 한 업계에서 팀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몸값을 올린다고 이직도 여러 번 했는데 나는 그깟 꿈이 뭐라고 열심히 하지도 않을 거면서 경력을 단절시키고 말았지 뭐야. 나에게 내 '인생 낭비죄'라는 죄목이 있다면 고소장이라도 접수하고 싶다니까.
내가 얼마나 시간을 날려 먹었냐고? 자그마치 10년 정도. 아, 계속 일을 안 했던 건 아니야. 마지막 근무가 2년 전. 3개월 정도 일했던 게 마지막 근무였어. 나도 이유가 있었어. 그곳에서 자꾸 월급을 밀리는 거야, 작은 중소기업 아니 중소기업이라고 하기에도 뭣하다. 나라에서 창업지원금 받으면서 직원 1명 고용할 수 있는 수준이었어. 그 직원 1명이 나였고.
직원이 1명인 곳에서 일하면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뭔지 알아? 좋은 점부터 말해줄게. 일단 밥 먹을 때 선택권이 나한테 있었어. 대표가 매번 나에게 뭘 먹을지 고르라고 했거든. 직장인들 밥 한 끼 맛있는 거 먹으려고 출근하는 거잖아. 점심에 맛있는 음식 먹으면 오후를 버틸 힘이 생기잖아. 그리고 또 있냐고? 없어. 장점 끝이야.
단점은 잡일을 다해야 해. 자기는 대표니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 부려먹으려고 해서 정말 골치 아픈 일까지 다했어. 하루는 대표의 차를 세차도 하고, 또 하루는 대표가 등을 긁어달라는 거야 등이 가렵다고. 이런 건 솔직히 여직원한테 시키기엔 부적합하지 않나. 이것도 어떻게 잘 참아보려 했지. 사회생활이 어떻게 '다 나 좋을 일만 하면서 살겠어'라는 마음으로. 하지만, 뭐니 뭐니 해도 돈이 밀리는 게 제일 최악이었지. 매번 내 앞에서 자기 친형한테 전화해서 직원 월급 주게 돈 좀 빌려달라고 굽신굽신 거리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내가 어떻게 이 회사를 믿고 일할 수 있었겠어. 그러니 퇴사하게 된 거지.
어때, 이제 나의 말이 조금 이해가 가? 더 좋은 직장을 충분히 구할 수 있었겠지만 우리 집이 조금 시골이야. 봄이 오면 우리 지역이 서울이 되네, 마네 뜬 구름 잡는 이야기가 돌았던 곳이야. 이렇게 말하면 내가 사는 곳을 특정 지을 수 있으니까 여기까지만 말할게. 이미 어디인지 알았다고? 그럼 더 이야기가 쉬워지겠다. 대중교통을 이용해도 여러 번 환승해야 했기에 집 근처 직장으로만 구하다 보니 이사달이 난거지. 아이고, 이야기가 길어졌네.
아무튼, 그렇게 경력이 단절되고 나는 어린 시절 꿈꿨던 일을 다시 생각하게 된 거야. 그래, 다시 글을 써보자! 내가 이래 봬도 고등학생 때 공모전, 사생대회에서 상도 좀 탔었거든. 어이쿠, 그게 벌써 15년 전 일이네. 강산이 변해도 한참 변했겠네. 막상 다시 시작하려니, 글을 어떻게 썼더라 생각이 안 나는 거야. 머릿속에 이미지 같은 게 떠다니긴 하는데 첫 시작을 어떻게 해야 했던가 기억이 안 나는 거지. 자전거, 피아노, 수영 같은 건 몸이 기억한다고 하잖아. 나도 글 쓰는 행동을 꽤나 오래 해서 몸이 기억할 줄 알았는데, 맨날 집에서 빈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 거지. 환장하겠더라. 약간 정신병 걸리는 줄 알았어. 그렇게 앉아서 버티면 글이 써질 줄 알았는데. 세상에나 일주일 동안 단 한 줄도 완성도 못했더라. 이때라도 정신 차렸어야 했는데.
아, 나는 글로 먹고살기는 힘들겠구나. '글로소득'은 버리고 '근로소득'으로 다시 알아봐야겠다.라고 생각했어야 했는데, 어디서 갑자기 샘솟은 근거 없는 자신감인지 (긁적), 버텼어. 여태 벌어온 돈을 펑펑 써가면서 버텼어. 일하기 싫었던 거지, 일하면 어떤 기분인지 아니까. 매일매일이 우울해졌으니까.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하고 노는 생활이 즐거웠던 거야. 남들 놀 때 열심히 후회 없이 놀았어. 그 당시에는 이게 이렇게 큰 나비효과가 될 줄 모르고. 그렇게 백수생활 2년 차가 되어버린 거야.
그렇게 폐급이 되어버린 내 인생을 바꿔줄 사람이 등장해. 그녀는 나를 옆에서 수동적 갓생러가 되게 만들었지. 처음은 순탄하지 않았어, 나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기대된다면 나의 이야기를 계속 들어주러 와줘.
기다릴게.